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하이메 아욘의 즐거운 상상 [시각 예술]

글 입력 2019.10.01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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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핫’한 산업 디자이너 중 한명인 하이메 아욘의 대림미술관 전시 <하이메 아욘, 숨겨진 일곱 가지 사연>에 다녀왔다. 스페인 출생의 그는 특유의 강한 개성과, 의외의 재료를 통해 유일무이한 오브제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용성과 편리성을 중시해야 하는 디자인의 보편적 목적에 비해 그의 작품은 심미성에 보다 집중하고 있어 사실 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적진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디자인과 예술의 경계를 과감히 무너뜨리며 디자인의 정의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하이메 아욘의 작품들은 분명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물건들임에도 전시장 쇼케이스 안에서 예술작품 그 자체로서 존재를 충분히 뽐내고 있었다.


이번 전시는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총 일곱 개의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작가가 직접 한국 전시의 공간 기획에 참여해, 공간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으로 보여질 수 있도록 연출에 세심히 신경 썼다고 한다.


먼저 첫 번째 공간인 ‘보석들이 열대 지방에 간 이유’ 에서는 먼저 하이메 아욘이 크리스탈 브랜드 ‘바카라’와 협업해 만든, 크리스탈과 세라믹 소재의 병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실제 용도는 캔디나 작은 물건들을 담아두는 병이지만 찍어 내듯 똑같은 모양, 디자인, 질감이 아니라 각각 다른 모양과 무늬를 가지고 있어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마법 같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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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이어지는 두 번째 공간인 ‘아프리칸도 가족의 사연’과 세번째 공간인 ‘트라팔가르의 체스 경기’에서는 각각 이집트와 아프리카 여행에서 영감을 받은 화병들과 거대 체스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나는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트라팔가르의 체스 경기’가 인상깊었는데, 이는 실제로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에 출품되어 당시에는 체스 말마다 바퀴를 달아서 관람객들이 직접 체스 게임을 해볼 수 있도록 기획된 작품이었다.


이 작품 또한 제목에서 그 의미를 엿볼 수 있듯이, 한산도대첩과 더불어 세계 전쟁사의 3대 해전으로 꼽히는 트라팔가르 해전을 모티브로 했다. 당시 치밀한 전투 전략이 해전의 승패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에 착안해 체스 게임으로 전투를 묘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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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하이메 아욘이 패전국인 스페인 태생의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공개 당시 이 작품을 두고 논란도 이어졌다고 한다. 자국이 패한 역사를 굳이 작품으로 표현했어야 했나는 비판과, 객관적인 역사 인식을 가지고 있는 하이메 아욘이 멋지다는 옹호의 입장이 서로 팽팽하게 맞부딪혔다는 것이다. 흥미롭고도 생각해 볼 점이 많은 에피소드였다.


네 번째 공간인 ‘상상이 현실이 되는 꿈’에서는 산업 디자이너인 그의 ‘회화’ 작품들과 접시 페인팅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자신을 디자이너와 예술가 중 어느 하나로 단정지어 정의하고 싶지 않으며, 단지 ‘하이메 아욘’일 뿐이라는 그의 말을 가장 잘 드러내는 세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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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된 그림들은 말 그대로 그가 꿈을 꾸며 그려낸 ‘상상’을 그대로 화폭에 옮겨 놓은 것들이었다. 한눈에 보면 전혀 무엇을 나타내는 것인지 알 수 없고, 언뜻 피카소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세세히 그림을 뜯어보다 보면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이 하나 둘 씩 눈에 들어왔다.


하나의 그림을 볼 때마다 한참동안 앞에 서서, 때로는 동그랗게 손을 말아 쥐고 망원경을 만들어 보기도 하며 세세한 부분 하나 하나를 조금이라도 더 발견하려 애썼다. 하이메 아욘의 꿈 속 실타래를 따라가는 듯 해서 재미있었던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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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이어지는 다섯 번째 공간 ‘수상한 캐비닛’은 중세 귀족들이 값비싼 진열장에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을 전시하듯이 넣어 두고 간직했다는 풍습에서 영감을 받아, 하이메 아욘이 소중하게 여기는 각종 작품들과 드로잉들이 마치 캐비닛과 같은 공간들 안에 진열되어 있었다.


각각의 작품이 항상 긍정적이고 상상력이 가득한 그의 생각을 모두 잘 보여주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은 단연 2012년에 발표된 ‘Hope Bird’ 였다. 넓은 바다의 수평선 위에 서서 저 멀리를 내다보며, 마치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생길까?’ 하고 무한 긍정으로 미래를 기다리는 귀여운 새. 보는 내내, 흐뭇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귀여운 황금색 새가 나를 토닥이며 위로해주는 느낌도 들어 순간 감동이 밀려오기도 했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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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여섯 번째 공간인 ‘가구가 반짝이는 푸른 밤’에서는 하이메 아욘이 디자인한 가구, 그 중에서도 의자 작품들과 티 테이블이 밤을 상징하는 파란색의 공간 속에 전시되어 있다. 사람이 무언가를 안으려 팔을 뻗는 모양에서 착안해 만들었다는 ‘Catch Chair’, 버섯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작은 티 테이블 등에서 그의 창의적인 사고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가득 느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나는 그가 임신한 아내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안락한 의자를 만들고 싶어 제작했다는 ‘Ro Chair’가 인상적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매우 아늑하고 편안하게 보여서, 그가 아내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들을 거듭하며 이 의자를 만들었을 지가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 공간인 ‘아욘의 그림자 극장’은 작가 자신이 늘 상상하고 떠올리던 캐릭터들을 ‘그림자 극장’ 이라는 공간 안에 거대한 크기로 재현해 놓은 인상적인 세션이었다. 실제로 이 각각의 캐릭터들에게는 고유한 이름이 주어져 있는 것은 물론이고, 애니메이션 효과를 통해 갑자기 그림자에서 빛으로 등장하며 뛰어 노는 효과를 주어 신선함을 더했다.


또한 이 공간에서 반복적으로 재생되는 음악 또한 이 전시만을 위해 작곡된 OST로, 그림자 극장이라는 테마를 잘 표현한 곡이어서 공간과 잘 어울렸다. 이처럼, 마치 하이메 아욘의 꿈 속에 들어와본 것만 같은 그림자 극장을 마지막으로 전시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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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하이메 아욘 전시는 여태까지 대림미술관에서 관람한 전시 중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스러웠던 전시였다. 굳이 본질을 따지자면 산업 디자인에 기반을 둔 전시였지만, 작가 특유의 감각과 개성 덕분에 일반 회화 미술 전시처럼 즐겁게 관람할 수 있었다. 특히 하이메 아욘이 직접 이번 한국 전시의 공간 구성을 기획했다는 점이 더욱 긍정적으로 작용해, 전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관람하는 내내 들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전시품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점과 트라팔가르 체스 작품의 경우 거대한 작품 크기에 비해 전시 공간이 협소하여 거울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답답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 세션인 ‘그림자 극장’의 경우 포토존적인 의도가 많이 가미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점이다. 만약 다른 지역에서도 전시를 이어갈 예정이라면 이러한 단점들이 보완되어 관람객들이 한층 더 만족스러운 전시를 관람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끝으로, 한편으로는 이번 전시처럼 산업 디자인과 예술이 융화된 신선한 전시들이 보다 많이 열려,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 작업들이 활발하게 이뤄졌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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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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