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파란 시간 - 게으른 글쟁이가 글에 대해 생각한 것들 [사람]

글 입력 2019.08.06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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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시간

이 글은 도서 Full Moon의 단편 소설
<파란 시간>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이 글은 두서없는 독백입니다.
글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보냅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파란 흔적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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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색이 주는 이미지는 다양하다. 신뢰, 진정성, 차분함, 지적임 그리고 희망. (물론 우울의 또 다른 이름이 파랑이기도 하다) 어릴 때 즐겨 부르던 동요 중엔 ‘파란 나라’라는 노래가 있었다.

파란 나라를 보았니?
꿈과 사랑이 가득한.

한창 깊은 심연의 파랑에서 허우적대던 나는 이제 맑은 파랑의 하늘을 본다. 동요에 나오는 희망찬 푸른 빛의 파랑. 희망을 이야기 하는 파랑은 짙고 선명하다. 그 하늘을 보면서 생각한다. 희망은 설렘과 두려움 사이에 존재하는 돌다리와 같은 존재라고.



고민과 정체성, 글쓰기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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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전, ‘글쓰기에 대한 단상’이라는 제목의 오피니언을 쓴 적이 있다. 작년의 나에게 글은 일종의 해방구였다. 끊임없이 활자를 쓰고 내뱉으며 속에 담긴 말들을 해소해 나갔는데, 당시의 나는 그저 글쓰기가 좋다고, 이를 어떻게 발전시킬 지는 아직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이야기 했다. 그저 글을 쓰는 일이 내 삶의 일부가 되기를, 그래서 나는 항상 글을 쓰는 사람으로 남아있길 바랐다.


그렇다고 내가 글쓰는 일을 가볍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또 일이 되어버리는 건 싫다. 가장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남겨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좋아하는 일이 돈과 얽히기 시작하면 그 의미가 퇴색된다고, 가장 좋아하던 일로 먹고 살던 사람이 직업을 잃었을 때는 돌아갈 곳이 없다고. 딱히 나는 그런 딱 떨어지는 구분을 선호하진 않지만, 글쓰기를 그만두고 싶지는 않다.


애초에 직업 자체를 하나로 한정시키지 않는 사람이기에 더 어려운 것 같다. 양질의 글을 생산할 것이냐, 글쓰기 자체에 대한 애정을 남길 것이냐의 문제인 셈인데 나는 그냥 지금 이 상태로 있고 싶다.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오겠지만, 굳이 속단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냥 여러 시도를 해보며 좀 더 생각해보고 싶다.


_ <글쓰기에 대한 단상> 중 



정확하게 일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글에 대한 내 입장은 조금 달라졌다. 이제 글이란 녀석은 취미를 벗어나 나를 특징 짓는 하나의 매체로 그 지위를 옮겨가려 한다. 그렇게 만들어야 하고 그리 되어 가야 한다.

지역은 달라졌지만, 다양한 채널로 나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앞으로 나아가는 글들, 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글들, 오히려 뒷걸음질 치는 글들, 다양한 아이들이 내 주변을 맴돈다, 활자가 지배하는 일상을 사랑하지만, 때로는 활자로 표현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두려움이 앞서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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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란 시간>은 개인 채널에 올리던 시리즈 중의 하나였다. 취지는 같이 글을 썼던 동료들의 소설을 나의 언어로 풀어보자는 마음이었는데, 여름을 지나며 한 결 가벼워진 마음은 각 글들이 가지고 있는 깊은 파랑을 가감없이 받아들이기에 역부족이었다.

펜을 손에 잡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흘러가는 생각들을 그저 흘려 보내고 예민한 자극보다 시원한, 웃고 던져버릴 수 있는 자극들을 찾아 헤맸다. 글로 나를 표현하려는 욕구와 수많은 글쟁이들이 날고 기는 가운데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이 미친듯이 싸워 댔다. 혼란한 와중에 나에 대한 관찰은 자취를 감췄고 나는 길을 잃어버린 채 방황했다.

이전부터 내 글의 중심은 늘 ‘나’였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 내가 느끼는 감정, 내가 깨닫는 생각들이 하나 둘 모여 문장을 이루고 글을 만들어냈다. 언제나 그 중심엔 내가 있었고, 나에게서 글을 거쳐 ‘너’에게로 (독자에게로) 닿는 과정이 내 글이 닿아야 할 소구점이었다.

나는 부유하고 있다. 내 글에 대한 고민, 글로 나아가야 할 방향, 이 글이 나를 먹여 살리기 전(가능할 거라곤 아직도 의심스럽다. 그만큼 어려운 문제다)까지 내가 해 놓아야 할 것들,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 다른 이들과의 비교 등에 억눌려 바람을 잘못 탄 돛단배처럼 둥둥 떠 다니고 있다.



파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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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란 시간>이 의미하는 파란 시간과 내가 이 글에서 적는 파란 시간은 확연히 다르다. 전자가 해 뜨는 새벽, 만물이 평등해지는 파란 시간이라면, 그래서 그 빛 아래서 상처를 감출 수 있는 시간이라면, 후자는 푸른 바람이 부는 여름날의 쨍한 하늘이 가지는 시간이다. 파란 나라에서 말하는 희망의 시간, 설렘과 두려움이 점철된 미래를 엿보는 시간말이다.

올해 글에 대한 목표는 하나였다. 닥치는 대로 써보자. 이전의 나보다는 더 많이, 글을 써보자. 마음이 건강하지 못할 때는 어쩌면 더 많은 글을 썼던 것 같다. 생각들이 많아지고 많아져서,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을 계속 느꼈기에, 일종의 강박이자 생존본능으로 글을 써 댔던 것 같다. 덕분에 분에 넘치게 책도 쓰는 영광을 얻었지만, 그건 단순히 운이 좋았기에 생긴 행운일테다.

오롯이 내 글로 사람들과 닿을 수 있을까? 나는 지금도 가끔씩 글을 써야하는 순간이 오면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다. 게으른 글쟁이는 마음 속에 꼭꼭 감춰두었던 문장을 아주 오랜 고민 끝에 슬쩍 꺼내 놓는다. 참으로 오래 걸리는 과정이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앞으로 글이란 녀석을 내 인생에 들여놓기로 했으니, 두려워질 때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이 것도 일종의 알을 깨는 과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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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건 몇 개월 뒤의 나는 이 글을 쓴 지금의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란 점이다. 이불킥을 하며 이런 오글거리는 글을 쓴 과거의 자신을 탓할 것이다. 그런 뻔한 미래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건 한 때 나란 사람이 이런 고민을 했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 그리고 현재의 나를 돌아보고 싶어 서다. 어떤 형식으로든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자신의 글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볼 테니.





장황하게 길어진 독백의 마지막은 장강명 작가의 말로 끝내고 싶다. 내가 아주 아주 좋아하는 말.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써야하는 사람은 써야한다.”

모두들 각자의 파란 시간을 지나 붉은 절정의 맞이하길 바라며 이만 줄인다.



[한나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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