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교수님, 제 추석은요? [사람]

과제에 치인 대학생의 투정 대잔치
글 입력 2019.09.13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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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가 시작되었다. 나는 이틀째 과제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랜만에 집에 와서 내내 노트북만 보고 있다. 하나 끝내면 다른 과제, 끝내면 또 다른 과제. 오늘이 추석 당일이었던가?

무슨 과제가 그렇게 많냐고 하는 가족들을 이해 못 하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니까. 말도 안 된다. 나도 이 정도일 줄 몰랐지. 데드라인이 연휴 중에 있을 거라고 내가 생각이나 했겠냐고.

집을 향해 오던 날은, 그냥 책이 좀 무거웠다. 전공 서적 두 권과 무거운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광역 버스를 타고 오는데, 그때도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그냥 ‘무겁다, 빨리 가자.’ 하다 보니 집이었고, 타자 조금 두드리다 보니 이틀이 지나 있었다. 맙소사, 이렇게 추석이 지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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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은 내 마음도 모르면서!



내 마음을 가장 몰라주는 사람들은 누가 있을까 생각해 봤다. 첫째는 잔소리 하는 엄마, 둘째는 태어났는지 알 길이 없는 남자친구, 그리고 마지막은 교수님일 것이다.

나는 정말 밤새 그 교수님 숙제만 하다 늦게 잤는데, 1분 늦었다며 단호하게 점수를 깎으시던 전공 교수님. 9시 수업에 늦을까 봐 7시부터 교실 앞에서 졸고 있었는데, 그런 나를 보고 오자마자 자냐며 한숨 쉬시던 라이팅 교수님. 영어 단어 한번 검색했다고 남겨서 휴대폰 쓰지 말라고 주의를 주시던 교양 교수님.

다들 내 마음도 하나도 모르면서.

나도 잘하고 싶다. 나도 올A 받고 싶다. 당연히 학점이 제일 중요한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 뭔가 자꾸 꼬인다. 대학생들은 아마 알 것이다. 계획대로 살아보려 해도, 이상하게 꼭 하나씩 어긋난다. 자꾸 예상치 못한 일정이 생기는데, 그게 그렇게 중요할 수가 없다.

물론 그래서 과제를 소홀히 하겠다는 건 아니다. 어긋난 일정도 해결하고, 과제도 다 하고 그렇게 살긴 하는데,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이다. 대학생은 놀고먹는 줄 아는데, 우리도 엄청 바쁘고 중요한 일이 많이 있다. 그래도 다 잘해보려고 하는데, 조금만 예쁘게 봐주면 좀 좋냐 이 말이다.



교수님, 제 전공은 따로 있는걸요?!



교수님들을 왜 학생들이 자기 수업만 수강한다고 생각하시는 걸까? 교수님들은 학생들이 자기 과제만 하면 끝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지만, 우린 그런 과제는 적게는 5개에서 많게는 7개까지 해내야 한다. 이건 정말 큰 문제이다!

라이팅 교수님은 내가 라이팅 전공인 줄 아시는 것 같다. 윤리학 교수님은 내가 윤리학 전공인 줄 아시는 것 같고, 경제학 교수님은 내가 경제학 전공인 줄 아시는 것 같다. 그럼 학점을 더 주던가. 3학점짜리 수업들은 교실에 크게 “3”이라고 써 놔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수님, 3학점! 우리 3학점 어치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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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모이면 맨날 하는 주장이 있다. 교수님들끼리 모여서 서로 오늘은 얼만큼의 과제를 내줬는지 나누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아! 내 과제만 과제가 아니었구나!”하고 깨달으시지 않을까? 이건 정말 중요한 일이다.

교수님들은 서로 친하시지 않은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그토록 다른 교수님의 수업과 과제를 모를 수가 있을까? 하루 몇 마디라도 대화의 시간을 가지면 적어도 PPT 발표나 논문 제출이 겹치는 충격적인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친구들과 과제량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 이 과목은 얼마를 내줬고, 저 과목은 어땠고. 친구도 알려준다. 우리는 깨닫는다. “너무 많잖아!!!”

이건 확실히 소통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처럼 교수님들도 소통을 해야 한다. “교수, 과제를 말하다” 같은 시간 학교에서 제공 안 해주나? 이거 진짜 필요한데…



교수님! 전혀 HAPPY CHUSEOK이 아닌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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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연휴에 고생하시면 안 되니까 과제는 조금만 드릴게요~”

속았다. 또 속았다. 적지 않을 거 뻔히 알았는데 괜히 기대했다. 조금만 준다는 말에 순간 설렜던 내가 밉다. 이젠 안 설렐 때도 됐는데 말이다.

화요일 3연강을 듣는 내내 교수님들의 마지막 말은, “Happy Chuseok!” (필자는 뉴욕주립대 송도캠퍼스에 재학 중이다.) 밝게 웃으며 인사하고 나왔지만 추석이 다 가도록 “Happy”도 “Chuseok”도 느껴볼 수 없었다.

이럴 거면 과제 적다고 말하지 말지. 추석 잘 보내라고 말하지 말지. 그냥 과제 열심히 하라고 응원이나 해주면 될 걸 굳이 “Happy Chuseok” 해야 했나. 속상하게 진짜.

나는 그나마 연휴에 시골에 안 가서 다행이지 시골에 간 친구들은 전부 할머니 집에서 에세이 쓰고 있단다. 심지어 미리미리 하지 그랬냐고 잔소리를 들었다는데, 제출일이 추석 당일인 걸 어떡해요 어머니. 친구도 울고 나도 울고 애꿎은 호박전만 차게 식어갔던 연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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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thanksgiving day”인 건 추수를 감사하는 날이어서지, 과제를 thanksgiving 하는 날은 아니다. 어떻게 시간이 흐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 과제도 이제 슬슬 끝을 보이는 것 같기는 하다. 종이와 책이 사방에 흩날리는 나의 방은 시간이 멈춰 있는 것만 같다. 이제 슬슬 노트북 앞에서 벗어나고 싶고, 추석 특집 영화도 보고 싶은데, 지금 이걸 안 하면 “Happy New Year” 역시 할 수 없겠지?



존경하는 교수님, 안녕하세요. 저는 ㅇ요일 ㅇ시에 교수님의 ㅇ수업을 듣고 있는 경영학과 최은희라고 합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행복한 추석”에 대해 질문이 있어 메일로 문의드립니다.

행복한 추석에 대해서, 저는 “꿀 같은 휴일”로 방향을 설정하였습니다. “휴식”과 “가족”을 연결해 풀어나가고자 하는데, 교수님께서는 “과제”를 강조하셨던 것 같아 혹시 이 부분이 문제가 되진 않을까 우려가 됩니다.

회신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날이 추운데, 감기 조심하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은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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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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