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모든 주방에는 이야기가 있다, '음식의 말' [도서]

You and I Eat the Same
글 입력 2019.09.24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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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말

레네 레제피, 크리스 잉 외 지음
박여진 옮김 / 윌북 출판사


의식주에서 '식'을 담당하고 있는 음식에 대해 다룬 책이라 아무래도 가볍게 생각하고 책을 읽었다가, 아래 대목을 읽고 문득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저렴하게 만들어진 음식은 그럴싸한 풍미를 주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되고 제작된다. "1퍼센트가 90퍼센트의 부를 가지는 세상이 됐다고 생각해요. 다수는 침묵하죠. 그들은 왜 자신들이 뚱뚱한지, 슬픈지, 기분이 좋아지려고 쇼핑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 본문 38p 中



저자와 마거릿이 말한 이 구절은 내게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실태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건강에 좋은 유기농 채소나 값비싼 부위의 고기를 살 돈이 없으니 항상 질이 안좋은 싸구려 통조림 캔이나 가공육류를 사고, 또 그런 것들을 주로 먹을 수밖에 없으니 건강에도 무리가 가고 비만이 되기 십상이다. 무한경쟁사회 속에서 타인과 나를 비교하며 끝없이 자책을 하니 우울증이 오고 매일 슬플 수밖에 없고, 이 슬픔을 미루기 위해 그러니까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 쇼핑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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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종류의 상품으로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다이소가 열풍인 이유도 아마 이것 때문이리라. 내가 가진 적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최대의 행복. 소확행, 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가격과 상품의 퀄리티는 비례한다. 가격이 낮을 수록 상품의 가치도 낮을 수밖에 없다.

이는 식료품 쇼핑도 마찬가지이다. 영국에서 잠깐 머무는 동안 동네 마트에서 식료품 코너를 돌며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난다. 과자나 통조림 캔, 레토르트 식품, 마트 안 베이커리에서 만든 빵과 타르트, 음료수 등의 가격이 터무니없이 쌌기 때문이다. 반면 괜찮은 맛을 보장하는 외식은 꽤 비싼 편이었다. 그렇다면 자연히 마트에서 파는 값싼 재료들을 가지고 직접 요리를 해먹거나 레토르트 상품을 구매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음식의 말'은 단순히 특정 음식의 레시피나 요리의 재료에 대해서만 논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와 문화, 사회 현상에 대해 다루기도 하고, 각기 다른 나라의 고유한 전통과 역사가 깃든 다양한 종류의 음식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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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친숙한 음식이기도 한 치킨에 얽힌 역사에 대해서도 이 책에서 다룬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맛볼 수있는 극강의 보편성을 가진 튀긴 닭 요리. 사람들은 어떤 브랜드의 치킨이 맛있고, 어떤 종류의 치킨들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최초로 튀긴 닭을 판 사람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렇다면 인도를 대표하는 요리인 카레는 어떤가? 카레는 어떻게 전세계 곳곳의 마트와 가정과 식당과 레스토랑에 침투할 수 있었던 걸까? 그 궁금증은 '음식의 말'에서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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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뿐만이 아니다. 자신만의 특별한 요리를 내세워 소규모 식당을 개업한 창업자들의 진솔한 인생 이야기 역시 다룬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바로 비니 프라드한의 이야기이다. 프라드한은 네팔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부유한 집안에서 고등교육을 받았고 어릴 적부터 요리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데다 자질도 뛰어났다. 그러나 친구의 소개로 알게된 전남편을 만나면서부터 인생이 망가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9년간 알콜중독자인 전남편으로부터 극심한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고통스럽게 살다가 우연히 라 코시나를 알게 되어 심사에 신청했다가 합격한 후 전남편으로부터 받은 정신적/육체적 상처를 요리로 극복하고 음식에 대한 열정으로 다시금 자신의 삶의 이유를 되찾은 스토리는 거의 한 편의 감동적인 영화를 보는 것과도 같았다. 프라드한의 미래에 대한 계획과 앞으로의 포부를 밝힌 부분에서는 내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사담이긴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된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미션 지역에 위치한 음식 관련 기관 '라 코시나'는 정말 의미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초보 사업가들이 식당을 경영할 수 있게끔 교육과 마케팅, 메뉴 개발 등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는 곳인데, 이런 프로그램이 우리나라에도 있으면 굉장히 좋을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도 이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흘러 들어와 공동체를 이루며 단일민족 국가에서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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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들만 골라 읽는 '책 편식'이 심한 편이다. 그 말인 즉슨 내게 익숙한 소재나 주제에 관한 책이 아니면 눈길도 안 준다는 소리다. '보나마나 그들만의 세계에 빠져서는 나는 이해도 못하겠지'라는 생각을 가진 채.

그러나 '음식의 말'만큼은 예외다.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을 담아낸 아름다운 풀컬러의 사진들과 다양한 사람들이 써낸 유려한 글들은 슬쩍 보기만 해도 흥미를 자극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단숨에 읽어나갈 수 밖에 없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미식가를 위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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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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