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 친구는 결국 배우가 되었다. [공연예술]

문화예술 분야의 모든 이들을 응원하며.
글 입력 2019.08.16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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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성악을 전공하던 친구였다. 내가 예술 고등학교로 편입을 갔던 그 여름의 그날, 먼저 다가와 시원하게 말 걸어 주던 친구였다. 오랫동안 함께하지는 못했다. 그 친구는 성악이 아닌, 뮤지컬이라는 다른 길을 택하고 학교를 자퇴했다. 그 후로는 간간이 연락을 통해 인연을 이어왔다.


그렇게 8년이 지났다. 8년이라는 시간은 사람을 바꾸기에는 짧지만, 상황을 바꾸기엔 충분하다. 그렇게 내 친구는 결국 배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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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찬란히 내리쬐는 일요일이었다. 그 친구의 공연을 응원하러 대학로로 향했다. 대학로는 문화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있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공연에 오르는 사람들, 혹은 그 공연을 즐기러 온 사람들로 가득 차있는 거리는 언제나처럼 뜨거웠다. 그곳에서 내 친구는 한 공연의 배우로서 무대에 오른다.


유명한 동화 헨젤과 그레텔을 잔혹 동화로 각색한 ‘그레텔과 헨젤’이라는 창작공연이었다. 그들의 애정과 열정을 듬뿍 담아 제작한 포스터, 굿즈 등에는 성의가 가득했다. 그렇게 그들의 진심을 공연 전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본 글은 공연의 내용을 위함이 아니니, 그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겠다.


공연장은 정말 작았다. 올라가는 계단, 매표소, 로비, 그리고 객석과 무대까지 작지 않은 곳이 없었다. 특히나 객석은 너무 좁아서 다리를 움직이기에도 신경이 쓰이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은, 참 정겨웠다.


창작공연의 특성상, 객석은 배우들 혹은 관계자들의 지인들로 채워진다. 그 공연은 이 특성을 재미있게 활용했다. 그들은 방명록을 남길 수 있는 포스트잇과 펜들을 준비해두었다. 공연을 즐기러 온 대부분의 관객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그 배우를 위해 따듯한 마음이 가득 담긴 방명록을 남긴다. 많은 사람들은 그 작은 포스트잇들로 한 벽을 금방 채웠다. 좁은 로비에 응원이 가득 찼다. 이는 관객들이 공연을 기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와 함께 열렬히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직접 볼 수 있도록 하였으며, 동질감을 불러일으켰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공연 시작 직전의 설렘과 긴장이 섞인 그 오묘한 분위기는, 공연 애호가인 본인으로서는 굉장히 익숙했다. 공연이 시작되고, 배우가 등장했다. 그때부터였다. 기분이 이상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최선을 다해 무대를 채우는 그 배우를 보자니 자꾸만 마음이 아려왔다. 내 친구와 같은 마음으로 공연을 완성하고,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있는 그 배우를 보며, 극 속의 캐릭터가 아닌 그 사람에 이입해버렸다. 평소대로, 극 속의 캐릭터로 바라보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노력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던 중, 내 친구가 등장했다. 내가 아는 목소리가 작은 공연장을 쉽게 채웠다.


같은 분야는 아니지만, 오랜 시간 동안 무대에 서 온 본인에게 무대의 압박감과 부담감은 도저히 떨쳐내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무대에 서서 노래하고 있는 저 친구의 감정을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노래는 정말 아름다웠다. 그래도, 마음이 아렸다.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떨어지지 않고 누구보다 가깝게 지낸 사이는 아니었어도, 함께 음악을 공부하며 생겨나는 고충을 나눌 수 있는 친구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응원하는 것뿐이었다. 그곳에 함께 앉아있던 관객분들 또한 마찬가지였으리라. 배우들의 넘버가 끝날 때마다 우리의 뜨거운 응원을 담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 마음이 너무 따뜻하고 친절해서, 공연을 진행하는 한 부분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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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마무리되며 커튼콜이 진행되었다. 배우들이 한 명씩 다시 등장하며 모든 관객들에게 인사한다. 그들의 표정에는 열정과 진심이 담겨있었다. 그 인사를 받으며 열렬한 박수를 보내는 관객들의 표정 또한 응원과 진심이 가득 담겨있었다. 투명한 진심들이 모두 모여 시간과 공간을 채웠다. 문화예술의 강력한 장점 중 하나, 진심을 담고 싶은 만큼 가득 담아 표현할 수 있다는 것.


공연이 끝난 내 친구에게 다가가, 수고했다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친구를 보자마자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 친구가 울고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말보다 행동이 앞섰다. 너무 아름다웠고, 그동안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앞으로도 너의 공연을 오랫동안 보고 싶다고 응원하고 싶었다. 그렇게 안아주고 난 후에야, 작은 선물과 함께 정말 고생했다는 말만 수십 번 전할 수 있었다.


참 묘하다. 성악을 공부하다가 뮤지컬로 진로를 정하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던, 그 뚜렷했던 17살의 그 친구는 결국 뮤지컬 배우가 되었다.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더니, 결국은 되었다. 물론, 대학로에서 진행되는 작은 창작 뮤지컬이라 해도, 그 연기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긴 여운을 남겼으리라.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그 공연의, 그 공연에 출연했던 내 친구를 포함한 모든 배우들의 여운이 참 길게 남았다. 뮤지컬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그저 평범한 누군가인, 나에게 배우들이 남길 수 있는 여운을 충분히 남겼으니, 나에게 그들은 훌륭한 배우임이 틀림없다.


본인과 그 친구, 공연의 배우들, 그리고 문화예술 분야에서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제목의 ‘결국’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본인의 행복을 위한 그 무언가를 놓지 않길 응원한다.




임보미 Editor 명함.jpg
 

[임보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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