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늦었지만, 가을 휴가 [사람]

"호캉스"로 힐링 휴가 떠나다.
글 입력 2019.09.2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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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바쁜 일정으로 휴가를 떠나지 못했다. 큰 프로젝트를 앞두고 어쩌다 짬이 생겨 멀리 가지는 못하고 동생과 1박 2일로 호캉스를 가기로 했다. 사실 제주 김녕 바다로 가서 해수욕을 즐기고 싶었지만, 이젠 여름이 정말 끝났는지, 저녁엔 제법 쌀쌀해졌고, 무엇보다도 여분의 짐 없이 홀가분하게 동생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여유롭게 쉬고 싶었다. 가을에 맞춰 어텀패키지 라는 상품을 결제하고 남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을 목요일 오후, 우리는 한껏 신이 난 발걸음을 하고선 호텔로 향했다.

 

그동안 난 일을 하다 지치거나 혼자 조용히 있고 싶을 때면 아주 가끔 호텔을 이용하곤 했다. 이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혼자만의 쉼이 필요할 때,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에 이만한 게 없다. 요즘은 나보다도 더 바쁜 동생의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고, 여유로운 호캉스의 매력을 꼭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동생은 여행지가 아닌 호텔로 떠나는 휴가는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기억에 남을 좋은 경험이 되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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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로비는 평일이어서 그런지 전혀 붐비지 않았다. 친절한 호텔리어의 응대로 체크인을 마친 뒤, 배정받은 전망 좋은 우리의 방으로 가 짐을 풀었다. 나는 호텔방에 처음 딱 들어섰을 때, 정돈된 그 깨끗함과 익숙지 않은 새것 같은 린넨 냄새를 좋아한다. 서울의 호텔일 뿐인데도 호텔방에 들어서면 정말 멀리 떠나온 듯하여 기분이 좋아진다. 바스락거리는 침구에 얼굴을 부비적대며 여기 있는 동안은 우리 아무것도 하지 말고 푹 쉬다가자며 동생에게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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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속삭인 지 십 분도 채 되지 않아서 나의 손은 핸드폰 삼각대를 조용히 꺼내고 있었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동생을 위해 이번엔 기꺼이 동생의 찍사가 되어주기로 마음먹었다. 혼자 사진을 찍겠다는 동생을 데리고 포즈를 취하라며 숙소 여기저기에서 구도를 잡아 사진을 찍어주었다.


오히려 내가 사진찍는 것을 낯간지러워해서 그동안은 자매 샷을 많이 찍지 못했는데, 이번엔 마음먹었으니 자매 샷, 투 샷 무한정으로 많이 찍는다. 익숙하게 포즈를 취하는 동생에 반해, 여간 쑥스러워 어색하기 짝이 없는 포즈를 취하는 나를 보며 동생이 깔깔거린다. 찍힌 사진을 보니 도저히 안 웃을 수가 없다. 나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그저 박장대소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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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새 저녁을 먹을 시간이다. 호텔과 연결된 쇼핑몰이 있어서 그곳에서 저녁도 먹고, 간단한 쇼핑을 하고자 했다. 오랜만에 동생과 둘이서 팔짱 끼고 쇼핑을 하러 다니는 순간들이 그저 너무 좋았다. 그동안 각자 너무 바빠서 이러한 시간을 너무 오랫동안 가질 수 없었다. 다른 형제, 자매들도 물론 그렇겠지만, 우리 둘은 자매임에도 특별하게 더 친하다.


어릴 적부터 무진장 싸우면서 컸다. 성인이 된 후에도 어린 시절 그때처럼 여전히 싸웠지만, 화해할 땐 서로 내가 더 잘못했다고 엉엉 울며불며 부둥켜 껴안고 눈물의 화해를 하곤 했다.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고, 각자가 해줄 수 있는 충고와 질책도 서슴없이 한다.


감정이 상할 법도 한데 분명 그 후엔 조금 더 나아진 모습이기에 그러한 과정과 순간들이 애틋하고 감사하다. 무엇이 되었던, 무슨 일이든 그 시작과 끝에 늘 함께하며 응원하고 다독인다. 나에게 동생은 사랑하는 부모님과는 또 다른 방식의 별개로 커다란 힘을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오랜만의 자매출동에 신이 난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배가 고픈 동생은 그저 나를 식당으로 이끈다. 맛있는 한식을 배 두둑하게 먹으며, 이때도 난 우리의 사진을 연신 찍어댄다. 사진 속에 우리가 잇몸까지 내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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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서 간단히 요깃거리 할 간식 몇 가지를 사 들고 우리는 다시 방으로 올라갔다. 이미 어두워진 창밖은 끝없이 반짝이는 불빛들로 멋진 야경을 큰 창 가득 선사하고 있었다. 어? 그런데 못 보던 무화과 케이크 하나가 테이블 위에 예쁘게 세팅 되어있다.

 

동생과 난 의아해하며 로비에 바로 전화를 걸었고, 알고 봤더니 예약할 때 동생과 무척 오랜만에 갖는 휴가라는 나의 말에 호텔리어의 배려로 기분 좋은 선물을 우리에게 해준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라 더 감사했고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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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마음으로 테이블 한 쪽에 케이크를 잘 놓아둔 채, 서둘러 수영복을 챙겼다. 올여름, 한 번도 해수욕을 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워 수영장도 가기로 했다. 동생은 물을 나만큼 좋아하지는 않아서 선베드에서 쉬기로 했고, 난 물 만난 물고기마냥 파닥거리며 수영장 레인을 계속 오갔다.

 

역시 평일이어서 수영장 또한 한적했고, 거의 한 레인을 나 혼자 통으로 전세 낸 것처럼 편안하고 여유롭게 수영을 즐길 수 있었다. 계속 신나게 수영을 하다 혹여 선베드에 누워있는 동생이 심심해하지 않을까 싶어 동생 쪽을 바라보았더니 나를 바라보며 더없이 여유롭고 환한 표정으로 웃고 있다. 거참, 흐뭇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확실히 물놀이하기에 요즘 날씨가 더는 적절치 않은 게 분명하다. 수영하고 방으로 올라가는 길이 어찌나 춥던지, 너무 추워서 껴입은 샤워가운도 역부족이다. 잔뜩 움츠려져 동그래진 내 어깨를 보고는 뒤에서 동생이 키득 키득거린다. 나중에 동생이 찍은 사진을 봤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안 웃을 수가 없다. 어깨가 어찌 그리 동그랗지?

 

분명 호텔방에 처음 들어와서 내가 동생에게 했던 말이 있다.


“여기 있는 동안은 우리 아무것도 하지 말고 푹 쉬다 가자.”


라고. 그런데 그럴 수가 없다. 혼자가 아닌 동생과 둘이 온 호캉스는 함께 할 게 너무 많다. 다 안 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아쉬울 것들이 많아서 동생을 이끌고 바쁘고 빠르게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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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에게 로비 라운지에서의 색다른 기분전환도 시켜주고 싶었다. 우리 호텔방에서의 야경도 무척 멋있었지만, 로비에서 보이는 야경이 훨씬 더 멋있으니까. 그리고 그 야경과 어우러지는 잔잔하게 깔린 음악과 각자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사람들의 적절한 분위기, 멀리 떠나지 않더라도 이렇게 가벼운 맥주한 잔과 칵테일 한 모금 만으로도 기분 좋은 엔도르핀을 동생과 함께 만끽할 수 있음에 기쁜 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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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간 못했던 얘기들을 많이 풀어놓았다. 그 안엔 각자의 연애 얘기도 있었고, 우리 또래의 여느 사람들처럼 현재 우리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 회사 생활에서의 답답함 등 평범하지만 절대 똑같을 수 없고, 정답이 없는 어려운 얘기들을 이어나갔다.

 

자기일에 있어서 프라이드도 강하고 워낙에 똑부러지는 성격이라 다른 건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보다 조금만 더 짐을 내려놓았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요즈음 옆에서 보아도 너무 바쁜 회사생활에 많이 지쳐 보였는데, 실상 지금보다 더 지칠까 봐 난 그게 너무 걱정되어 조금의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얘길 했다.

 

또 한편으론 어릴 적, 내가 세상 전부인 마냥 나만 졸졸 따라다니고,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을 다 따라 했었던 그 작고 귀여운 꼬맹이가 어느새 이만큼이나 커서 나와 함께 고민을 나누며 사회생활을 잘 해 나가는 큰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동생의 성장이 무척이나 기특하고 뿌듯하다.

 

얘기를 나누면서도 동생의 인생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나는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그 노력의 결실로 멋진 사진도 많이 찍었다. 난 좀 더 포즈를 연습해야겠다. 동생이 찍어준 내 사진은 여전히 어딘가 우스꽝스럽다. 그래도 우리의 모든 사진에 즐거운 기분이 그대로 담겨있다. 우리들의 기분 좋은 사진과 멋진 야경을 배경 삼아 우리는 마지막 잔을 “짠!” 하고 건배했다.

 

방으로 올라가며 동생이 얘기한다.


“근데 언니, 우리 왜 이렇게 바빠? 아무것도 하지말자며. 큭큭”

“그러게. 뭐이렇게 할 게 많아? 가만히 누워있을 시간이 없네. 으하하. 그래도 좋지!”

“응, 언니랑 있어서 너무 좋아. 그냥 다.”

 

아니, 오히려 동생, 네 덕분에 언니가 더 많이 행복한 휴가였어.


우리들의 잊지 못할, 서울의 첫 번째 호캉스였다. 더불어 사랑하는 동생에게 이 말을 꼭 전해주고 싶다.

 


사랑하는 현진아,


너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정말 그걸로도 충분해. 괜찮아.


정말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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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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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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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하는스누피
    • 행복이 여기까지 전해져요ㅎㅎ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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