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잘'의 굴레 [사람]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글 입력 2019.10.08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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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적부터 여러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를 꾸준히 하는 법은 없었지만 복고가 다시 유행하는 것처럼 이전에 좋아했던 취미를 다시 좋아하게 되어 깨작깨작 건드리고, 흥미가 다 하면 다른 취미를 가지며 몇 가지를 짧고 반복적으로 지속했다. 그중에 하나가 그림 그리기였다. 한동안 그림 그리는 것에 시들해졌다가 요즘 또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좋아했던 나의 역사는 꽤 길다. 유치원 때부터 분홍색 다이어리를 가지고 다니며 학원 차나 유치원 차에 앉아서 이것저것 그렸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때에는 다른 아이들처럼 눈이 반짝거리고 코는 오뚝한 공주님을 그렸던 거 같고, 중학교에 와서는 태블릿을 사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잘 그리는 편은 아니었지만. 또, 중학교 C.A 활동 중에 미술 선생님께서 진행하는 미술반에 들어가 목판화 등 다양한 판화 작업도 하고 아주 작은 석고상을 만드는 작업도 했었다. 미국에 교환학생을 갔을 때도 친구와 수채화 수업을 들었다. 수업 시간에 다 그리지 못해 따로 강의실에 들어가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혼자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참 좋게 남아있다.

 

꾸준히 그림을 좋아했던 나지만, 그만큼 꾸준히 그림 그리는 것에 싫증을 냈다. 내가 원하는 만큼 잘 그려지지 않아서였다. 나보다 더 잘 그리는 친구가 있으면 나도 저렇게 잘 그리고 싶은데 친구 그림을 보다 내 그림을 보면 더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림 연습을 하다 보면 생각만큼 빨리 늘지도 않고, 연습 자체가 지루해서 금방 멈춰버렸다. 거기다 가면 갈수록 안목은 높아지는데 그림 그리는 실력은 그대로라 그리다 관두는 일이 잦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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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전신 그리기 소모임을 친구나 친구의 친구와 같이 진행하면서였다. 일주일에 한 번 전신 그림을 그려 카카오 톡방에 올리는 간단한 모임이었다. 처음에는 꾸준히 그림을 그리자는 의의에서 시작했기에 나 역시 가볍게 그려 올렸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전공생처럼 멋있게 잘 그렸다. 선은 힘이 있었고 색은 양감이 드러났다. 내 그림이 초라해 보였다. 그들처럼 잘 그린 그림을 올리기 위해 사진을 참고해 그리기를 시도했다.

 

얼추 밑그림을 그리고 제대로 선을 그리는데 서툴고 어색했다. 말했다시피, 안목은 올라갔는데 실력은 그렇지 않은 데다가 안목이 올라갔다고 해도 이상한 점을 정확히 짚는 건 또 다른 일이라 아무리 고쳐도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그림을 완성하지 못했다. 2주간 새 그림을 올리지 못하고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바쁘기도 했지만, 그림 그리는 일이 재미없어졌다.

 

잘하는 방법에 요령은 없다. 글이든 그림이든 공부든 꾸준히 정성을 들인 만큼 잘하게 된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이 진리를 알면서도 요령을 찾아 헤맸다. 단기간에 빨리 익힐 수 있다면 어쨌든 좋지 않을 이유는 없었으니까. 유튜브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그림을 그려 올리고 있었다. 아무거나 손이 가는 대로 눌렀는데, 우연하게도 그런 말을 들었다.

 

세상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될까. 학교, 직장 등에서는 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다. 그러나 도화지 내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다. 그림을 그릴 때 우리는 오롯이 나 자신을 마주할 수 있다. 또, 무엇이든 잘할 필요는 없다. 직업, 학업은 잘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지만, 취미는 잘 그릴 필요가 없다. 꾸준히 그릴 수 있게, 즐거우면 된다.

 

 

 

 

또 다른 유튜버는 이렇게 말했다. 뭔가를 마스터해야 한다는 목표로 그림 공부를 목표를 가지고 그림 공부를 하다 보면 반드시 질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떤 분야든 그렇겠지만 질리면 끝이다. 잘 그리게 되기 전까지 그림을 그릴 동기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냥 재미있어서 그리는 건데, 그 재미가 사라지면 지속이 힘들어진다. 만약 그림을 그리다 망치거나 못 그렸다면 혼자만 보면 된다.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두 유튜버의 말은 똑같았다. 잘 그리려고 할 필요는 없다. 우선은 즐겁게 그릴 수 있어야 많이 그리게 되고, 잘 그릴 수 있다. 잘 그리지 못하면서 당장 특출나게 그리길 바란다면 내 그림이 마음에 들 수가 없고, 자연스럽게 그림 그리는 것 자체에도 흥미가 떨어진다. 하지만 즐겁게 그리면 내 그림이 내 기준이나 남의 기준에 멋지고 예쁘지 않더라도 계속 그릴 수 있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이러한 조언이 당신에게 도움이 된다면 받아들이고 아니라면 다른 방식을 찾으라는 말도 추가로 했다. 나에게는 가장 잘 맞는 충고였다.

 

두 영상을 보고 난 뒤부터 미루고만 싶은 짐처럼 느껴지던 전신 그리기가 다시 즐거워졌다. 남들보다 못날 수도 있고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다. 취미란 그런 것이다. 잘하면 돈을 벌지 왜 취미로 할까. 굳이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되고 되고 못 해도 상관없다. 그냥 내가 즐거우면 된다. 애초에 소모임을 시작한 이유는 그림 실력을 키우고 조금이나마 꾸준히 그려보자는 취지였지, 잘 그리자는 취지는 아니었으니까. 마음이 가벼우니 그림도 훨씬 편하게 잘 그려졌다. 일전에 실력이 안 될 거 같아 포기했던 그림도 완성했고, 이번 주 소모임 그림도 제출했다.

 

 

 

 

취미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기분 전환을 하기 위한 행위인데 왜 스트레스를 받게 될까? 종종 새 취미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추천해주면, 본인의 흥미 유무를 제외하고도 거절하는 이유가 되는 말이 있다. 나 그림은 잘 못 그려, 글은 잘 못 써서 별로. 취미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잘하는 사람은 누구도 없음에도, 잘하느냐 못하느냐가 취미를 시작하는 기준점이 되곤 한다.

 

때로는 잘하지 못해서 싫어하게 되는 예도 있다. 내가 그림 그리는 걸 싫어하게 된 것처럼, 노래를 못 하면 노래 부르는 걸 싫어하게 되고 춤을 잘 못 추면 춤추는 걸 싫어하게 된다. 이해한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 걸 남들 앞에서 하면 비웃음당할까 봐 두렵고 창피해질까 봐 싫은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건 싫어할 필요가 없다. 창문과 문을 꽁꽁 닫고 저스트 댄스를 추거나 혼자 코인 노래방에 가 노래를 부르는 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정말 싫어하는 건지, 아니면 못해서 싫어하는 건지 구별하는 건 중요하다. 정말 싫어한다면 할 필요가 없지만, 못해서 싫어하는 거면 도전해볼 가치는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처럼 나도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서 노래방 가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코인 노래방이 생겨 혼자 노래방을 가는 게 아무렇지 않아졌을 때, 혼자 노래를 부르러 간 적이 있었다. 못 불러도 괜찮고 소리를 지르지 못해도 괜찮았다. 그냥 좋아하는 노래를 이런 톤으로도 불러보고 저런 식으로도 불러보며 마음대로 하다 보니 노래 부르는 일이 즐거워졌다. 그 뒤에 짧고 반복적으로 지속하는 취미에 노래도 포함되었다.

 

한국인은 뭐든 잘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어 보인다. 모든 현대인의 문제인지도 모르지만. 보통 한국인은 외국어를 할 때도 외국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라는 버릇처럼 한다. 당연히 모국어로 그 언어를 쓰는 사람보다 못할 수밖에 없지만, 모국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 말투나 문법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마치 모국어처럼 외국어를 해야만 잘한다고 생각하고, 그정도가 되지 못하면 주눅이 든다.

 

공부도 취미 생활도 여타 다른 일도 마찬가지다. 무엇에서든 순위를 정하고 비교하는 사회이다 보니 어쩔 수 없다지만, 이런 비교가 항상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못하면 못하는 걸 회피하려는 성향으로 더 드러난다. 비교가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상관없지만, 혹여라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남보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을 멈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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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다 똑같다. 글을 쓰고 나면 누군가가 내 글을 본다는 걸 의식하자 자꾸만 더 괜찮게 쓰고 싶다. 누구도 불편해하지 않을 주제를 누구나 동의할 만한 논리로, 그러나 창의적인 방식으로 풀어내고 싶어 버둥거리다 보니 이 주제도 별로고 저 주제도 별로다. 시작하기 전에 꼭 써보고 싶던 주제는 진지하게 다뤄보고 싶은 내용을 겉핥기로만 끝낼까 봐 머뭇거리게 된다.

 

이렇게 쓰다 지우고 저렇게 쓰다 없앤다. 타인의 글은 진중하거나 풍부한 지식을 뽐내는데 내 글은 가볍고 편협해 보였다. 자꾸만 욕심이 생기고 느려진다. 늘 예전보다 더 별로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또 글 쓰는 행위가 스트레스가 되어버린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그림에서는 자유로워졌으면서 아직 글에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조금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기로 했다. 내 글이 타인의 글처럼 진중하고 유식하지 않을 순 있어도 자연스럽게 잘 읽히는 맛은 분명 있을 거라고. 누군가는 내 글을 좋아할 거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미래의 나는 의외로 지금 이 글을 좋아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최대한 나를 달래가며 여기까지 썼다.

 

이 글을 계기로 내 글을 다시 좋아하게 됐느냐면... 아쉽게도 아직은 그렇지 않다.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겠다고 말하는 지금도 갖가지 시선이 신경 쓰이고 모두 아는 말을 이렇게 장황하게 할 필요가 있나 싶다. 글의 주제를 잘 모아 쓰고 있는 건지, 애초에 주제를 잘 잡은 건지 오리무중이다. 잘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지만 욕심이 난다. 말하고 나니 누구보다도 내가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 부끄럽다. 어쩔 수 없다. 인생에 항상 해피엔딩만 있는 건 아닌 법이다.

 

이렇게 다소 뜬금없고 비관적으로 끝내려니, 그 문장만큼은 마음에 들어, 인생에 항상 해피엔딩만 있는 건 아닌 법이다, 하는 나열된 문장의 길이만큼은 글쓰는 일이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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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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