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 연애가 모두 여름에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사람]

여름을 보내기 싫어 쓰는 글
글 입력 2019.08.17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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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연애가 모두 여름에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이건 연애 이야기가 아니다.



나에게 여름은 무언가를 시작하기 알맞은 계절이다. 이렇게 말하기 위해서는 다른 계절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나는 내 주위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추위를 많이 탄다. 나에게 봄은 없다. 덜 추운 겨울이다. 그리고 가을은 초겨울이다. 봄과 가을은 패션의 계절이기에 추운데 멋은 포기할 수 없어 한껏 껴입을 수 없어서 싫다. 맨발을 좋아하는데 샌들을 신을 수 없어서 싫다. 그리고 겨울은 가장 혹독하다. 롱패딩에 목도리, 귀마개, 장갑, 수면양말까지 온몸을 칭칭 감싸고 다녀도 춥다.


뉴스에서는 매년 신기록! 사상 최고로 추운 겨울!이라는 얄궂은 보도를 낸다. 얼굴이 시리고 코가 시리다. 추워서 어깨는 한껏 올라가 있고 온몸이 움츠려 든다. 마침내 따뜻한 실내로 들어왔을 때는 허벅지가 따갑다 못해 간지럽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아직 밤이 끝나지 않은 듯 어두운 분위기와 낮은 온도가 나를 괴롭히고, 오후 늦게 일어나면 밤에 더 추워질 거라는 생각에 무릎까지 오는 수면 잠옷 원피스와 극세사 이불과 한 몸이 되어 긴 겨울잠을 자고 싶다.


반면 여름은 언제 일어나도 춥지 않다. 아침 일찍 일어나면 새가 짹짹이는 소리와 함께 아직 해가 덜 들어 덥지도 춥지도 않은 거리를 걸을 수 있고, 느지막이 일어날 때는 약간은 덥고 나른한 상태에서 찬물 샤워를 하며 온몸을 깨우고 시원한 과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이불 밖으로 나가 자연스럽게 새로운 일을 시작할 마음이 생긴다. 가보지 않은 곳을 모험할 마음이 생긴다. 조금은 헤매도 좋다고 생각한다. 정한 길로 곧장 직진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길가에 핀 들꽃들에게 마음을 뺏기고 사진을 찍고, 산책하는 강아지에게 눈인사하고 길고양이에게 말을 건넨다. 나뭇잎이 얼마나 연두색으로 변했는지, 담벼락 옆을 지날 때 덩굴 속에 핀 능소화가 얼마나 예쁜지 관찰할 여유도 있다.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를 시작한 것도 여름이다. 초 여름에 시작한 게 벌써 여름의 끝을 향하고 있다. 매주 글 감을 정하는 것이 조금은 벅차다. 활동 전에는 내가 영화를 꽤 많이 보고 음악을 꽤 많이 듣는 편이니까 그거에 대해 글 쓰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지만 여러 사람들이 모여 최소 1년은 작업했을 작품들을 일주일 만에 쓰는 것이 쉬울 거란 생각을 했던 내가 참 바보 같다.


그동안 내 글쓰기 실력이 조금은 늘었던가? 13개의 글을 기고했지만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여름의 하늘이 시간이 지날수록 아주 천천히 하늘색, 조금 더 진한 하늘색, 더 더 진한 하늘색, 파란색, 더 파란색, 네이비색, 검은색에 가까워지는 것처럼 천천히 나의 글도 농도가 진해지진 않을까 또 아니라면 어떤가.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의지와 끈기 스탯을 올려주는 거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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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농도가 진해지는 여름 하늘


얼마 전의 학교 수강신청에서는 연기 전공의 1학년 수업을 신청했다. 정규 수강신청 기간이 아니라 듣고 싶은 과목을 미리 넣어 놓는 소망 가방 기간에 연기과 조교님께 전화가 왔다. 타 전공인 학생이 연기 전공의 수업을 소망한 배경이 무엇인지 듣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동안 전공과 복수 전공 점수를 채워오느라 뒤늦게 관심이 생긴 과목을 듣지 못했다고. 4학년 막 학기가 되서야 다 채워 이제서야 여유가 생겼다고.


그렇게 전화를 끊고 수강신청 기간에 수업을 신청하는 데에 성공했다. 교수님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연기가 전공인 학생들과 많이 비교되지 않을지, 그 학생들은 나를 또 어떻게 생각할지, 그 사이에서 내가 주눅들 진 않을지. 강의를 듣기 전까지 이런 고민들은 마음의 주머니에 고이고이 접어두기로 했다.


여름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일을 시작할 마음이 생긴다. 가보지 않은 곳을 모험할 마음이 생긴다. 조금은 헤매도 좋다고 생각한다. 실내에서 바깥으로 나갔을 때 춥지 않다는 것이 가장 사랑스러운 포인트다. 언제까지고 여름이고 싶다. 이건 계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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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저녁노을에 어울리는

<Cigarettes After Sex - Sunse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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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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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피니언 글들을 쭉 읽어봤는데 글이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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