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다락방에서 미술사 여행을 - 다락방 미술관 [도서]

미술... 좋아하긴 하는데 '알못'입니다
글 입력 2019.09.0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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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좋아했다. 어릴 적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가 서양미술사 책이었고, 그 시절 나는 내가 훌륭한 디자이너로 클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취미로 남길 때 가장 빛날 수 있는 재능과 열정을 가졌던 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미술에 시들해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붓과 종이와도 이별했다.

지금은 취미로도 남지 못한 기억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미술작품을 볼 때면 많은 생각이 든다.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이 작가는 이 그림을 그릴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며 생각이 퍼지는데 내 미술 지식은 얄팍하기 그지없어 언제나 와, 멋지다, 하는 감상에서 끝맺곤 한다.

단순한 감상이나 감탄이 유치하다는 뜻은 아니고, 알수록 보인다는 말에 공감하고 싶은 욕심 탓에 미술 작품을 볼 때면 조금쯤 미련이 남는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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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미술관 – 그림 속 숨어있는 이야기’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책이 아닌가 싶다. 작가에 공감하고 싶지만 미술 관련해서는 가방끈이 없다시피 해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 감도 오지 않는 사람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준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너무 두꺼워서 무섭고, 어린이를 위한 그림의 역사 같은 책보다는 깊은 지식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나는 르네상스 이후의 서양미술을 특히 좋아하는 편이었다. 신화에서 벗어나 인간에게 집중하기 시작한 시대이자 작가들마다 고유의 개성이 뚜렷하게 꽃피우기 시작한 때라고 느낀다. 비슷한 맥락에서 근현대 미술도 좋아한다. 어릴 적 내가 가장 좋아하던 작가는 피카소였다.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리지?’ 내가 피카소의 ‘우는 여인’과 ‘아비뇽의 여인들’을 보고 처음 느낀 감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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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피카소를 가장 좋아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잘 살던 작가였기 때문이었다.

어릴 적 내가 감탄하던 그림을 그린 대다수의 작가들은 불운한 인생을 살다가 불운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별이 빛나는 밤에’를 보고 고흐의 인생사를 찾아보다가 디자이너의 꿈을 접을 뻔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피카소는 달랐다. 미술을 해도 이렇게나 잘 살 수 있구나! 어렸던 나에게 희망이 되어 준 작가였다. 너무나 단순했던 사고 흐름에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그만큼 어렸기 때문에 놀랍도록 직관적일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락방 미술관’에서도 피카소와 고흐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릴 적 내가 생각했던 그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쨌든 나는 내 생애를 그림에 바쳤어. 그것은 예술가의 숙명이기도 하니까 달게 받아들이자. 그러나 문제는 바로 너야. 너는 화상이 아니라 예술가라고. 앞으로 네 인생을 어떻게 살 거니. (...)

- 125쪽


‘어쨌든 나는 내 생애를 그림에 바쳤어.’

삶을 마무리하기 직전, 나도 내 생애를 무언가에 바쳤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이 무어라 이야기하건 나는 나의 방식대로 내가 사랑한 무언가에 열중했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까. 동생 테오에게 자신의 인생을 그림에 바쳐왔다고 고한 고흐의 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결국 그의 열정과 신념은 미술사의 한 가운데에 비석처럼 세워졌고 아직까지도 사람들은 ‘별이 빛나는 밤에’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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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피카소는 다시 한 번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작품을 그렸는데, 우리나라 황해도 신천 지역에서 벌어진 대학살을 주제로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in Korea>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전쟁을 주제로 한 그림이다. 그림의 왼편에는 아이를 안고 우는 여인, 체념한 듯 눈을 감은 임신한 여인, 놀라서 달아나는 아이, 이 상황이 뭔지 모르고 흙장난 중인 아이가 그려져 있고 오른편에는 벌거벗은 사람들을 향해 로봇처럼 서서 총을 겨누는 군인들이 있다. 국적을 알 수 없는 여인들, 투구를 써서 누가 총을 쏘는지 모를 군인들을 그려 넣은 것은 학살의 주체가 누구인지보다는 무방비 상태의 사람들에게 저지르는 인간의 무자비함과 전쟁 자체의 참혹함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 198쪽


피카소와 한국전쟁이라니, 참으로 이질적이다. 한국전쟁 당시 참혹하게 망가졌던 한반도를 그려낸 ‘한국에서의 학살’. 사진을 찍어낸 듯 정확하게 그려내지 않고 피카소만의 기법과 시선으로 현실을 재조합해 화폭에 담아내어 더욱 인상적이다.

동양의 가난과 근대화, 그리고 전쟁을 단순히 낯선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다는 것 또한. 피카소 그림의 매력은 이런 게 아닐까. 남들이 보는 세상을 조각조각 쪼개어 자신만의 색상으로 꾸며낸다는 것. 제2의 피카소가 없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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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미술관’은 여성 작가들에게도 주목한다. 특히 젠틸레스키는 내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작가였는데, 그의 작품 ‘수산나와 두 노인’,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에서 젠틸레스키의 대담함을 엿볼 수 있다. 내가 젠틸레스키를 좋아했던 이유는 동시대 다른 작가들에게선 찾아보기 힘든 여성의 역동성 때문이었다.

소비주체였던 남성의 시선을 의식하기라도 하는 듯이 다소곳하게 앉아 붉게 뺨을 물들이고 수줍게 시선을 내리깐 여성 모델은 수없이 볼 수 있었지만, 젠틸레스키의 작품 속 여성들처럼 자신의 행동에 집중한 여성 모델은 보기 힘들었다.


정원 풍경 속 여자의 누드는, 그림을 매입하는 사람도 그리는 사람도 모두 남자인 사회에서 흥미와 가치가 있었다. 그러니 희생자인 수산나의 고통은 고려되지 않은 채 남자 화가들에 의해 두 노인을 유혹하는 여자로, 때로는 두려움에 벌벌 떠는 연약한 모습으로 재현되었다.

그러나 아르테미시아가 그린 수산나는 이 상황이 몹시 불쾌하다. 여자의 누드에만 초점이 맞춰진 다른 그림들과는 달리 이 그림에는 수산나가 느끼는 수치심과 저항감이 온몸으로 드러나 있다.

(...)

‘남자를 유혹해 함정에 빠뜨리는 여자’ 유디트는 보는 남자들의 입맛에 맞게 재생되어 왔다. 살인을 저지르기에는 유악한 자세에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순진한 얼굴이거나, 장군의 목을 베면서까지 관능적 표정을 짓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반면 아르테미시아가 표현한 유디트는 단호하다. 자신의 사명을 잘 알고 있으며 망설임이 없다.

- 18~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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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로서의 여성이었던 많은 여성 화가에 주목하는 ‘다락방 미술관’에는 젠틸레스키뿐 아니라 베르트 모리조, 메리 카사트, 수잔 발라동, 나혜석 등 남성 작가에 가려졌던 여성 화가나 시대와 맞섰던 여성을 비춘다.

쉽고 흥미 있는 서술 덕에 앉은 자리에서 뚝딱 읽어버린 책이다.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매 장을 마무리할 때마다 해당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미술관을 소개하고 있어 자꾸만 여행을 가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힌다는 것이다. 돈도 시간도 없는데 이탈리아나 독일, 프랑스로 떠나버리고만 싶어졌다. 언젠가 꼭 다락방 미술관에서 벗어나 진짜 미술관을 돌아다니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버킷리스트가 추가되었다.

그러나 아직은 여의치가 않다. 그러니 책으로라도 대리만족을 해야겠다. ‘다락방 미술관’을 다 읽고 나니 정말 전 세계 주요 미술관을 쭉 돌아보고 온 것만 같은 만족감이 들었다. 이 책이야말로 미술은 좋아하는데 잘 모르는 당신에게 딱 맞는 미술사 세계여행이 아닐까.





다락방 미술관

- 그림 속 숨어있는 이야기 -



저자: 문하연

출판사 : 도서출판 평단

분야
예술/미술

규격
신국판(153*224mm)

쪽수 : 352쪽

발행일
2019년 8월 20일

정가 : 16,800원

ISBN
978-89-7343-519-7 (03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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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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