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019년 8월 15일, 나의 짧은 외출기 [문화 공간]

글 입력 2019.08.17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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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이었지만, 다른 날과는 다르게 9시에 눈이 떠졌다. 좀 더 자도 되는데, 왜 이렇게 일찍 깼을까. 오랜만에 아침을 여유롭게 먹고 찬찬히 방 정리를 하다가 9시 40분쯤, 광복절 경축식 방송이 10시에 한다는 게 떠올랐다.


행사를 어떻게 구성했을지도 궁금했지만 최근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인한 한일 갈등의 정세 속에서 오늘 대통령이 어떤 메세지를 경축사에 담았을까, 그 점이 가장 궁금했기에 결국 경축사의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실시간 중계방송을 시청했다.


방송이 끝나고 인터넷을 보던 중, 오늘 서대문형무소를 무료 개방한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서대문형무소는 3호선 독립문역에 있는데 3호선 수많은 역 중 한 곳의 근방에서 사는 나는 가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가 오전 11시 즈음, 밖에는 비가 막 쏟아지고 있었다. 잠시 고민했지만 다른 날 아닌 광복절에 방문함으로써 갖는 의미를 떠올리며 집을 나섰다.

 



독립문, 그리고 서울무궁화축제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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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문역에 도착하자 이미 역사 내에 많은 사람이 있었다. 날이 좋았으면 사람이 더 많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이렇게 비가 오는데도 많은 사람이 오늘 여기에 왔구나 하는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4번 출구로 나가 독립문 쪽으로 가는 길, 굵은 빗줄기 속에서 무궁화로 채워진 공원을 바라보다가 독립문 정면 쪽으로 가서야 나는 이곳에서 무궁화 축제가 열리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오늘이 그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알았다.


무궁화로 가득한 독립공원을 찬찬히 걸으며 맑은 날 오지 않은 것이 아쉬웠지만, 비 내리는 광복절에 이런 날씨에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이곳으로 온 사람들과 함께 거니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그렇게 수많은 무궁화를 지나며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향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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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개소, 해방의 순간까지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에 의해 이곳에서 수감되고 고통받으며 생명을 잃은 곳. 아픈 역사의 상징 중 하나였던 서대문형무소는 1998년 독립과 민주의 현장이라는 상징성을 가진다 하여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재탄생되었다.


비는 계속 쏟아지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전시관으로 향하는 줄을 서 있었다. 전시관 외에도 여러 다양한 체험 부스들이 설치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자유로이 역사관 내외를 다니고 있었다. 한 건물 외벽에는 커다란 태극기가 달렸고 사람들이 계속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다.


전시관 밖에 여러 장소 중,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격벽장"이다. 이곳은 수감자들이 운동을 하도록 구성한 장소인데 서로 교류하지 못하도록 칸막이를 두고 부채꼴 모양으로 설계했다고 한다. 그토록 작은 부분에서도 철저하게 독립운동가들을 억압했던 이 장소가 그 후손들의 자유로운 발걸음으로 채워지는 것을 일제는 상상이나 했을까.

 

최초의 외출 계획은 여기까지였지만, 이대로 돌아가는 것은 왠지 아쉬웠다. 또 가면 좋은 곳이 어디 있을까 생각하다가 올해 초, 배재어린이공원에 여성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동상을 새웠다는 보도가 생각나 즉흥적으로 배재어린이공원으로 향했다. 경복궁역에서 세종문화회관으로, 그리고 덕수궁 돌담길을 걷던 중, "고종의 길"을 발견했다.

 



고종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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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돌담길에서 정동공원과 러시아 공사관까지 이어지는 총 120m의 길. 고종황제가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면서 덕수궁과 러시아 공사관을 오간 길이며 1896년 도면 자료와 1900년대 초 촬영한 옛 사진들을 토대로 해당 길을 조성했다고 한다.


비도 그치고, 아무도 없는 짧은 이 길을 천천히 걸으며 당시 고종황제의 마음을 생각해보았다. 황제의 행차와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좁은 폭의 짧은 길, 외세의 위협에 또 다른 외세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무력한 황제의 발걸음이 담긴 길. 그 길을 걸어야 했던 황제의 마음 속 고뇌는 세상 어느 곳보다 깊었으리라.




거사 전야, 여성독립운동가들을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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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는 댕기머리에 한복을 입고 옆의 동무에게 등불을 비춰준다. 양장을 입은 단발머리 소녀는 독립선언서를 찍어내고 있다. "거사 전야"는 배재어린이공원에 세워진 항일독립운동여성상이며  2·8 독립선언과 3·1 혁명 100주년 기념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이 동상 뒤에는 항일여성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적혀져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들, 낯선 이름들,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모든 여성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이곳에도 많지는 않았지만 어린아이들부터 노년층까지 몇몇 시민들이 동상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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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사 전야"를 마지막으로 그리 거창하지 않은 나의 올해 광복절 외출을 마무리했다. 광복절에, 그와 맞는 역사적 장소를 찾았다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나만이 아닌, 이런 궂은 날씨에도 많은 이들이 비슷한 마음으로 광복절을 보내려고 하는 모습을 본 것이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일제는 다양한 방면에서 철저하게 우리 민족을 지배하려 했으며 그 잔인한 시도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짙은 흔적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은 아픔의 역사를 기억하려는 시민들의 마음과 행동은 잔인함과 무력함의 상징이던 장소를 후대를 위한 교육과 더 나은 내일을 기리기 위한 터전으로 다시 만들고 있다고, 아픔의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 그 자체가 성숙한 문화를 만들어내는 한 과정이 아닐까.

역사의 상처가 역사로만 남겨지는, 그날이 진정 오기를 바라본다.



[강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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