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누구나 희망할 자격이 있다 - 연극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

글 입력 2019.10.13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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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예술 작품에서 희망을 노래하면 거부감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어도 주인공들은 언제나 조력자를 만나고, 삶의 태도를 긍정적으로 바꾸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다. 어릴 때는 그런 그들의 이야기에 감동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행복에 ‘비현실적’이라는 딱지를 붙여 외면하게 되었다.

 

어렸을 땐 나도 주인공들처럼 쉽게 행복을 찾을 줄 알았다. 지금 상황이 안 좋더라도 미래에는 무조건 좋은 일이 생기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꿈꾸던 미래에 당도했건만 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고, 세상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책, 영화, 노래, SNS 등 곳곳에 널린 희망이니 힐링이니 하는 말들이 다 허울 좋은 거짓말처럼 느껴졌고, 나를 기만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건 나의 질투심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작품 속 그들은 내가 갖지 못한 잠재력, 의지를 모두 갖고 있었다. 그들과 나는 출발점은 같을지라도 도착점은 달랐다. 영화든, 책이든 작품은 모두 끝이 난다. 그 끝에서 그들은 앞으로 나아가지만 나는 그 자리 그대로였다. 그 괴리감에 일부러 결말까지 어두운 작품들을 골라 접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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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 역시 그런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우리네 청춘이라며 누군가의 고통을 보편성에 가두고 현실을 바꾸는 대신 잠깐 기분만 좋게 하는 그런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누군가의 추천에 따라 작품을 접했을 때도 의심스러운 마음을 거두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매주 월요일 <찬찮아>를 클릭하는 손가락을 멈출 수 없었다. 다 위선이라고,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희망 고문일 뿐이라고 생각해도 찬란의 삶에 생기가 더해질수록 흐뭇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보통 웹툰의 댓글은 작품에 대한 감상이 지배적이다. 독자들은 자신이 아닌 만화에 관해서만 이야기한다. 그러나 <찬찮아>의 댓글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였다. 독자 대부분 자신의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다. 댓글은 모두 힘들고 어두운 사연이었고 항상 이런 자신의 고통을 세상 밖으로 꺼내주어서 고맙다는 식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댓글들에 작품과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불평하는 대신, 조용히 공감을 눌렀다.

 

사람들은 <찬찮아> 속 고통과 행복을 그들만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으로 여겼다. 결국 ,작품이 중후반부에 다다를 때야 나도 댓글을 남겼던 사람들처럼 작품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자 비로소 다섯 명 모두에게서 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건 연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포스터_ 연극_찬란하지않아도괜찮아.jpg

 

 

연극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는 동명의 원작 웹툰을 바탕으로, 대학생 찬란이 연극부에 들어가 사람들과 같이 연극을 만들면서 찬란을 포함해 모두가 내면적 성장을 이룬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찬란의 상황은 평범함도 사치로 느껴질 만큼 절망적이다. 찢어질 것 같은 가난,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는 언제나 찬란의 인생을 가로막는다. 그러나 버텨내는 삶만 살아왔던 찬란은 사람들과 연극을 만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연극의 초반부는 조금 아쉬웠다. 장기간에 걸쳐 연재된 작품을 한 편의 연극에 압축해서 담아내다 보니 찬란이 마음을 바꾸는 과정이나 인물들의 사연 등 웹툰에서 상세하게 다뤘던 부분이 많이 간략하게 묘사되었다. 원작을 모두 읽은 덕에 알아서 묘사의 빈 부분을 채울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스토리의 전개가 급하게 느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는 연극의 오점이라기보다 장르의 차이로 인한 어쩔 수 없는 한계이다. 그렇지만 아쉬운 마음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연극을 감상하는 내 태도는 초반부 내내 조금 삐딱했다. 끊임없이 원작과 비교하면서 웹툰과 다른 부분을 찾아내고 평가했다. 작품은 찬란이 연극부에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해 같이 준비한 연극의 막이 오르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건 화려한 사건이 아닌 인물들의 감정이다. 저마다의 고통에서 갇혀 있던 인물들이 연극을 통해 그 한계를 깨는 과정이 핵심이다. 그렇기에 빠르게 스토리가 진행되는 초반부엔 인물들의 감정 변화가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 특히 초반부의 도래는 아무리 좋은 의도고 본인은 구면이라고 해도 찬란 입장에서는 무례하게 비칠 여지가 많았다. 그런 도래를 찬란이 너무 쉽게 받아들인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찬란과 혁진이 바다에서 서로를 향해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장면과 도래가 찬란에게 장문의 메시지로 사과하는 장면에서 내가 느꼈던 연극의 한계가 극복되었다. 그 두 장면이 이 연극도 웹툰처럼 사람을 쉽게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사람의 불행을 다룰 때, 실제로 그 인물과 같은 처지일 사람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불행을 전시하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었다. 그런 작품 속에서 인물들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닌 감정을 자극하기 위한 도구처럼 보였다. 그러나 <찬찮아>는 전혀 아니었다. 현실의 우리가 그렇듯이 그들도 잘해보려다가도 실수하고, 극복하려다가도 낙담했다. 그것은 내가 웹툰을 좋아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진심으로 사과하는 도래를 통해, 서로를 응원하는 혁진과 찬란을 통해 연극에서도 나를 볼 수 있었다.

 

웹툰은 완결되었고 내 일상은 여전히 정신없이 흘러갔고 어느새 졸업을 앞두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다시 예술 작품 속 희망을 남의 이야기로 치부했다. 연극 관람 직전까지도 정신없는 일과를 보냈고, 끝난 이후에도 해야 할 일이 나를 기다렸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위로를 누릴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위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외면한 채 말이다. 연극은 그런 내게 잠시 쉬어도 된다고, 불안하고 비관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 위로는 우리 모두의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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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끝나고, 배우들의 연습 과정을 담은 사진들이 화면에 떠올랐다. 그저 연습하다가 찍은 평범한 사진인데도 사진 속 그들의 미소가 너무 환해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작품의 위로가 캐릭터를 넘어, 관객을 넘어 참여한 배우들에게까지 닿은 것 같아 뭉클했다.

 

웹툰에서도, 연극에서도 연극부 멤버들은 극적인 결말을 맞이하지 않는다. 무사히 막을 올린 것, 단지 그뿐이다. 이야기는 그렇게 끝난다. 그래서 더 감동적이었다. 상황이 바뀌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되지 않아도, 우리의 삶은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다.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동안 나는 행복은 선택받은 자들의 전유물이며 내게는 무언가를 희망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웹툰을 지나 연극까지 본 지금에야 그 생각을 고치게 되었다. 누구나 희망할 자격이 있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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