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적인 폭력] 03. 관계 맺기에 실패한 아이

인싸가 되지 못한 우리들
글 입력 2019.08.12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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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관계 맺기에 실패한 아이



몇 년 전, 극장에서 영화 <우리들>을 보았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언제나 혼자인 외톨이 선은 방학식 날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전학생 지아를 만난다. 여름방학 동안 우정을 쌓아가는 두 사람, 그러나 개학하고 다시 학교에서 만난 지아의 태도는 여름방학 때와 달리 완전히 차가워졌고, 선은 지아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지만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영화는 치열하게 관계와 투쟁하는 두 초등학생을 보여주는데, 그 아이들의 감정이 너무나 생생해서 보는 내내 영화관이 아니라 초등학교 교실에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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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느낌은 비단 생생한 감정 묘사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교실에서 내 편 하나 없는 주인공 선의 입장이 십여 년 전의 나와 완전히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선처럼 화기애애하게 떠드는 아이들에게서 보이지 않는 벽을 느꼈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쉬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당시 나에게 학교에 있는 시간은 곧 공포였다. 학교에 너무 가기 싫어서 꾀병을 부려보기도 했다. 그게 통하지 않아 결국 교실에 발을 들여놓으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하교까지 남은 시간을 세는 것이었다. 숨 막히는 학교생활에 지친 나는 방학이라도 있어서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러다 개학이 다가오면 지옥으로 돌아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그렇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왕따였다.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심각한 수준의 학교폭력을 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친구가 없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 나를 절망의 늪으로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초등학생에겐 좁은 교실이 곧 세상의 전부였고, 맺을 수 있는 인간관계도 같은 반 아이들과 선생님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완전히 고립되었다. 아무도 나를 그렇게 부르지 않았지만, 내 마음속엔 ‘낙오자’라는 인식이 커다랗게 박혀 있었다.

 

친구가 없었던 당시의 기억은 내 인생에 아주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나 자신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라는 낙인을 찍었고, 이후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이 사람도 결국 나를 싫어하게 될 거야.’라고 선을 그었다.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 새롭게 친구들을 만나 더는 왕따가 아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여전히 초등학교 교실에서 혼자 엎드려 있었던 그때에 머물렀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야 겨우 그 불안감과 낙인을 내 안에서 지울 수 있었다. 대학생이 되자 수업 듣는 시간도, 밥 먹는 시간도 모두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게 되었다. 전처럼 다른 이들과 똑같은 일과를 공유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서 커다란 해방감이 찾아왔다. 혼자만의 시간은 외로운 대신에 편하고 자유로웠으며 생각보다 훨씬 달콤했다.

 

그 달콤함을 맘껏 누리던 나는 어느 날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다. 혼자서 뭐든 할 수 있었던 나이기에 낯선 외국 생활도 아주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쫓기는 사람처럼 친하게 지낼 사람을 애타게 찾는 나를 발견했다.

 

그곳에 있는 대부분의 한국인이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관계를 0부터 시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 아이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현지인 친구들을 단시간에 많이 사귀어서 ‘핵인싸’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다급하게 맺은 관계는 금방 공허해졌다. ‘핵인싸’라고 불리던 아이도 가끔 회의감이 든다는 말을 내뱉었다. 혼자의 시간을 즐기고, 관계에 대해 초연해졌던 나는 사라지고 학교를 무서워했던, 매일 잠들기 전 내일은 친구와 사이좋게 지낼 수 있기를 바랐던 나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혼자가 외롭지 않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교환국에서의 나는 왜 그렇게 허겁지겁 사람을 사귀었을까? 그 대답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모두가 새로 관계를 맺는 와중에 혼자인 게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왕따였던 그 시절, 나를 가장 크게 괴롭힌 감정은 모두가 통과해야 할 관계 맺기의 관문을 나 혼자 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었다. 현장학습 때 자유 시간이 주어지자 아이들은 신이 나서 저마다의 무리와 놀러 다녔고 나는 혼자 외딴곳에 앉아 있었다. 그때 한 선생님이 다가와 ‘왜 친구들과 놀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가 부끄러워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선생님의 목소리와 표정은 따듯했지만, 그 질문은 내게 비수가 되어 날카롭게 꽂혔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은 그래도 버틸 수 있었다. 책상 위에 엎드려 있거나, 아무도 없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면 어쨌든 시간은 지나갔다. 문제는 수련회였다. 혼자 있을 공간도 없었고, 집에도 갈 수 없었다. 꼼짝없이 군중 속에 갇혀야 했다.

 

선생님으로부터 1박 2일 수련회에 대한 공지를 들었을 때, 또 어떻게 수련회 일정을 보내야 할지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물론 그건 나뿐이었다. 아이들 사이에선 흥분에 젖은 웅성거림이 오갔다. 1박 2일이 아니라 2박 3일이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나왔다. 선생님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은 수련회라면 무조건 좋지?”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아닌데, 난 수련회가 너무 싫은데. 그때 처음으로 학교에서 친구 없는 아이는 고려 대상조차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학교는 끊임없이 협동을 강조했다. 수련회 외에도 같이 무언가를 하는 활동이 많았다. 아무도 누군가는 그 활동을 괴로워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언젠가 학교에 나 빼고 모두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 내가 혼자인 게 덜 두드러질 테니까. 만약 그때의 내가 단순히 외로웠다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성인이 되고 난 후의 인간관계는 훨씬 더 다양하고 복잡했다. 그와 함께 내가 모두를 사랑할 수 없듯이 나도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자 오히려 전보다 사람을 대하는 게 즐거워졌다. 모두에게 사랑받지 않아도, 친구가 많지 않아도 내가 행복하면 되는 것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외활동 모집공고나 광고 문구에 ‘핵인싸’라는 말이 많이 보였다. 그리고 그 문구 옆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항상 해맑았다. 그와 반면에 아싸를 찾는 곳은 본 적이 없다. 아싸와 인싸, 외부자와 내부자는 분명 서로 반대말일 뿐인데 암묵적으로 아싸는 부정적인 단어로, 인싸는 긍정적인 단어로 쓰이고 있다.


물론, 친구가 없다는 건 외롭지만,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혼밥(혼자 밥 먹는 것)을 하는 게 부끄러워서 화장실에 들어가 소리도 안 나게 단무지 없는 김밥을 먹는다는 말을 유머처럼 소비하고 있다. 그 말을 들으면 동정심 대신 그 사람을 화장실까지 내몬 세상에 진절머리가 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타인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필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그게 모든 이의 의무는 아니다. 이 말을 교실에서 외롭게 울던 나에게 전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친구랑 놀지 않느냐고 묻는 대신에, 불쌍하게 바라보는 대신에 친구가 없다고 해서 그게 네 가치를 결정짓는 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지금의 나도 지난 초등학교 시절을 조금은 나쁘지 않게 추억할 수 있었을 텐데.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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