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삶이 찬란하지는 않지만, 괜찮아. - 연극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

공연을 보는 우리도 다 괜찮아질 수 있기를.
글 입력 2019.09.22 03:0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8.jpg



우리는 남들에게 친절해야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전쟁을

하는 중이라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최근 들은 글귀 중에 가장 와 닿는 말이었다. 이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친구 때문에, 가족 때문에, 연인 때문에, 미래 때문에, 가끔은 나 자신 때문에 세상은 전쟁터고 각자 자신의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찬란하게 빛나는 내 인생, 미래 같은 말은 어딘가 멀고 어색하게 느껴진 지 오래다.


대학 입시와 취업을 준비하고, 취업하고 나면 집을 사기 위해 악을 쓴다. 흐릿하게 바라기만 하던 목표인 행복은 인생의 목표처럼 느껴졌던 단계를 성취한다고 해서 거저 쥐어지는 게 아니다. 언제쯤 허상의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그저 나아가는 수밖에. 그러다가 지친다면?


때로 한국 사람들은 지친다는 단어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 지쳐서 아무것도 못 하거나, 지쳐서 잠시 쉰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가만히 시간을 보내자니 아깝고, 이 김에 놀면서 에너지를 얻자니 어떻게 노는 지는 모르겠고, 결국 자기 계발이나 해야겠다며 다시 걷는다. 자기 계발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그렇게 자신을 몰아치다가 어느 순간 쉰다는 단어조차 각자의 사전에 사라질까 두려울 뿐이다.



14.jpg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의 주인공인 찬란은 그런 의미에서 누구보다도 한국인이다. 앞날이 찬란하게 빛나라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이지만, 뜻이 퇴색한 지는 오래되었다. 그는 대학교에 오자마자 과제와 일로 숨 쉴 틈이 없이 달린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누군가 그를 멈춰 세우기 전까지.


넌 나의 주인공이야. 굳이 너여야만 해.


폐부될 위기에 놓인 연극 동아리는 마지막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공연하기로 한다. 동아리의 부장 도래는 억지를 부리며 삶이 바쁜 찬란을 자신의 대학 시절 마지막 공연의 주인공으로 세우려고 한다. 도래는 삶이 가쁘다는 찬란의 말이 꼭, 나 지금 숨 막혀요, 하는 S.O.S 신호처럼 들린다고 말한다. 그래서 도래의 공연 주인공은 굳이 찬란이어야 한다고.


얼떨결에 동아리에 가입한 찬란은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멈추고, 공연의 바탕이 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기억하지도 싫은 어린 날의 상처, 누구에게도 말하기 싫은 비밀이 제대로 아물지 않은 채 계속 찬란을 괴롭혔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닫는다.


때로, 종전이라고 말하지만 정말로 전쟁이 끝나지 않은 경우가 있다. 전쟁에 사용했던 지뢰가 아직 묻힌 채 남아있고, 전쟁으로 다친 사람들이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회복되지 못했음에도 ‘종전’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모든 상황이 끝난 듯 군다. 사람의 상처도 마찬가지다. 그 상황을 벗어나면 끝난 것처럼, 아무 일 아닌 것처럼 굴지만 그때 받은 상처는 아직 기억 어딘가에, 가슴 한구석에 묻힌 경우가 많다. 그런 상처는 아무리 잘 묻어둬도 언젠가 지뢰처럼 펑, 터질 수밖에 없다.


도래의 연극은 연극부 공연의 주인공인 유와 찬란의 상처를 조심스럽게 꺼낸다.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다독여주고, 안아주도록 한다. 그뿐만 아니라 어릴 적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의 외면을 받고 자란 도래 자신의 상처와 만나는 남자마다 그에게 불안과 상처를 주는 혁진의 아픔, 고만고만한 스펙과 성적으로 옥죄는 미래를 걱정하는 시온의 공포도 서로 나누며 덜어준다. 이들 사이에선 어떤 속마음을 하더라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삶이 사람에게 주는 고통 속에서, 연극 동아리 다섯 명은 이렇게 말한다.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



16.jpg
 


아마 이 이야기를 접하며 단 한 번이라도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남에게 상처 될 말로 자신을 방어하거나 남들과 거리를 두고 자신을 방에 가두는 일, 혹은 그저 남들이 원하는 대로 착한 아이 흉내를 내는 둥 행동은 나 자신이나 주변에서 종종 보인다. 우선 당장 상처받는 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필요한 행위이다. 그러나 지속한다면 결국 나의 성장을 방해한다. 나를 지켜주는 벽이 때론 나를 가두는 벽이 되기도 하듯이.


벗어나는 건 각자의 선택이고 몫이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 그건 당신의 삶이니까. 그러나 옆에서 찬란이가, 도래가, 유와 혁진이와 시온이 그 고민을 들어주고 안아줄 수는 있다.


당신. 일 때문에, 사람 때문에, 미래 때문에 막막하거나 무섭다면, 과거가 당신을 웅크리게 한다면 이 웹툰과 공연을 보았으면 좋겠다. 겉모습도 성격도 취향도 다르지만 결국 똑같이 ‘찬란하지 않은’ 우리의 만남이 당신의 짐을 조금을 덜어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나면, 당신은 당신의 이야기를 공연할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포스터_ 연극_찬란하지않아도괜찮아.jpg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


일자 : 2019.10.05 ~ 2019.11.10

시간
평일 8시
토 3시, 7시
일/공휴일 2시, 6시
(월 공연없음)

장소 :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

티켓가격
전석 50,000원

주최/기획
콘티(Con.T)

관람연령
중학생이상 관람가

공연시간
100분



[김혜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4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