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버텨낸 삶에서 만난 어른 -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 [공연]

삶이 굳이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
글 입력 2019.10.12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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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삶 자체가 굉장히 예민해질 때가 있다. 원치 않은 일들이 갑작스럽게 밀려오고, 잠깐 쉬고 싶어 억지로 짬을 내더라고 마음이 개운치 않다. 오늘의 나에게 굉장히 과분한 일들을 간신히 해내고 그나마 부릴 수 있는 사치로는 남은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이다. 그렇게 끝나지 않은 일들은 여전히 남아 ‘오늘’이 아닌 어제의 연장선의 하루를 살아간다.

 

더 암울한 것은, 이런 상황에 끝이 안 보인 다는 것이다. 세상 만물의 법칙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인데, 불행 한가운데 있는 사람에겐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달려도 결승선엔 도달하지 못할 것 같고 아무리 부어도 채울 수 없는 밑 빠진 독을 안고 있는 느낌이다. 그럴 때야말로 정말 어쩔 수 없다. 삶은 포기할 수 없으니까. 그저 버텨낸다.

 

웹툰 원작의 연극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의 주인공 ‘이찬란’도 끝나지 않을 불행 가운데서 삶을 겨우 버텨내는 인물을 그려낸다. 찬란은 월세, 식비, 학비까지 감당하기 위해 일주일 내내 아르바이트를 이어나가며 숨 고를 틈 없이 삶을 버텨낸다. 가난이 사람을 얼마나 파멸시킬 수 있는지 어린 시절에 처절히 경험하며 자라왔기에 그녀는 원치 않는 방어기제를 발휘하며 고립된 채 살아간다.

 

그녀 스스로를 이토록 궁지로 내모는 이유는 바로 가정 폭력을 일삼은 아버지를 벗어나기 위함이다. 물리적으로 그를 벗어나면 불행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 생각했지만 혈연의 끈은 어머니를 통해 꾸준히 찬란을 괴롭힌다. 매번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어머니에게 화를 내고 고함을 질러도 그 문제의 근원이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라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찬란은 어머니를 연민하며 빠듯한 삶 가운데 아버지의 뒤처리 비용을 준비한다.

 

그렇게 찬란에게 삶이란 그리 찬란하지 못하다. 도리어 비극과 절망으로 점철되어 있다. 웃으며 대학 캠퍼스를 활보하는 것마저도 사치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불행한 배경과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 찬란에게 뜬금없이 연극 주인공 제안이 들어온다. 그녀의 생각 프레임에서 완벽히 벗어난 상황을 직면하니, 말문이 턱 막힌다. 하지만 찬란을 유입하려고 하는 연극부의 열정적인 노력에 찬란은 처음으로 자신의 가치에 의문을 가진다.


 

‘왜 하필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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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찬란은 얼떨결에 연극의 주인공을 맡게 된다. 매일 가시를 세우며 사람과의 관계를 꺼렸던 그녀지만, 아무런 목적 없이 친절을 베푸는 연극부원들을 보며 경계심을 풀기 시작한다. 마치 상처 입은 야생동물을 치료해주는 구조대와의 관계처럼 찬란은 점차 그녀가 사치라고 생각했던 웃음을 되찾는다.

 

연극부의 극작가 윤도래는 연극부원의 삶을 녹여낸 연극을 창작한다. 첫 연기의 부담이 있는 만큼 보다 집중할 수 있는 연극은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다른 연극부원을 비롯한 찬란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치부와 대면하는 시간을 가진다.

 

 

잘못된 사회구조,

가정환경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

 

그 상처에 얽매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아름다운 본성을 회복하고

함께 나아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

 

 

외부의 환경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변해버린 사람들의 본성을 찾고 싶다는 작가 윤도래의 말처럼 찬란은 자신의 진짜 본성을 찾기 위해 회피해오기만 했던 그녀 내면의 아버지와 마주한다. 폭력을 가하던 아버지는 실재보다 더 강력한 존재로 찬란의 마음속에 묶여 있었고 오랫동안 외면했던 무의식과 대면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연극부원들의 세심한 배려와 각자의 치부를 공유하는 시간이 점차 쌓이면서 찬란 또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다. 나의 상처도 누군가에게 이해받을 수 있고, 그 상처를 홀로 감내할 필요가 없다는 법을, 연극부를 통해 배워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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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따뜻한 서사를 지닌 힐링 웹툰은 그 무대가 연극으로 옮겨지면서 다소 축약된 모습으로 전해졌다. 폭력으로 가득한 찬란이의 트라우마는 그녀의 고백으로만 묘사됐고 각자의 고민을 토로하며 점차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법을 배우는 장면도 축약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개인적으로 가장 핵심인 부분이라고 생각했던 장면이 연극에서는 가볍게 다뤄진 느낌에 다소 실망한 부분이다.

 

하지만, 햇수로 거의 2년을 연재한 장편의 웹툰을 단 100분으로 담아내야 했기에 불가피한 생략은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아쉬움을 뒤로한 연극은 만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연극만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수정할 수 없는 웹툰과 달리 현재성을 가지는 연극의 특성을 이용해 세태를 반영한 유머를 보여주어 많은 웃음을 유발했다. 더불어 웹툰에서는 보지 못한 연주 장면을 삽입해 관객과 함께 소통했고 관객에게 직접 물건을 파는 장면을 추가하여 관객과의 조화를 돋보이게 했다.

 

뛰어난 원작을 가진 연극이기에, 또 사전에 모든 이야기를 이해하고 연극에 감상했기에 더욱 기대가 컸던 기분이다. 하지만 웹툰에서 받은 감동을 다시 연극을 통해 환기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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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삶은 너무나 치열하기에, 때론 비열하고 비굴하기도 한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버텨낸다. 그렇기에 쉽사리 남의 삶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나조차도 수많은 가면을 내세우고 삶을 살아가기에, 상대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 몰이해는 그저 지나갈 뿐이다.

 

그러다 가끔 상대의 이야기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저 사람은 왜 그토록 차가워져야 했을까, 무엇이 그를 그렇게 변하게 하였을까. 가볍게 시작한 상대방에 대한 궁금증이 상대의 사연과 만나면서 점차 진지해지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가슴 절절한 사연 하나쯤은 안고 살아가기에, 그 사연까지 닿을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면 비로소 이전과는 다른 관계로 변모한다.

 

그렇게 웹툰 속 주인공들은 말해준다. 애써 숨겨놓았지만 사실 공유하고 싶은 깊은 상처를 누군가 발견하고 보듬어 줄 때, 우린 비로소 “삶을 버텨내길 잘했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비록 나의 삶은 아니지만, 삭막하기만 했던 찬란이의 삶에 처음 햇살을 볼 수 있도록 모난 가지를 쳐준 연극부원들에게 참 많은 것을 배운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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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송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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