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감정에 흠뻑 젖는 시간 [음악]

너무 슬프고 우울할 땐 한 번쯤 그 감정에 충실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글 입력 2019.10.08 20:0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어떻게 우울함을 이겨내나요?라는 질문에는 다양한 대답이 돌아온다. 부러 신나는 노래를 들을 수도, 달콤한 음식을 먹으며 기분을 전환하려 노력할 수도 있다. 친한 친구 A에게 뭐하고 있냐고 메시지를 보냈을 때, 혼자 코인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답장을 받으면 나는 A가 기분 전환을 위해 갔다는 생각을 한다. 언젠가 A에게 기분이 안 좋으면 동전을 잔뜩 챙겨서 코인노래방에 간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우울함을 이겨내는 방법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이쯤에서 내가 우울한 감정을 극복하는 방법도 소개하고자 한다. 사실 나는 방법이라고 할 것도 없다. 그냥 그 감정에 심취하는 편이다. 주워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따라 해 본 적도 있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 행복은 그때뿐이고, 노래를 부르며 감정을 환기시키기에는 내가 노래를 너무 못 불러서 되려 기분이 다시 안 좋아진다. 왜 신나는 노래는 듣지 않냐고 묻는다면, 우울한 기분의 나만 빼고 자기들끼리 파티를 여는 것 같아 노래를 들으면서 소외감이 든다고 대답하겠다.

 

언제부터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우울할 때 나는 슬프거나 잔잔한 노래를 듣는다. 늪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을 선사하는 흐물흐물한 멜로디나, 자기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가사를 가진 그런 노래를.

 

혹자는 나의 방법을 개선의 탈을 쓴 고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게 나만의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하게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 인 걸 어쩌나. 이불 속에 파묻혀 한 곡을 세 번 정도 반복해서 듣다 보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던 근심도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내가 우울이라는 바다에서 흘러가는 대로 이리저리 떠다닐 때 듣는 다섯 곡을 소개하려 한다.

 

 

 

1. 박원 - 나 (Rudderless)


 

 

 

네가 겪은 불행은 사실 큰 위로가 됐고

나보다 힘들고 슬픈 사람만

찾아내며 용기를 내

 

그렇게 나는 남들과 다르다 믿겠지

내가 용서가 안 돼

밤이 되면 또 난 괜찮겠지

 

 

2018년에 발매된 앨범 ‘r’의 타이틀 곡. 앨범 발매 소식에 1번 트랙부터 찬찬히 듣던 나는 머리를 세게 맞은 것 같았다.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속마음을 누군가에게 들킨 느낌이었다.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나에게 좌절하며 절망한 많은 밤이 떠오른다. 나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어쭙잖게 만들어낸 핑계와 이 세상에 나 혼자 떨어진 것만 같은 서러움.

 

다시 내일을 위한 다짐을 한다. 내일의 나를 믿지 못해 두렵고, 하지만 동시에 절실하게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다짐을. 끝맺지 못한 마지막 구절의 가사는 노래가 끝난 잠시의 정적 동안 많은 생각을 할 시간을 준다. 나의 하루 내 남은 삶은 달라질 수 있을까? 혹은 없을까?

 

 

 

2. 종현 - 엘리베이터 (Elevator)


 

  

 

눈 깜박거리며 숨 내뱉고 사는 이유

날 위해선 맞나 아니면 쫓기고 있나

 

안녕 안녕 인사해

초췌히 비친 내게 인사해

안녕 안녕 인사해

 

 

2015년 발매된 ‘월간 라이브 커넥션 Track 1’으로 먼저 세상에 나온 곡. 현실에 치여 정작 본인의 마음은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종현은 이 노래를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라 생각하며 썼다고 설명했다.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게 이 곡이 위로는 되지 못할지라도, 자신과 같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는 그의 말이 떠올라 노래를 들을 때마다 울컥하곤 한다.

 

엘리베이터에 탄 나는 ‘거울을 바라보는 나’의 자아와 ‘거울 속 내 모습’의 자아로 나뉜다. 내가 거울을 바라보고 있을 때 초췌한 모습의 거울 속 내가 말을 건다. 숨기지 말고 솔직히 말해줘요. 언제부터 울고 있나요? 언제부터 혼자였나요? 엘리베이터 안 그 찰나 시간 동안 ‘나’는 나에게 많은 질문을 한다.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거울 속 나와 눈을 맞추는 것조차 어색한 ‘나’는 어떤 대답을 했을까. 어느 순간부터 이 노래를 듣는 내가 생각하는 나의 대답 보다, 종현이 했을 나의 대답이 궁금하다. 동시에 이제는 들을 수 없는 그가 막연하게 그립다.

 

 

 

3. 메이트 - 너에게..기대


 

 

 

가끔은 길고 긴 내 하루에

네가 있어줬으면

곁에 있어준다면

 

 

2009년에 발매된 1집 ‘Be Mate’의 수록곡. 나의 마음을 다 헤집어 놓은 연인과 마치 이별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연애 기억을 조작해주는 곡. 잔잔한 피아노 반주에 맞춰 시작하는 정준일의 목소리는 가사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마저 붙잡는 흡입력이 있다. 노래가 후반부로 갈수록 지난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절정에 다다르며 후회에 대한 감정이 더욱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이별한 지 얼마 안 되어 자신이 놓친 연인을 그리워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이 곡의 가사에 빠져들 것이라 생각한다. 일상에서 문득 누군가가 떠오를 때, 빈자리를 보며 나도 모르게 지난 과거의 일상을 추억할 때 이 노래가 감정의 기폭제가 되어줄 것이다.

 

이제는 두 보컬의 조합을 보기 힘들기 때문에 나에게는 개인적으로 더 애착이 가는 곡이기도 하다. 발매한 지 올해로 10년이 된 곡이지만 메이트 이후로 국내에서 이런 감성을 노래할 수 있는 밴드를 아직 만나지 못해 그들의 재결합을 더더욱 바라고 있다.

 

 

 

4. 볼빨간사춘기 - 나의 사춘기에게


 

 

 

어쩌면 그 모든 아픔을 내딛고서라도

짧게 빛을 내볼까 봐

포기할 수가 없어

 

 

2017년 발매한 앨범 ‘Red Diary Page.1’의 타이틀곡. 당시 <썸 탈꺼야> 와 함께 투 타이틀  체제로 활동했다. <썸 탈꺼야> 에 비교하자면 비교적 낮은 순위였지만 그래도 한동안 차트 상위권에 머물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조금 힘든 사춘기를 겪은, 혹은 겪고 있는 모든 사람이 가진 자신만의 에피소드를 상기시키는 것이 이 곡의 가장 큰 특징이다. 가사를 조금만 뜯어보면 그런 상처를 입은 ‘나’를 보듬고 위로하는 곡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목에서 오는 많은 부담과 불안한 행복을 뒤로 한 채 내가 다시 내디딜 수 있는 이유는 조금이나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될 것이다. 또한 마지막 가사에서 얼마나 아팠을까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나’의 모습을 보여주며 나의 아픔을 가장 잘 알고, 이해하는 존재는 ‘나’이기 때문에 그런 나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것 역시 다른 누구도 아닌 ‘나’ 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너의 마음을 다 안다며 친근하게 나를 토닥이는 느낌에 어리광 부리듯 마냥 우울했다가, 또 힘이 나기도 하는 이상한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신기한 곡이다.

 

 

 

5. 프라이머리 - 독 (Feat. E-Sens Of 슈프림팀)


  

 

 

2012년 발매된 ‘Primary And The Messengers LP’의 수록곡. 이불 속에 있는 내가 결국 이불을 박차고 밖으로 나오게끔 만드는 곡. 사실 이 노래는 보편적으로 추천하는 노래는 아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열아홉 살의 나는 버스로 스물일곱 정거장을 달려야 도착하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 당시 내가 등교할 때 버스에서 무한 반복하며 듣던 노래이다.

 

여러 히트곡을 낸 슈프림팀의 노래는 알았지만 멤버 이센스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가사를 통해 어렴풋이 그의 인생을 느낄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념으로 시작한 무언가를 지속하기는 어렵다. 현실에 안주한 자들을 지나며, 나를 비웃는 자들을 무시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당시의 나도 몇 년간 맹목적으로 달리던 길에 대한 회의감으로 힘든 상태였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속도를 늦추니 달리는 동안에는 느낄 수 없었던 불안감이 나를 엄습해왔다. 그리고 그대로 서서히 가라앉았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건지, 처음의 열정은 온데간데없고 누군가에게 끌려가는 나를 그대로 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매일 아침 텅 빈 버스에 앉아 창 밖을 보며 이 곡을 들었다.

 

 

급히 따라가다 보면

어떤 게 나인지 잊어가 점점

멈춰야겠으면 지금 멈춰

우린 중요한 것들을 너무 많이 놓쳐

 

급히 따라가다 보면

어떤 게 나인지 잊어가 점점

 

 

마냥 우울했던 기분도 이 곡의 말미에는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며 환기된다. 대단한 결심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혼란스러울 때마다 나의 마음을 다잡아준다.

 

 

 

P.S.


 

글을 쓰는 지금은 마지막에 소개한 <독>을 반복해서 듣고 있다. 앞서 언급했지만 이 글을 기고하고 강아지와 산책이라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노래를 나열한 순서의 내가 우울한 감정에서 점점 나아지는 과정과 같다. 제일 처음 <나>를 들으며 자기혐오의 절정을 찍고, 서서히 조금씩 나를 위로하는 곡을 들으며 마지막에는 다시 일어나도록 각성시킨다. 흔하진 않지만 가끔 바닥도 안 보일 만큼 깊은 우울에 빠질 때가 있다. 그래서 이 알고리즘이 먹히지 않기도 한다. 그럴 땐 한 곡을 무한 반복 재생한다. 그러면 나의 우울에 내가 지쳐 스스로 낭떠러지를 기어올라온다.

 

이 방법을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소개할 뿐이다. 내가 이 글을 마무리 지으며 하고 싶은 말은 너무 슬프고 우울할 땐 한 번쯤 그 감정에 충실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전혀 몰랐던 새로운 나를 만날 수도 있다.

 

 

[김혜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