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알고 있다 여겼지만 미처 몰랐던 이야기 - 김복동 [영화]

글 입력 2019.08.3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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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마지막 일요일, 점심시간이 지난 후에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일요일은 누군가에게는 한 주의 시작 또 누군가에게는 한 주의 끝이지만 휴일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효율적이고 즐겁게 보내고 싶은 건 모두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집을 정리하고 청소를 하고 나니 정말 몇 시간 남지 않은 이 휴일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문득 영화관에서 봐야지 했던 영화가 떠올랐다. 그래, 영화관에 가자! 집 근처 영화관에 가서 상영시간표를 살폈다. 그런데 보기로 생각한 영화는 따로 있는데 자꾸 다른 영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김복동"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고백하자면, 휴일의 마지막을 무거운 영화로 마무리하는 것에 잠시 망설임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흥미보다는 내 마음속 의무감으로 원래 보고 싶었던 영화는 몇 일 미루기로 했다. 그날 갔던 영화관에서 "김복동"은 단 한 번 상영했고 84석의 상영관에서 관객은 나까지 총 5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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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김복동의 육성 인터뷰로 시작한다. 인터뷰에서 그는 몇 살에 일본군 위안부로 피해를 입게 됐는지,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계속되었던 고통과 결국 자신의 피해 사실을 증언한 후의 일들을 관객에게 들려준다. 그리고 영화는 처음 증언한 이후로 살아생전 마지막 날까지 피해 사실을 알리기 위한 활동가로서의 삶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그를 아는 이들은 말과 행동이 똑 부러지는 성품을 가졌다고 회상한다. 김복동은 비 내리는 날에도, 굵은 눈송이가 흩날리는 날에도, 다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함께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일마다 집회를 참석하며 일본 정부의 비판하고 과거의 잘못에 대해 사과를 하라고 외친다. 이러한 일본 정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꾸준히 내는 활동은 국내에서만 이어간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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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아베정권 출범 이후, 일본은 일본군 위안부는 강제로 행해진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쳤고 이에 맞서 김복동은 노령의 나이에도 일본 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까지 해외 여러 나라를 방문하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리기 위한 활동을 지속한다. 자신이 어떻게 피해를 입었는지, 그리고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일본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가를 계속 말해야 했던 김복동.


과거의 트라우마를 불특정 다수에게 반복해서 말하는 것은 그 때의 힘들었던 순간을 끊임없이 마주해야 하는 것과 같다. 여러 나라에서 같은 내용의 말을 계속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 단단한 모습에 존경의 마음이 드는 동시에 저런 상황을 겪게 만든 가해자에 대한 분노에 마음이 복잡했다. 그렇게 국내외 활동을 이어가는 김복동과 다른 피해자들, 그리고 그들과 한마음인 시민들에게 새로운 동지가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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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소녀상" 작가는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시민들이 함께하는 시위를 우연히 보고 피해자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동상을 작업하게 되었다고 언급했다. 짧은 단발머리에 치마저고리를 입은 어린 소녀, 위안부 피해자들 그들의 어렸을 때 모습에 대한 상징이 담긴, 무표정으로 앞을 응시하는 조용하지만 강한 인상을 가진 "평화의 소녀상".


소녀상이 공개되었을 때, 옆에 앉아 환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쓰다듬고 손을 꼭 잡았던 김복동. 그의 옆에 있던 것은 또 다른 자신이며 함께 투쟁할 수 있는 상징을 담은 동지였을 것이다. 해외에 소녀상을 세울 때, 자신도 하얀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고 소녀상의 옆에 앉으며 세계 각국의 언론과 인터뷰를 이어갔던 그는 몸은 고단해도 친구와 함께 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활동을 이어가던 도중, 2015년 정부는 피해자들과 아무런 논의 없이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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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잃었을 때 겪었던 아픔을 말하며 바란 것은 그저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였다. 일본 정부가 잘못한 과거의 행적에 대해 진심으로 용서를 비는 것. 그 외에 다른 것은 바란 것도 없는데 내 나라의 정부는 피해 당사자들과 아무 의논도 없이 일본에 돈을 받고 문제를 종식시킨다고 해버렸다.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전에 했던 것처럼 맞서는 것일뿐, 이미 이전부터 외쳤던 말들을 조금 더 크게 외쳐보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당신들의 사과다."


화해치유재단이 들어서고, 일본영사관 앞의 소녀상은 철거된다. 누가 누구와 화해를 하며 누가 치유된다는 것인지. 대학생들과 시민들의 반발이 이어진다. 김복동은 어린 친구들이, 젊은이들이 시위를 하다 경찰서에 드나드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 건강이 많이 나빠졌지만, 할 수 있는 내에서 목소리를 내려는 마음으로 그는 화해치유재단 해산 1인 시위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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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의 활동에 함께 하며 도왔던 관계자들은 그가 일본 정부에게 사과를 촉구하는 활동을 하며 여러 나라의 대학생들, 젊은이들과의 만남을 많이 즐거워했다고 회고한다.


전쟁으로 인해 여성들이 입은 피해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 특히 의의를 두었을 것이다. 일본의 잘못을 비판하며 미래세대를 위하고 세계의 다른 여성 전시피해자들과 연대했던 김복동은 그렇게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일본과 싸우다 올해 1월, 세상을 떠났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몰랐던 것이 많았다."


한국인으로서 일제강점기로 인한 피해와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아픔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영화를 보면서 점점 흐려져갔다. 최대한 많은 나라를 가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던 김복동의 모습, 주한일본대사관에서 시위할 때 피해자들과 시민들의 표정, 그리고 평화의 소녀상 철거와 화해재단을 반대하던 시민들과 학생들의 절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나는 모르는 것이 많았구나, 생각이 들었다.


시위에 계속 참여하고 해외로 다니며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하는 모습에서 나는 가해자의 사과로 정의 실천을 이끌어야 한다는 의지와 더불어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정부의 보호와 조치의 부재로 한 개인이 아니 피해자들이 떠안아야 하는 무게가 너무나도 큰 것이 안타까웠다.

  

그 간절히 원했던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나 역시 그 과정에 보탬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 사회가 피해자들이 존엄이 지킬 수 있는 곳으로 변화하기를,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세상으로 변할 수 있기를 바라며 영화가 마지막에 던진 질문에 답해본다.


나이는 아흔 네살, 이름은 김복동, 일본군위안부피해자, 그리고 여성인권운동가인 그를 나는 기억합니다.



[영화 "김복동" OST : 꽃 - 윤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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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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