[Review] 오늘의 당신을 위하여,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

글 입력 2019.10.1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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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를 보고 왔다. 고민과 자격에 대해 내 스스로를 의심하는 요즘, 이토록 적절한 시기에 찾아와준 것이 참 고맙기만 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개인의 한탄과 자기 연민에 빠질까 두려워 최대한 감상을 정리해 적어보려 한다.
 
웹툰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는 여러모로 내게 위로 그 이상의 무언가를 준 작품이었다. 그 것은 주로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사로 들여다보는 것에서 비롯된 큰 깨달음이었고, 캐릭터의 성장이 주는 희망이었다. 연극부 다섯 명, 그들의 가족과 연인들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 어디선가 늘 존재해왔던 우리의 ‘사건’이었다. 그렇기에 내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게 되는 거울의 역할도 기꺼이 해줄 수 있었다. 이런 저런 말로 설명해보려 하지만,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내겐 참 소중한 작품이다.
 
그런 웹툰이 내가 관심 있어하는 무대로 온다고 했을 때의 설렘과 기대란. 하지만-프리뷰에서도 이미 한 차례 밝혔었지만- 연극은 연극이고, 웹툰은 웹툰이다. 연극은 웹툰과 결이 아주 달랐다.

 

 
/시놉시스/

이름 이찬란, 나이 23세.

엄마는 내가 한 평생 찬란하게 살기를 바란다고 내 이름을 ‘찬란’이라고 지었다고 했다. 평범한 외모, 평범한 속도, 평범한 욕심을 가진 나는 특.별.히 가난한 관계로 일주일 내내 하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바쁜 스케줄로 가끔 비굴하게, 또 가끔은 고립된 느낌으로 대학 4년을 버티고 있다.

일찍 수업이 끝난 어느 날, 잘못 들어선 학교 건물에서 우연히 도래선배와 얽히게 되었다. 있는지도 몰랐던, 심지어 폐부위기에 놓인 연극부에 얼떨결에 가입하게 되었고, 또 다른 연극부원인 유, 시온선배, 혁진 언니와 함께 연극부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연극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연극부는..
아니 우리는 어떻게 될까..?

 

 

원작 웹툰이 찬란이와 도래, 시온, 진, 유가 가진 개인의 상처이자 사회의 문제에 가장 집중을 한 것에 반해, 연극은 ‘함께’의 의미에 초점을 맞췄다. 연극을 만든다는 것, 연극부의 일원이 된다는 것에 의미를 더 모은 것이다. 매 주 같이 끼니를 먹으며 그들은 서로를 ‘식구’라 부르고 기꺼이 서로를 걱정하고 토닥인다. 가족이 올가미이자 짐처럼 느껴졌던 찬란이에게 더 없이 좋은 안식처가 되어준다.

연극 속 캐릭터들이 가지고 있던 각자의 상처와 성장을 지웠느냐, 그 것은 아니다. 찬란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긴 하지만 개개인의 상처를 결코 지우진 않았다. 남의 시선에 맞춰 살았던 진, 버려질까봐 엄마에게 모든 걸 배려한 유, 경쟁사회에 치여 살던 시온, 그리고 아버지와 무언의 사정을 가지고 있는 도래. 대사 몇 마디가 분명히 캐릭터마다의 이야기를 조금씩 보여주고 있다. 적절한 선택과 집중을 해냈다.

연극부 일원들은 오직 연극 하나를 올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모인 이들이지만, 결코 비즈니스적이지 않다. 서로를 위하고, 보듬고, 이해한다. 때때로 마음 같지 않은 실수들이 연발하고, 연극 외의 것들이 침투해 훼방을 놓지만, 어쨌든 그들의 막은 오른다. 처음 사는 생의, 마냥 쉽지만은 않은 매일이 결국엔 어찌어찌 굴러가듯이. 그 속에서 그들은 괜찮고, 혹은 괜찮지 않다. 어느 편이든 상관이 없다. 그들은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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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쉬운 점들이 있다(물론 어디까지나 ‘아쉬운’ 점일 뿐이다). 위에서 이미 언급했듯, 연극으로 각색되며, 중심점들이 관계의 소중함, 공감 속에서의 깨달음으로 대체되었다. 여전히 찬란의 자기 연민에 대한 직시와 타인을 향한 수용을 다루고 있지만, 결국 근본적인 것들에 대한 사유와 대화는 도달하지 못한 느낌이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가벼웠다’. 그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쉬웠을 뿐.

그리고, 캐릭터에 대한 불만이 ‘아주 조금’ 있다. 모든 캐릭터가 보다 극성맞아진 면이 있었는데, 연극의 빠른 전개를 돕는단 점에서 오히려 좋았다. 그러나 단 한 명, 걱정이 한 바가지인 캐릭터가 있었는데, 바로 ‘도래’ 캐릭터였다. 모든 아쉬운 점은 개인의 척도에서부터 비롯된다고, 나는 끝까지 다 보고도 ‘도래’ 캐릭터의 무례함을 참을 수 없었다. 찬란과의 화해 시퀀스에서 진중한 모습이 비춰졌지만, 내가 느낀 인상을 덮기엔 모자랐다.

이런 불만 아닌 ‘불호’는 도래가 가진 비중에서부터 출발하는 듯하다. 도래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캐릭터라는 점은 부인할 수가 없다. 도래는 찬란의 자기 방어적 공격에 일침을 놓고, 연극과 연극부를 진심으로 위한다. 찬란이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도래는 훌륭한 식구가 된다. 그러나 정작 도래의 사정은 관객에게 숨겨지고 만다. 큰 역할을 해내지만 결국 찬란의 성장을 위한 도구적 캐릭터로 기능하며 캐릭터를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는 사라지고, 무례함만 남은 것이 아닐까 싶다.

연장해 생각해보자면, 캐릭터마다의 ‘사건’을 언급하는 사소한 대사들이 내겐 캐릭터에 대한 이해와 독자를 향한 배려로 느껴졌던 것에 반해, 웹툰 원작을 전부 보지 않은 관객에게는 의문으로만 남을, 혹은 미완성형인 대사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문득 든다. 진이 머리를 자르고, 도래가 잠깐 사라지며 빠른 템포로 진행되는 시퀀스는 특히나 소외감이나 당혹감을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웹툰과 연극은 별개라고 계속 덧붙였던 나지만, 어쩔 수 없이 독자의 시선에서 연극을 보게 된 터라, 독자가 아닌 관객들은 어떤 불친절을 느꼈을지 예측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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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고 나니, 내 아쉬움은 사실 연극이라는 매체로 들어오면서 생긴 딜레마의 결과인 듯하다. 이 아쉬움들을 다 충족하기엔 러닝타임은 한정되어있다. 러닝타임 내에서 웃음과 성장을 효과적으로 담아내기 위한 집중과 선택이었을 터이다. 연극은 이러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연극만의 무언가를 보여주려 했고, 제법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매체와 장르의 매력은 같은 이야기가 전혀 다른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있으니까. 역시, 연극은 연극대로, 웹툰은 웹툰대로의 재미와 감동이 있다.

할 말이 많고 많지만, 사실 난 이 다섯 명의 이야기가 연극이 된 것 자체만으로도 큰 위안을 얻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언제나 있었고, 연극이 그 바람을 이루어줄 하나의 매체가 되어줬기 때문이다. 성장과 사랑, 연대의 이야기는 언제나 중요하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더 많은 사유와 공감, 위로가 필요하니까. 다 지나간 어제도, 존재 유무도 흐릿한 내일도 아닌, <오늘의 당신을 위하여>라는 제목을 붙인 그들의 연극처럼, 어쨌든 막이 오른 우리의 삶이 보다 오늘의 나에게 솔직한 매일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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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

 

공연일시

2019년 10월 5일(토) ~ 11월 10일(일)

 

장소

아트원씨어터 3관

 

주최/주관 : 콘티(Con.T)

 

후원 : 케이알테크

 

제작지원 : 한국콘텐츠진흥원

 

관람연령 : 중학생 이상

 

러닝타임 : 100분

 

티켓 가격 : 전석 50,000원

 




[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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