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 한 걸음 더 가까이에서 - 2019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글 입력 2019.08.2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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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 문화비축기지


더운 여름 문화비축기지를 향하는 발걸음에는 확신이 부족했었다. 근처에 배너나 포스터가 있을 법도 한데 주위를 둘러보아도 없어 이 더운 날에 혹 길을 헤매게 되는 것은 아닌지 그 짧은 몇 분간 순간의 고민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걱정도 잠시, 금세 문화비축기지를 찾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오후 시간이 되어서는 입구 쪽에서 쉼없이 울려퍼지는 밴드음악 소리가 이곳에 일상으로부터 한발자국 떨어진 채 우리가 봐야 했으나 보지 못한 것들, 느껴야 했으나 느끼지 못한 것들이 있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페스티벌을 향하기 전에 짧게나마 홈페이지에 들려 보고 싶은 참여작들의 시간과 장소를 짧게 메모해 두었었다. 혹여나 당장에 다음에 볼 것을 찾고 헤매느라 시간을 낭비하게 될까 봐 염려되어서였다. 가장 이른 시간에 메모되어 있던 것은 3시, 나무데크에서 한다는 춘향전이었다. 그리고 매표소를 지나 언덕을 오르며 가장 먼저 마주한 것도 신나는 우리 소리, 그리고 춘향전을 시작한다는 흥겨운 목소리였다. 관객들과 현장에서 호흡하기 위해 공연을 제작한다는 ‘지구 옆 동네’의 춘향뎐 ver.마포는 그 단체 소개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함께 즐길 수 있는 극이었다.



춘향뎐 ver.마포 _ 지구 옆 동네


길의 한복판에서 시작한 극은 우리가 알고 있는 춘향전의 내용에 힙합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퍼포먼스를 가미하여 진행되었다.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며 흥을 돋군뒤 다 함께 음악에 맞춰 공연 장소인 나무데크로 이동하여 이후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태로 진행되었는데, 극의 진행을 따라가기 위해 배우들뿐 아니라 관객들 역시 몸을 움직여 이동해야 하는 경험은 조금은 낯설지만 신선한 경험이었다.

단순히 다양한 장르의 혼합과 관객 참여의 형식에서만 흥미를 느꼈던 것은 아니었다. 춘향전이라 함은 우리나라의 고전으로 어찌 생각한다면 요즘 세상에는 참 어울리지 않는 내용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춘향뎐 ver.마포의 공연을 보며 가장 귀에 박혔던 대사는 몽룡이 말하는 ‘요즘 세상에’였다.

요즘 세상에 남들의 시선이 무엇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몽룡과, 철없고 가벼워만 보이는 몽룡의 모습을, 그리고 댓가 없이 얻은 그의 계급을 적나라하게 지탄하는 방자와 춘향의 모습은 어쩌면 정말 요즘 세상에 맞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종종 지고지순, 정절의 대명사처럼 그려지고는 하는 춘향이 시원하게 거친 말을 내뱉고, 마음에 있는 말은 있는 그대로 털어내는 당찬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도 어쩌면 정말 요즘 세상에 어울리는 모습이 아니었을까.



가야금, 가까이에서 _ 유어예 가야금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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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가까이에서가 진행된 T6


당찬 춘향이의 모습을 뒤로하고 향한 것은 유어예 가야금 프로젝트의 ‘가야금, 가까이에서’였다. 개인적으로는 처음으로 듣는 가야금 독주였는데, 가야금이라는 악기가 그 하나만으로도 풍부하고 다채로운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곡을 시작하기 전에 어떤 곡인지, 어떤 가야금으로 연주를 하는지, 또 어느 부분을 유의해서 들어야 할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것도 좋았다.

‘가야금, 가까이에서’를 감상하며 단지 청각적인 매력에만 빠진 것은 아니었다. 이 공연에서 (이후로도 참여극을 감상 할 때마다 느끼게 되는) 예술과 그 예술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하나로 합쳐지는 듯한 감상을 받았다.

가야금, 가까이에서가 진행되는 공간은 공연자의 등 쪽과 옆의 한 면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었는데, 뒤의 전면 유리 너머로 보이는 초목들과 창을 통해 들어와 가야금을 타고 지나는 햇살들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모든 것들이 공연의 한 부분인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의 기타 이야기 바이 햄릿 _ 박 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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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웅의 ‘나의 기타 이야기 바이 햄릿’은 끊임없이 선택에 대해 이야기 하는 극이다. 극 중의 그는 레퀴엠에 쓰일 곡을 선곡을 하며,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사람들. 선택지가 없는 것이 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늘 해 오던 생각이었다. 그러나 햄릿(혹은 햄릿이 아닐지라도)의 말대로, 우리는 우리가 선택을 하기에 인간이다.

우리가 여전히 햄릿을 찾는 이유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햄릿이 더 나은 선택의 기로에서 결국은 우유부단, '고구마 백개 먹은 듯 답답한‘ 인간이 되어 버렸듯 우리는 여전히 더 나은 것을 지향하기 위해 선택을 하고자 하고, 선택하지 못하여 고통받고, 선택을 후회하고, 선택하지 않을 것은 선택하고…  내내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장실, 또는 거울방이 극이 진행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는 예상치 못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단순히 무대에 오르기 전, 햄릿이 준비를 하는 공간이기에 분장실인 것이라고 생각했건만, 전면이 거울인 공간에서 눈앞에 햄릿이 없지만, 동시에 햄릿을 보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진리가 눈앞에 없을 지라도 저 너머에 있을 거라 확신하고, 선택을 하는 사람이 어떤 허상을 본 것처럼, 분명 소리만 들릴 뿐 보이지 않는 위치에 있는 햄릿을 전면에 있는 거울을 통해 바라볼 수가 있었다.

우리가 선택할 길도 그 앞에 거울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다면 적어도 거울의 허상만이라도 좇을 수 있을게 아닌가. 결국 극중의 햄릿은 처음부터 끝까지, 코드를 짚어가며 곡을 둘러보았으나 선곡하지 못한다. 우리 모두처럼, 최선을 찾다가.



카더라 _ 디탄츠 / 신화, 여성 _ 샥티댄스무브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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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탄츠의 ‘카더라’에서도 역시 공간을 통해 강한 인상을 받았다. 길고 좁은 통로의 높고 굳건한 벽, 그리고 그 안에 고립된 듯한 강한 몸의 움직임의 감상이 이어졌다. 타인의 의도대로 문신처럼 새겨지는 나에 대한 ‘카더라’, 소문들. 두 명의 인물이 이야기하는 일상적 대화와 그와 대비되는 강한 고통의 움직임이 극적이었다.

개인적으로 고통의 정서를 사람이 눈앞에서 직접 연기하는 걸 잘 보지 못하는데(연극이나 뮤지컬을 보며, 캐릭터가 고통스러워 하는 장면에서는 차마 캐릭터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때문인지 몇 번이고 시선을 돌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렇게 강한 방식으로 표현을 할 수밖에 없는, 혹은 그래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지도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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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여성이 진행된 T4
 

샥티댄스무브먼트의 ‘신화, 여성’은 입장을 위해 통과하는 복도에서부터 특별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낡고 투박한, 그리고 좁은 통로와 그 끝에 위치한 노란 빛의 강렬한 조명이 마치 유적지나 신성한 공간으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주었던 탓이다. 그리고 통로를 빠져나와 너른 공간으로 들어서고 나면 높은 둥글고 높은 천장과 수직으로 뻗은 견고하고 얇은 기둥들이 어떤 고양감을 불러일으켰다. 세 명이 여성 무용수들이 춤을 추다 바닥에 발을 구르기라도 할 때면 공간 전체에 메아리처럼 발소리가 울리고, 그 공기의 떨림이 느껴지기도 했다.
 
다른 모든 예술들이 그렇겠지만 특히 무용 공연을 볼 때면 배우, 그 자체가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오로지 저 한 사람만이 이런 것을 할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이 ‘신화, 여성’을 보면서도 계속해서 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게끔 하는 사람을 눈앞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경험은 언제나 숨 막히도록 잊지 못할 순간이 되는 것 같다.



이 (있 다 가 없 다) 다 _ 박정은


박정은의 ‘이 (있 다 가 없 다 ) 다’는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순간에 집중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공연을 보며 느낀 공간과 예술의 합일 (어쩌면 포함하여 예술)이라기 보다는 공간 자체에 집중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마치 천천히 흐르는 듯한 시간에 주위의 모든 것들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는 일. 바람, 풀벌레 소리, 시선이 가 닿는 모든 사물들과 그 밖에 일어나는 작은 현상들이 거대한 마법처럼 보이는 순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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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경험이 끝난 뒤에는 제법 늦은 시간이 되어 있었다. 선선한 바람과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 그리고 그 사이에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은 피곤하고, 조금은 상기된 상태로 길을 걸으며 예술을 쉼표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무언가 바라보아야 한다면, 어떤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면 하던 일을 멈추어야 하니, 그런 의미에서의 쉼표 말이다. 일전에 관성으로 살지 말아야지 하고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 역시도 쉼표가 필요한 일이다.

일전 프리뷰를 기고하며 독립예술이 대체 무엇일까,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걸까 궁금하다고 적었다. 프린지 페스티벌을 다녀온 지금은 글세, 독립예술은 무엇이다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어느 방향으로든 가치 있는 것을 향하기 위해 사람들의 잠시 멈춰서게 하는, 그렇게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비슷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김민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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