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생긴 일] 빠른 환승과 통학에 관한 고찰

글 입력 2019.08.25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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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가는 길은 늘 힘들었다. 초등학교 때는 왕복 40분 거리를 걸어 다녔고(한 해 동안은 가까운 학교에 다니기는 했지만), 중학교 때도 30분 거리를 걸어 하교해야 했고, 고등학교는 30분가량 통학버스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다녔다. 이 모든 고생은 다 좋은 대학교에 가기 위함이라 믿으며, 7시에 일어나 밥을 씹지도 않고 삼키는 생활을 지속했다.


그렇게 가게 된 대학교는 그동안의 통학 거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멀었다. 자취하기에는 애매하게 먼, 편도로 한 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다. 집이 지하철역과 가깝기도 하고, 지하철역과 수업을 듣는 건물의 거리도 가까워 자취는 사치라는 계산이 나왔고, 그 이후로 더는 자취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운 좋게도 저렴한 비용으로 기숙사에서 일 년 하고 한 학기를 살았지만, 그마저도 매주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본가에 와야 하는, 반은 통학인 생활이었다. 분명 대학교 합격 통지를 읽었을 때는 백 팔 배를 하면서 다니겠다고 했는데, 입학 후 첫 한 학기를 1시간 동안 서서 통학을 하며 보내다 보니 그런 다짐은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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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찍은 사진


프롤로그에 쓴 것처럼, 성격 때문에 대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절대로 지각하면 안 된다는 강박을 가지고 살았다. 그래서인지 ‘빠른 환승’에 집착하는 습관을 지니게 되었다. ‘빠른 환승’은 가장 빠르게 갈아탈 호선으로 갈 수 있는, 계단이나 엘리베이터 앞의 지하철 칸을 말한다. 나의 경우 학교에 갈 때 4호선에서 6호선으로 지하철 환승을 한 번 해야 하는데, 이때 지하철의 가장 앞칸인 1-1칸에서 내리면 6호선으로 가장 빨리 갈 수 있다. 그야말로 빨리빨리의 민족인 한국인다운 문화라 할 수 있다.


등교할 때는 빠른 환승이 매우 중요하다. 배차 간격이 넓은 호선이면 간발의 차로 갈아탈 지하철을 놓치면 지각하기에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등교나 출근 시의 빠른 환승 통로는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안전문에 ‘혼잡 구간’ 안내가 있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출, 퇴근 시 붐비는 칸이니 다른 칸에 타는 것을 추천하는 문구는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정도를 외우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우선 학교에서 출발해 2호선을 이용해야 할 때가 많았기 때문에 6호선-2호선 빠른 환승 통로를 외웠고, 다시 2호선에서 본가로 가는 때가 많아서 2호선-4호선 빠른 환승 통로도 외웠다. 여기까지도 평범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계단과 에스컬레이터가 나타나는 칸까지 외웠다. 또 환승역이 없어 사람들이 잘 내리지 않는 구간을 이용하다 보니 자리에 앉기가 힘들어 늘 출입문에 기대어 가는데, 그래서 출입문이 열리는 방향도 거의 외우고 있다(사실 4호선은 외우기 쉬운 편이다). 잘 모르는 구간의 경우 늘 빠른 환승 통로를 검색한다.


내가 남들과 좀 다르다는 걸 깨달은 때는 본가 근처에 사는 친구들과 함께 서울에서 본가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었다. 늘 그랬듯이 빠른 환승 통로를 검색하고 어느 칸으로 이동하자고 했을 때, 친구들이 나처럼 빠른 환승에 집착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는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는 환승역을 다 외워서 코레일에 취직해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나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행동이었지만, 남들과 다르다는 걸 깨달은 순간 꽤 큰 충격을 받았고,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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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언덕을 올라오면 반겨주는 고양이


아침에 ‘지옥철’을 타고 무사히 학교에 도착했을 때, 오늘도 살아남았다는 생각을 하며 퉁퉁 부은 다리로 언덕을 오른다. 12시에 점심을 먹고, 6시까지 수업을 들은 후, 한 시간을 서서 지하철을 타고 오다 보면 자연히 배가 고파진다. 누군가는 통학하며 살이 빠졌다고 했는데, 나는 시간표가 시간표인지라 집에 도착하자마자 늘 라면으로 허겁지겁 끼니를 해결하며 살이 쪘다. 무거운 노트북과 충전기를 들고 다니느라 한 번에 제대로 누울 수 없을 정도로 허리 통증이 심해졌다. 게다가 안 그래도 사람 많은 곳을 피하는 내향형인데, 수많은 사람에 치이면서 더욱 예민해지고 짜증도 늘어갔다.


막차 시간 때문에 각종 행사에서 빨리 나와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기숙사에 살거나 자취를 하는 사람들끼리 번개 모임을 하는 것도 너무 부러웠다. 대학교에서 만족스러운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것도 처음에는 다 통학을 탓했다. 술도 거의 마시지 못하고, 10시 반이면 자리에서 빠져나오다 보니, 지난 모임에서 누가 누굴 ‘죽였네’, 누가 술을 마시고 뛰어다녔네 하는 이야기들에 공감하지 못하고 또 빠져나와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물론 이제는 사회가 대학생의 원형으로 여기는 ‘인싸’의 삶이 내 성격과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임을 잘 안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기숙사에 살았다면, 자취했다면, 모범생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과감하게 첫차를 타는 것을 선택했다면 그래도 조금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통학 시간을 공부하거나 과제를 하는 데 쓰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이지 존경스럽다. 일단 지하철은 흔들리기도 하고, 자꾸만 문이 열렸다 닫히며 사람들이 치고 지나가기 일쑤이기 때문에 스마트폰보다 큰 무언가를 잡고 있기가 어렵다. 스마트폰으로 공부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떠한 자극도 없는 집이나 학교에서도 공부하기가 힘든데, 끊임없이 신경에 거슬리는, 예상치 못한 자극들이 들이치는 지하철에서 공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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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학에 관한 대학생들의 생각


위에 나열한 통학의 단점을 보면 학교에 멀쩡히 다닌 것이 나 자신도 신기할 정도다. 그렇다고 그 시간이 마냥 고통스럽고 피하고 싶었던 것만은 아니다.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서로에게 관심이 없는 그 상태가 좋은 날도 있다. 그나마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쉴 수 있는 시간이라 마음껏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동영상을 보면서 정신적인 피로함을 덜어내려 한다. 다행히 4호선과 6호선은 무선 인터넷망이 아주 안정적이다. 아주 가끔은 통학이든 통근이든 비슷한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전우애 비슷한 것도 느낀다(물론 이것도 여유가 좀 있을 때의 이야기고, 지옥철에서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분명 통학에 관해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는 울분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쓰면 쓸수록 자꾸만 마음이 약해진다. 어쩌면 지금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다 통학 덕분인지도 모른다. 혼자서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이 글의 끝을 어떻게 맺어야 할까를 고민하며 보냈지만, 아직 통학에 대한 불평과 수용 중 어느 한쪽도 택하지 못했다. 이틀 후 떠나는 미국에서 10분 거리의 학교에 다니며 유의미하게 건강이 좋아진다면, 그때 강력하게 자취 옹호론을 펼쳐보려 한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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