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와 모델] 이지선

글 입력 2019.09.01 01:5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눈 그리기 어려워. 그리기 싫어.."

"그럼 그리지 마요. 그게 진짜 도움돼요. 아무 생각 없이 그리는 게 도움 돼요. 생각해서 그리면 도움이 안돼요. 방해만 되고."



지선 1.jpg
 


나와 같이 그림을 그리는 친구이다. 물론 개성도 강하거니와 내적인 에너지도 엄청나게 강해서 그림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친구이다. 나는 그림이 취미라면 이 친구는 정말로 직업이 가능한 친구. 나는 그림 외에도 취미가 많지만 이 친구는 그림만 있다. 그래서 다양한 시각 세계를 만들어나간다. 그래서 한없이 부럽기도 하다. 같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써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 있다. 각자 작업을 보여주면서 이야기하고, 나를 알아주는 동지를 만나서 행복했다.

요즘 자꾸 눈코입과 형태 안으로 들어가려고 해서 고민이 많다. 그리면서도 어렵다고 하니까 '그리기 싫으면 안그리면 된다고' 아주 쉽게 말해주었다. 사실 맞는 말이지만 나 스스로 적용하기에는 어렵다. 하지만 남이 내게 말해주니까 좀 더 수월해졌다. 덕분에 자유롭게 틀을 벗어나서 그림을 그렸다. 오랜만에. 족쇄를 풀어주는 한 마디였다.

노란색을 먼저 칠했다. 머리카락을 그리고 공간을 그렸다. 머리카락을 그리는데 나도 모르게 묘사할 뻔 했다. 그걸 친구가 잡아주었다. 그래서 머리카락을 그리다가 바로 공간으로 넘어갔다. 얼굴도 안그리고 그냥 넘겼다. 오랜만에 모처럼 선과 색에 취해서 그림을 그렸다.

그러고보면 전에는 싫으면 안 그리고 정말 내 마음대로 갬성대로 했었는데 -눈 앞에 사람을 두고 옷이 마음에 든다고 얼굴 놔두고 옷만 그리거나, 네거티브로 사람 빼고 공간만 그리는 등- 더 자유로웠었는데- 언제부턴가 시작 전 구상을 하고 들어갔다. 그래서 좋으면서도 어렵고 싫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 또 자꾸 갇히고... 그래서 힘들었나보다. 이 친구가 해준 말을 오래오래 기억해야지.

내가 똑같이 그리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똑같이 그리는 기술이 되고 싶지 않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나만의 영역을 표현하고 싶고, 대체 불가하고 싶다. 똑같이 그리는 건 실제 존재하는 것과 똑같으니까, 차이가 없으니까.그렇게 되면 그리는 내가 존재하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그래서 의미 없는 것은 지우고 싶다. 과한 자의식이라고 생각될지 몰라도, 내 그림에 관해서는 언제나 내가 옳으니까.


*


"제가 하는 말을 받아 적으니 제가 뭐라도 된 것 같네요."

"아냐아냐, 이건 내가 까먹을까봐 기록하는 거야. 나는 그림과 글을 쓰니까."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사진과 글을 하는 사람이에요. 인스타 팔로우를 해서 보는데, 저는 꽂히면 다 살펴 보거든요. 저는 글을 보는 게 너무 좋아요."

"오, 신기하다. 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생각을 정확하게 알 수 있어서 좋아해요."



지선 2.jpg
 


좋아하는 부위는 이마, 귀, 발이라고 했다. 그래서 다 그렸다. 사실 발만 그리고 싶었는데, 얘기한 걸 다 넣고 싶어서 추가했다. 구성적으로는 단조로울지 몰라도 나는 너무나 즐겁게 그렸다.

"요즘은 어때?"

"최대한 지루하게 보내려고 해요. 너무 재미있으면 가기 싫어질까봐. 근데 7월은 바빴어요. 원래 이런 사람 아닌데."

8월에 미국으로 유학간다. 미술 대학에. 그래서 떠나기 전에 보았다. 아마 지금은 미국에 있겠지. 왠지 가기 전/후도 궁금해졌다. 외모는 귀여운데 키는 생각보다 크고, 그림은 어마무시한데, 겉보기에 성격은 조용조용하다. 자기 색깔이 강한데, 대화할 때는 상대에게 너무나 잘 맞춰준다. 대화 내용은 완전히 어른이나 가끔은 21살 또래로 딱 보이기도 한다. 여러모로 반전매력이 가득한 친구이다. 친구가 초반에 꺼낸 얘기부터 감탄을 했다.

"사람은 30대 이후부터 봐야한다고 생각해요. 20대 초반에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요. 저 21살인데 학교가거나 알바하거나 말고는 다른 생활이 없을 거잖아요? 벌써부터 재력을 쌓고 그러기도 어렵고. 20대는 준비 기간이죠. 이렇게 생각하니 위안이 돼요. 그러다보면 경험도 쌓이고."

카페 조명이 노래서, 잘 안보이지만. 이런 게 또 매력이겠거니 그렸다. 정확한 색깔도 모르고 노란 조명 아래에서 보이는 색들로만 그림을 그렸다. 다 그리고 나서 조명을 켜니까 내가 그린 색감이 아닌데..?생각보다 쨍하고 색깔이 밝았다. 당혹스러웠다. 이 그림 색은 이 친구의 취향이였다. 화려한 색깔들.


[최지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