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ROTEA] 시즌3 PROLOGUE: 무대의 장막을 열다, 초의식

글 입력 2019.08.19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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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호 작가 자작나무 사진



최근 우연한 기회로 횡성에 위치한 자작나무 갤러리에 들렸다. 문화예술 웹진에 글을 쓰는 입장에서 민망하게도 별달리 기대는 하지 않았다. 변명하자면, 밖에서 뭔가에 몰두하기에는 너무 더웠다. 앞선 문장을 8월 초를 지옥불반도에서 보낸 사람들이라면 마땅히 이해하리라. 끔찍한 더위는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인 흡혈귀 조상 가설을 진지하게 검토하게 하고, 에어프라이기에서 튀겨지는 돼지껍데기에 대한 정서적 연대를 제공했다.

교훈도 재미도 없는 여름 농담을 접어두고, 원종호 사진 작가의 작품은 꽤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필자가 오랜 시간을 들였던 것은 하얀 자작나무들과 어두운 숲을 흑백사진처럼 촬영한 것이었다. 빼빼 마른 팔 뼈처럼 솟아오른 자작나무의 곧고 창백한 몸체와 신경처럼 뻗어나온 가지는 물체 이상을 담고 있었다.


사진은 현실의 대상을 작가의 역량과 의도에 따라 재조립 시킬지언정 회화와 같이 완전히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을텐데, 사진 매체의 특성상 그 순간만을 담고 있을 뿐일텐데, 필자는 사진에서 유구한 역사와 감동을 느꼈다.

갤러리를 나와 천천히 생각해보니, 필자는 사진이 재현한 '현재'에서 느낄 수 있는 초월적 '시간'의 가능성에 전율했던 것 같다. 이렇게 어설픈 단어로 과정을 서술했지만 한 '작품'을 감상하는 모든 시간은 가변적이다. 당연하지만 예술은 현실을 겨냥하기 때문에, 현실에서도 이 법칙이 적용된다. 작품이 창작되어 갤러리에 전시되고, 시간을 넘나들며 개인에게 감성을 주는 과정은 한 개인에게 모든 사건이 표상되고 기억으로 저장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현실은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존재하고, 마침내 초월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또다른 세계를 맛본다. 이 시점에서 TAROTEA를 다시 재연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우리가 탐구하는 영역은 '초의식'이다. 사실 어떤 학문의 어떤 단어로도 이 영역을 표현하기가 어렵다.


대학원에 입학해 심리학 용어를 남발하는 것조차 부끄러워 죽고싶어지는 지금 이 시점, 보다 주관적인 어조로 글을 전개하려고 한다. 이번 챕터에서 필자는 종교와 신비학에 보다 더 관심을 기울일 예정이다. 오늘날 논쟁거리가 되는 종교의 정당성이나 믿음은 잠깐 접어두도록 하자. 필자가 관심이 있는 것은 현실이 아니라 상징세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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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와, 우리는 지금까지 표상과 관념으로 대표되는 의식의 세계, 과거의 경험과 내적 상징으로 대표되는 무의식 세계를 둘러보았다. 아이러니하지만 의식의 근원, 즉 초의식의 세계는 이 모든 세계를 관조해 지금 여기에 있음으로서 맞닿을 수 있다. 학부 시절 필자가 가장 흥미를 가지고 있었던 심리 이론 중 하나는 '자기자비'나 '마음챙김'이었는데, 여기서 말하는 '관조'가 초의식을 다루는데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이론들은 기본적으로 불교의 명상에 시작점을 두고 있다.

의식이나 무의식의 영향으로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그 자신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머리와 가슴, 그리고 사회로부터 느끼는 것들을 알아차려 그 자신으로 판단하는 것을 멈출 수만 있다면, 우리는 또 다른 세계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중이 제 머리를 깎을 수 없는 것처럼, 그 안에 갇혀서는 그 자신을 알 수 없다. 지구를 떠나기 전에에는 지구를 볼 수 없었다. 우주를 마주한 인간은 새로운 원리를 발견해냈다. 시간의 흐름, 거대한 은하계를 만난 인간은 더이상 옹졸한 한 세계를 주장하지 않게 되었다.

당신은 온전히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 육체는 현재에 있지만, 필자의 삶은 미래와 과거 사이에서 시계추처럼 흔들거렸다. 필자는 수많은 착각을 반복해왔다. 이를테면 소유했다는 착각, 이해했다는 착각같이 말이다. 필자가 착각한 것은 수많은 관념과 표상, 그리고 무의식에 근거한 생각과 판단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필자는 어떤 삶도 소유하지 않았고, 이해하지 못했다.

TAROTEA의 마지막 과정인 초의식 과정을 서술하는 것은 삶을 소유하기 위해 필자가 하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이 연재물을 읽는 독자는 필자와 함께 뛰는 마라토너다. 필자가 그래왔던 것처럼 독자도 삶을 소유하려고 노력해왔을 것이다.


어릴때부터 귀에 박히게 들어온 노래 구절이 있다. '우리 서로 모습은 달라도 산에서 들에서 때리고 뒹굴고 그래도 우리 모두 친구' 좋은 철학이다. 이 과정 속에서 끝없이 연쇄된 고통으로 존재했던 스스로를 초월할 수 있도록, 장막을 들춰보자.





[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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