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PRAHA IS PRISM [여행]

F학점 그 후
글 입력 2019.08.13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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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UTION. little bit personal story


삶은 어찌 이리도 비통하던가!

철저한 계산 아래 F를 맞았을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익숙하지 못한 나의 셈법은 학사 경고를 불러왔다. 삶은 참 아이러니하게도 낭만을 꿈꾸기 위해선 현실적 기반이 필요하다. 사소한 현실적 문제로 낭만은 처참히 부서지기 마련이다. 감사하게도 F학점의 자유가 Art Insight 3위를 하는 영광을 얻었다. 하지만 매력적인 글 이후의 삶은 어떨까. 지금부터 공개한다.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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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한다는 것은 내게 순간을 한껏 향유하지 못함으로 느껴진다. 지나간 순간을 후에 그리워하게 될 것이 미리 슬퍼지기도 해서 나는 대체로 기록을 하지 않게 되었다. 사진, 동영상, 글 모든 매체들에 대한 느낌이다. 미래에 대해 꿈꿀 수 없기에 소망과 현재를 돌아보는 일들에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또 행복했던 시간의 완벽한 모습을 모두 담지 못한다는 사실도 나를 괴롭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글을 짧게 남기면 아쉽고 길게 남겨도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기록이 남으면 다시 그걸 들춰보며 회상의 즐거움을 얻지만, 기록을 하기까지는 수많은 장벽을 거쳐가야 한다. 한데 지금 이렇게 기록을 시작한다.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을 것들에 대한 불안이 먼저 피어오른다. 부디 내가 기록을 잘 마칠 수 있길.



과정,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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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이 아니었다면 어떤 것도 아마 끝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수많은 미련과 최선을 다하지 못함, 완벽주의가 결합하여 과거의 것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과정에 최선을 다하고 의미를 다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를 재고해보게 된다. 사회가 원하는 결과 혹은 완벽한 결과라는 강박에선 벗어났지만, 스스로 원하는 결과라는 관점에서 그것을 충분히 이뤄낼 수 있는가. 이젠 의미 있는 과정을 지나 스스로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을 하려 한다. 결과가 확실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결과는 끝이기도 하다. 어떤 일의 끝을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애매함이 아닌 명확함으로 내는 것이 자신감의 원천 아닐까.

과정은 경험이기도 하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자신의 다양한 가능성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몇 년의 과정을 지나온 내게 어떤 것도 지속적이지 않다. 다음의 성장을 위한 결과물들이 부재하다. 지표가 없으니 방향을 잡지 못하고 무엇에 투자해야 할지 방황한다. 따라서 이젠 어떤 식으로든 결과가 필요하다. 그 시작이 무엇이 되었든 최선을 다하고 후회가 남지 않을 끝을 위하여 용기를 낼 때이다.



뒤바뀐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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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진리의 탐구로 밤을 새워가는 이미지, 평생을 바쳐 난제를 풀어낸 학자. 평생 바라던 꿈이었다. 하지만 느꼈다. 세상엔 보고 경험하고 즐길 것이 너무도 많구나. 이 끓어오르는 젊음을 발산하기에 도서관은 너무 좁다. 감각으로도 느끼던 것들이지만 직접 해외를 나가봄으로써 실체가 되었고 확신을 얻었다.

나는 학자로 평생을 살 수 없다. 수학과 씨름하며 수많은 밤을 지새우는 대신 음악과 축제가 있는 곳에서 한껏 사랑을 하리라. 세계를 돌아다니며 일을 해야겠다.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니 삶을 설계하는 방식도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방황에서 또 다른 방황으로 옮겨온 것이지만 항상 갖고 있던 모종의 불안감과 답답함이 사라졌다는 것으로 감사한 일이다.



해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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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에는 계기가 존재한다. 한국장학재단에서 주최하는 파란사다리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한 달 체코에 다녀올 수 있었다. 현지 대학 수업에서 요구하는 마케팅 관련 팀 프로젝트와 한국장학재단에서 요구하는 자유주제 팀 프로젝트, 총 2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중 자유주제 프로젝트는 음악에 관련된 것이었다. 체코의 현지인과 함께 대화를 나눈 후 서로가 갖는 고민, 생각 등에 대하여 함께 가사를 쓰고 버스킹을 하는 것이 개요이다.

음악을 만들고 노래를 부른 일보다도 체코 친구들과 심도 깊은 대화를 해볼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체코의 경제상황이 한국과 비슷하지만 체코인들의 행복도는 크게 변함없다는 점에서 프로젝트는 시작됐다. 왜 우리는 비슷한 상황에서 다른 태도를 취할까.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그들은 직업의 안정성 측면에 크게 구애받지 않았다. 또한 가족이 진로에 크게 관여하거나 추후 자녀가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문화가 없었다. 때문에 그들은 더욱 많은 시간을 들여 자신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일, 즐거운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다.

또한 체코로 유학을 온 친구들 중 파일럿을 전공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자기를 “I’m the normal boy like others, wanna be a pilot”라고 소개했다. 놀랍지 않은가! 파일럿을 꿈꾸는데, 자신을 평범하다고 인식한다. 그만큼 진로 선택에 있어 그들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문화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인류학 전공을 하는 친구 또한 취업고민보다도 전공 선택에 있어 ‘재미’를 주요 요소로 언급했다.

다양함을 꿈꾸는 사람들 속에서 다양함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내겐 가장 감사한 점이자 의미 있는 성장이라 생각한다. 학문의 길에서 벗어나 부담감 없이 다양한 직업을 고려해보게 되었다.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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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해외를 돌아다니며 일할 수 있을까. 이제 인생 최대의 고민이 되었지만, 중요한 것은 현실을 어떻게 다룰 지에 대한 문제다. 여권, 여행자 보험, 항공료, 숙박, 식비, 생활비, 비자, 교통권, 학사, 학비, 병원비 등 실제 해외 생활을 하기 위해선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사실 모든 문제의 열쇠는 돈이다. 돈만 충분하다면 낭만이 일상이 되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내겐 해외에 나간다는 일 자체가 쉽지 않기에 아직 낭만으로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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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의 기숙사는 혼용이었다. 때문에 남자 친구들과 항상 마주쳤는데, 엘리베이터에서의 스몰 톡이 시작이었다. 프로페셔널 파일럿을 전공한다는 친구의 말에 마음을 뺏겨서 그 날 당장 ‘hang out’을 해버렸다. 이후로도 몇 번 같이 ‘hang out’을 했는데,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다. 놀랍게도 외국은 ‘사귀자’라는 명확한 경계를 짓는 행위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느낀 것은 매우 일의 구분이 철저하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엔 연애 시간이 너무 좋으면 개인 일정을 미루기도 하는데, 그들은 절대 그렇지 않다. 이건 이거고 처리할 문제는 또 다르기 때문에 굉장히 인식 전환이 빠르다. 시간에 대한 경계도 확실하다. ‘go to sleep’할 시간도 잘 챙긴다. 한국인이라면 아마 ‘up all night’을 외치며 밤새 놀았을 텐데, 참 아쉬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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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미련이라면 내가 좀 더 일찍 이곳을 경험했더라면 하는 생각이다. 더 오래 향유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내가 젊었다면 달랐을까. 이뤄지지 않을 문제에 대해 ‘What if’라며 질문해보는 것 자체가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것 같다.

내가 지나와야 할 단계들이 있었고, 그것을 지나지 못했을 때 프라하를 경험했다 해도 같은 느낌을 받아올 수 있었을지는 미지수다. 분명 삶은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아서 마주하는 시기마다 새로운 길들을 만들어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현재다. 또다시 지금을 놓쳐버린다면 후엔 배로 후회하게 될 것을 직감한다. 언제나 순간의 최선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PRAHA IS P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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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계획은 내년 1학기 교환학생에 지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학기 학사경고는 쉽게 넘기기엔 너무 많은 불이익이 있다. 한국장학재단 및 미래에셋 교환학생 장학금 지원자격 미달이며, 현재 교환학생을 지원할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혹 교환학생을 가지 못하게 된다면, 여행이라도 떠나서 이번처럼 체코에서 1달 살기를 하고 올 생각이다. 한국에 귀국한 후 워킹 홀리데이, 유학, 국제 문화 등에 대한 것들을 많이 알아보기 시작했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다시 떠날 것이라는 계획 아래 예산을 모으기 시작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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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는 내게 프리즘이다. 회색 빛의 한국에서는 전혀 볼 수 없던 무지개 빛의 반짝이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새롭게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가 있다. 나는 다시 나가길 꿈꾼다. 현실에 기반한 낭만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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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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