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호크니를 목도한 이들을 위한 영화 - '호크니'

예술가의 삶과 작품세계에 대해
글 입력 2019.08.07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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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개월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데이비드 호크니展>이 열렸다. 전시에서는 호크니가 직접 그린 작품들 133점을 볼 수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전시를 통해 호크니의 작품세계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전시를 본 사람들은 호크니의 독특한 작품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현존하는 작가들 중 최고가의 작품을 그릴 수 있었는지 알고 싶을 것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영화 <호크니>는 그의 작품세계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좋은 기회이다. <호크니>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호크니가 살아왔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림에 등장했던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작품세계를 생생하게 기록한다.




작가와 작품, 전시와 영화



호크니의 작품세계는 독특하다. 호크니 자체가 하나의 장르가 된다는 말처럼, 호크니의 작품세계는 단일한 스타일로 정의되지 않는다. 석판화부터 시작해 추상화, 초상화, 자연주의적 시선까지, 호크니는 기존 예술세계에 고정되어있지 않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끝없이 확장해나간다.


또한, 표현적 변화와 더불어 미학적 고민과 성찰에서 나오는 메시지는 하나의 장르라고 불리어도 손색없을 만큼 탄탄한 예술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호크니의 예술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 작품 내부에서 그의 예술세계를 관찰해야 하며, 작품밖에 존재하는 그의 삶 또한 관찰해야 한다.


작품과 작가는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 캔버스 위에 그려진 선과 면, 칠해진 색감은 개별적인 표현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작품은 예술가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예술가의 생각, 의도, 상황에 따라서 크게 좌우된다. 그래서 우리는 작품을 개별적인 표현으로만 바라봐선 안 된다. 예술은 삶의 비평이다. 작품과 예술가는 개별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예술가의 작품은 그의 삶과 분리되어 해석될 수 없다.


그래서 호크니의 다채로운 예술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호크니의 인생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의 삶을 관찰하다 보면, 작품에서 보지 못했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삶은 곧 예술이다. 그래서 예술가의 인생은 작품을 설명해줄 해설이 아닌, 또 다른 작품으로서 바라봐야 한다. 그래서 영화 <호크니>는 작품들의 해석을 위한 것이 아니라 호크니가 보여준 또 다른 예술인 그의 삶을 관찰을 위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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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못 작가의 깊이를 이해할수록 작품도 그 깊이만큼 자세히 보이는 법이라 생각한다"



시사회를 함께 보러 갔던 '김'은 영화를 본 후 나에게 이런 후기를 남겨주었다. 예술가의 작품과 예술가의 삶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상호작용한다. 작품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작품이 세상에 나온 후 작가가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도 상호작용은 생생하게 변화한다. 그래서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것은 그 상호작용을 마주할 기회다.


이는 작품의 숨겨진 반쪽을 볼 수 있는 기회며, 더 넓고 깊게 예술가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다. 개인적으로 호크니가 취향이 아니었다는 '김'은 이번 영화를 통해 호크니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고 전해주었다. 그래서인지 호크니 전시에서 굿즈를 잔뜩 사가는 모습을 보고 내심 영화를 보여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을 정리한다는 것



<호크니>는 작품의 해석보다 호크니의 인생 자체의 감상을 남겨주는 영화였다. 세계 기록을 경신한 고가의 작품을 그린 화가가 아닌, 한 예술가의 인생에 대한 감상이었다. 전시를 보지 않고 영화를 먼저 본 나에겐 호크니라는 사람은 좀 더 친근하고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영화를 볼 때에 인간 호크니에 대해 집중하게 되었고, 작품에 대한 고민보다는 한 예술가의 인생에 대한 고민이 더 떠올랐다.


영화를 본 후 '김'과 나눴던 대화 중, 호크니가 삶을 정리하는 과정과 예술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호크니가 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을까?'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아마 인생을 되돌아볼 기회가 필요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라는 말을 했다.


호크니는 흐르는 시간에 대해 예민한 사람이었다. 시간이 흐르는 것에 반응하고 그것을 자신의 작품에 녹여냈던 호크니는 피카소의 영향을 받아 큐비즘적인 해석으로 인물 사진을 콜라주 한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그의 시간에 대한 감수성은 영화 곳곳에서도 드러난다. 영화 중간중간에는 호크니의 회상 장면이 등장한다. 호크니는 자신이 떠나보낸 사람들에 대해 추억하는 인터뷰를 한다. 그가 떠나보낸 연인과 친구들, 돌아가신 부모님을 회상하며 직접적인 슬픔을 드러내진 않지만, 그의 말 끝에서 흐리게 묻어나는 슬픔은 그가 느낀 무게의 단편을 알 수 있게 한다.


'김'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호크니의 죽음이 궁금하다고 말했다. 반 고흐와 베르나르 뷔페의 유작을 봤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그들의 죽음에 대한 고민과 표현이 보는 이로 하여금 비슷한 감정이 느껴지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호크니가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에서 어떤 생각을 할 것이고, 삶을 마무리하는 호크니의 과정이 궁금하다고 말했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호크니가 자신이 무수히 많은 작품을 남긴 자택의 수영장을 걷는 장면이 등장한다. 노년의 호크니는 뒷짐을 지고 옅은 미소를 띠며 천천히 걷는다. 그 장면에서 호크니가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고, 앞으로 찍힐 마침표를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 호크니가 어떤 기분일지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감정과 작품들을 한순간의 걸음으로 정리하는 기분이란 희로애락 이상으로 복잡하리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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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Hockney,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


예술가의 초상. 예술가를 이해하는 일은 어렵지만 멋진 일이다. 우리가 예술가의 초상을 바라보는 것은 예술가가 살아내는 삶의 방식을 알 수 있게 하며, 예술가가 자신의 초상을 그리는 일은 자신의 삶을 한편 정리하는 기회를 얻게 한다.

예술은 작품 자체로 남아있지 않고 예술가와 끊임없이 연결되며 삶과 함께 살아 숨 쉰다. 예술은 예술가의 삶 자체며 예술가의 삶은 예술로 표현된다. 이 영화를 전시에서 호크니의 작품을 목도한 이들에게 추천한다. 호크니의 삶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다 보면, 영화의 끝에서 노년의 호크니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영화 <호크니(Hockney)>

감독 : 랜달 라이트

출연 : 데이비드 호크니 외 다수

장르: 다큐멘터리

개봉 : 2019년 8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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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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