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영화 보러 갈래?] #6. 우리집은 내가 지킬 거야

<우리집>, The House of Us
글 입력 2019.08.31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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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영화 보러 갈래?

내일 당신의 영화 선택지가 더 다양해지길 바랍니다.




#6. 우리집은 내가 지킬 거야

영화 <우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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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일어났다. <우리집>을 보러가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출근길이라 길이 막힐까봐 영화 시간보다 무려 1시간이나 일찍 나왔다. 걱정대로 차는 자주 제자리에 멈춰 있었고, 버스에 타있는 나는 좌불안석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광고하는 시간에 맞춰 들어갔다. 아침 8시대 영화답게 관객이 매우 적었다.


더없이 몰입하기 좋은 환경이네, 생각한 것도 잠시.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며 “이 영화를 이 정도 사람밖에 안 본단 말이야?” “더 좋은 시간대로 옮겨야해!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코를 훌쩍이며 친구들에게 열변을 토했다. 영화가 기대만큼이나 좋았다.


기대에는 이유가 있었다. 윤가은 감독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첫 장편영화 <우리들>이 그가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이미 입증했다. 윤가은 감독의 작품 속 아이들은 말 그대로 살아있다. 그 나이가 가질 수 있는 순수함과 성숙함, 활기와 불안감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겨 놨다.


봉준호 감독은 그에 대한 설명으로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더불어, 아역배우를 스크린에 살아 숨 쉬게 하는 ‘3대 마스터’”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영화들을 찍어나가는 감독” 이쯤 되면 기대가 없는 것도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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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상처의 근원지를 교우 관계로 두었다면, <우리집>은 그 출처를 가족에게서 찾고 있다. 다정한 대화 대신 부모님의 말싸움을 목도해야 하는 초등학교 5학년 하나, 어린 나이에 벌써 이사만 6-7번을 한 유미와 유진. 우연한 만남을 반복하며 세 사람은 친구가 된다.


그들은 부모의 화해를 돕기 위해, 혹은 집의 이사를 막기 위해 크고도 사소한 고군분투를 시작한다. “우리집은 진짜 왜 이럴까?” ‘우리집’에 대한 불만과 불안으로 똘똘 뭉친 세 사람의 모습은 애처롭고 안쓰럽다. 하지만 서로 맞잡은 손들이 꽤 든든해 보인다. <우리집>은 이러한 상처-연대-성장의 순간을 눈부시게 담아냈다.


가족이라는 공동체, 그 어떤 공동체보다 견고해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끔찍하다. 미성숙한 태도가 부딪히고 깨지고 결국엔 서로 상처 입히고 상처 입는다. 그 과정 속에서 아이는 저마다의 대처를 해낸다. 모른 척 하기도 하고, 말려보기도 하고, 소리쳐보기도 하고, 와해하려 노력해보기도 한다.


<우리집> 속 하나네는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심리적 압박감을 그대로 드러낸다. 분위기를 바꿔보려 어색한 말을 건네는 것, 밥을 먹자 여행을 가자 이상적인 모습을 제안하는 것까지. 눈치 보는 표정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는 결국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을 회상시켜 준다. 어른들 사이에서 눈치를 보던 어린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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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집>이 마음에 닿은 것은, 아이들에 대한 안쓰러움 때문이 아니었다. “우리집은 내가 지킬 거야. 물론 너희 집도!”라고 말하는 그들의 대담함과 씩씩함 때문이었다. 서로에게 물러서지 않고, 양보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 어른들에 반해 아이들은 계속해서 개선을 시도한다.


결코 큰 행동들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는 그 모습이 너무나 강해 보인다. 차곡차곡 쌓은 것들이 발길질 한 번에 무너진대도, 그 노력을 어떻게 본받지 않을 수 있을까. 날 울린 건 그들의 의지와 연대,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의 성장이었다. 뒤섞이고 풀어헤쳐진 계란이 결국 독립된 계란후라이로 거듭나는 훌륭하고도 서글픈 성장.


<우리집>은 무심하고 미숙한 어른으로 자라버린 사람들에게, 새로운 감각을 일깨워주는 영화다. 영화로 만들어진 새로운 고발이자 조언이다. 그런 의미에서 놓치지 말고 꼭 <우리집>을 보길 바란다. 그 눈부신 5학년 여름방학을 극장에서 목격하기를 바란다.


따뜻하고 진득한 여름 햇볕이 잘 담겨 들어간 영화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색감이, 하나, 유미, 유진의 이야기에 섞여 들어가 무감각한 늦여름을 뒤흔들어 준다. 앞으로도 계속 윤가은 감독에 대한 기대를 낮출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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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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