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공연을 찾아 떠나는 모험,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19

다양성을 찾아 떠나보자!
글 입력 2019.08.2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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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오전부터 날이 흐렸고, 몇 차례나 소나기가 쏟아졌다. 날씨라는 변수를 생각하지 못했던 터라 우천 시 공연 진행 여부를 가는 내내 급하게 찾아보았다. 하지만 역에 도착할 즈음에는 우려와 다르게 맑게 갠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역을 나섰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 열리는 문화비축기지는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 2번 출구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었다. 문화비축기지 입구에서부터 티켓부스까지 가는 길도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사실 녹슨 탱크와 석유비축기지가 주는 이미지는 다소 을씨년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기대 반 걱정 반이었지만, 생태문화공원으로 탈바꿈한 이곳의 한적하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선입견을 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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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축기지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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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프린지페스티벌2019 티켓부스


오후 4시 30분쯤 티켓부스에 도착했다. 줄이 길지 않아서 곧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지도를 펼쳐보니 T1부터 T6까지의 공간과 설비동, 나무데크, 광장데크, 잔디무대, 종합안내소/프린지살롱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발길이 닫는 대로 공연을 관람할 생각이었지만, 30분 간격으로 진행되는 수많은 공연 중에 무엇을 봐야 할지 고민되었다. 따라서 행사 일정과 동선을 고려해서 우리만의 '프린지 시간표'를 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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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켓부스에서 바라 본 문화비축기지의 전경


먼저 관람한 공연은 박정은 무용수의 ‘이 (있 다 가 없 다) 다’였다. 장르는 무용, 다원으로 분류되며 러닝타임은 약 20분이었다. 프로그램 북에 적힌 정보만으로는 어떤 공연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단지 ‘T2’라는 반원형의 야외 공간에 대한 호기심으로 관람하게 되었다. 나무에 둘러싸인 공간은 탁 트인 경치를 자랑했다. 눈을 감고 있으면 시원한 산바람이 불어왔다. 관객들은 고요한 공간의 분위기를 느끼며 공연이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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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 <이 (있 다 가 없 다) 다>


아무 소리도 없이 시작한 공연은 아무 소리도 없이 끝났다. 세 개의 다른 성질의 공간을 선정하여 무대에서 할 수 있는 것, 하게 되는 것, 하지 않는 것, 일어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실험한다는 취지였다.

무대라는 공간을 탐험하면서 움직임 자체를 실험하는 건 좋았다. 그리고 아무 음악도, 음성도 없이 동작만으로 시공간을 채우며,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이 관객에게는 어떠한 에너지도 던져주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관객에게 전달하고, 에너지를 받는다는 무용수의 의도와 달리 ‘홀로’ 움직임을 실험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그런 무용수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난감했다. 비슷한 감상을 느낀 관객들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상징의 단서를 찾기 위해 프로그램 북을 뒤적였다. 20분이라는 시간이 더디게 흘렀고, 첫 공연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공연장을 나섰다.

한편, 프린지의 특징적인 운영원리 중 하나는 참여 작품에 대해 예술적 기준에 의한 심사나 선정과정 없이 자유참가의 방식이라는 점이다.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열려있는 동시에 예술가의 실험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작품의 가치 판단은 오롯이 관객들의 몫이라는 점,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은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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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3 맞은편에 위치한 프린지 살롱


다음 공연을 보기 위해 이동하던 중 프린지살롱에 들렸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19에 후원한 뒤 후원권을 통해, 프린지살롱의 식음료와 MD 상품으로 교환 가능하다. 또는 현금이나 카드 결제도 가능했다. 간단한 요깃거리가 준비되어 있으니 이곳에서 공연을 보느라 허기진 배를 달래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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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그룹 원다원, <남의 연애>


다음으로는 프로젝트그룹 원다원의 ‘남의 연애’를 관람하기 위해 T6 2층 에코라운지로 향했다. 장르는 연극(다큐멘터리극)으로 러닝타임은 약 40분이었다. 이 작품은 공연 시작 1시간 30분 전부터 진행되는 사전 예약을 통해서만 관람할 수 있었다. 사전 정보 없이 프로그램 북에 기재된 설명과 제목만 보고 '끌려서' 관람하게 되었다.

<남의 연애>는 10~60대 여성 45인의 인터뷰를 토대로 제작된 버베이텀 1인극으로, 대사의 90퍼센트 이상이 인터뷰를 그대로 옮겨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여기에서 '버베이텀(verbatim)'이란 용어는 라틴어로 말/글자 그대로(literally, word for word)라는 의미를 지닌다.

기록되거나 발화된 '말'의 다큐멘트를 직접 인용하는 기법으로 다큐멘터리 연극의 한 가지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버베이텀 연극에서 배우들은 실제 인물이 사용하는 말로 캐릭터를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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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이동형 공연이었던 점은 인상적이었다. 이야기를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각 장면이 끝날 때쯤 스태프가 손전등을 깜빡이며 관객들을 다음 장소로 안내했다.

일부 부분에서는 관객 참여형 공연이기도 했다. 녹음기 소리("삐-")가 들릴 때, 관객들은 돌아가면서 '인터뷰 질문을 소리 내어 읽어달라'라는 문구가 적힌 테이프를 뒤집었다. 관객이 질문을 읽자 마치 주인공과의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듯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렇게 무대와 객석, 배우와 관객의 경계 없이 바로 옆에서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현장감과 생생함이 이 공연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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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그룹 원다원, <남의 연애>


주인공은 공연 내내 '남'의 연애와 '가스라이팅'에 대해 이야기했다. 안경과 옷을 쓰거나 입고, 벗을 때면 다른 사람이 되어 이야기를 전했다. 어디선가 실제로 녹음한 인터뷰들이 들리기도 했다.

한편, 우리가 '남'의 연애에 얼마큼의 지분을 갖는지, 제3자의 입장에서 어디까지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등을 말한다. 거기에 '느슨한 연대'로 함께 고민하고 지지할 수 있다고 전하는 공연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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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축기지 입구


프로시니엄 무대에 연극 장치를 설치하는 일반적인 방법에서 벗어나, 장소 특정적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은 축제의 큰 장점이다. 또한,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연극, 무용, 다원, 시각 등의 장르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다양성의 축제라고 생각한다.

마치 문화비축기지 곳곳으로 공연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어린아이처럼 들뜬 마음으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일상이 따분하고 지루하다면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19'로 다양성을 찾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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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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