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백지는 끝없는 우울을 불러올 뿐 - '호크니' [영화]

시대에 맞춰 끊임없이 변화하는 거장, 그리고 우리
글 입력 2019.08.0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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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회 보러 가는 당일에도 서울시립미술관에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이미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관람한 전시, 평일에 가도 관람객이 바글바글하다는 후기 글에 선뜻 전시를 보러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나는 일찌감치 영화관에 도착해 티켓을 수령한 후, 빈자리에 앉아 영화 소개 글을 다시 읽었다.



현존하는 가장 비싼 작가, 금발 머리에 동그란 뿔테안경을 낀아이콘, 이 시대가 사랑한 아티스트 ‘데이비드 호크니’. 그의 모든 것을만날 수 있는 다큐멘터리.


 

관람객이 많아서 전시에 가기 싫은 건 핑계다. 사실 나는 '데이비드 호크니' 라는 작가를 잘 몰랐다. 데이비드 호크니 열풍이라는 기사를 보고 그의 이름을 검색해봤을 때 내 눈에 익숙한 작품이 몇 개 있었다. '데이비드 호크니' 라는 이름과 작품들이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아, 이게 호크니의 작품이었구나. 평소 그림에 관심이 없는 내가 아는 작품의 작가이니 분명 엄청 유명하겠거니 생각했다.


누군가가 이렇게나 데이비드 호크니를 잘 모르면서 왜 이 영화를 봤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해 줄 것이다. 궁금했다. '현존하는 가장 비싼 작가, 금발 머리에 동그란 뿔테안경을 낀 아이콘, 이 시대가 사랑한 아티스트' 라는 수식어를 가진 데이비드 호크니를 알고 싶었다.


그리고 영화 <호크니>를 본 지금,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써보려 한다.




난 어디에 있든 그림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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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내내 정말 부럽다고 생각한 점이 있다. 바로 그의 열정과 노력이다.



난 내가 좋을 때

좋아하는 것을 그린다.

난 어디에 있든 그림을 그린다.



영화의 초반 부에 호크니가 한 말이다. 그의 인생은 마치 색을 풍성하게 사용하여 완성한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것 같았다. 한 번에 완성한 작품이 아닌, 오랫동안 성실하게 색을 올려 조화를 이루어낸 작품.


그는 항상 그림을 그렸다. 좋을 때 좋아하는 것을 그린다는 그는 일상의 모든 곳에서 오브제를 발견했다. 그 오브제는 자신과 가까운 친구나 가족 혹은 수영장이 되기도 했다.



세상 모든 피사체의

매력과 특징은

열심히 관찰한 사람만이 알 수 있다.



18. Three Trees near Thixendale, Spring 2008_ Oil on 8 canvases (36_ x 48_ each) 72 1_4_ x 192 e_4_ overall.jpg
Three Trees near Thixendale, Spring



지나가는 길 옆에 자라난 풀들을 그리기도, 사계절에 걸쳐 숲속의 풍경을 그리기도 하는 그의 모습에서 그의 관찰하고 묘사하고자 하는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영화 보는 것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의 호크니는 항상 영화관의 맨 앞에서 관람했기 때문에 영화에 테두리가 있는 걸 몰랐다고 한다. 덕분에 그는 영화에 더 몰입할 수 있었고, 그 경험은 이후 호크니의 작품관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13. _A  Bigger Splash_ 1963 Acrylic on canavs 96_ x 96_.jpg
A Bigger Splash


호크니의 대표작인 '더 큰 첨벙' 은 물이 튀는 1초의 짧은 순간을 표현하기 위해 7일간 그린 작품이다. 그는 그 당시의 신문물이었던 폴라로이드 카메라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제작했다.

영화 속에서 호크니는 '더 큰 첨벙'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관객은 그림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와 다이빙해야 한다고. 어릴 적 영화관에서 그가 경험한 몰입을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에게도 선물하고자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열정과 노력에는 그가 선택한 매체도 해당된다. 폴라로이드 카메라, 컬러 티비, 팩스, 핸드폰 그리고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그는 시대의 변화에 맞춰 다양한 매체를 사용한다.


아이패드 드로잉.jpg
아이패드로 그린 드로잉



그리고 우리


무엇보다 나는 슬럼프에 빠진 창작자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너무나 손에 안 잡힐 때가 있다. 작업은 중단되고, 나 혼자 그 자리에 서서 나를 앞서가는 이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나는 끝없이 뒤처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앞서 간 그들의 뒷모습이 희미해질 즘에는 끝내 나의 자질을 의심하게 된다.

사실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에 대한 끝없는 회의감 때문에 지난 많은 밤을 고민하며 보냈다. 그러던 중 영화 <호크니> 를 만났다. 그의 재능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도 마냥 전진하는 인생을 살지 않았다. 그의 첫 동성 연인과 이별했을 때, 그는 몹시 괴로워하며 작품을 미완성했다. 지인들의 2/3가 에이즈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큰 충격에 휩싸였지만 이후 작업에 매진하며 고통을 극복하려 노력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이 있을 수 있다. 때로는 미완성으로 끝내는 날도 있을 것이다. 꼭 시련 뒤 발전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영화 <호크니> 는 나에게 '꾸준히 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었다. 백지는 끝없는 우울을 불러올 뿐이다. 오늘 붓을 들어 선이라도 하나 긋는다면, 다음 날 선을 두 개 정도는 더 그을 수 있을 것이다.

전시는 끝이 났지만, 호크니의 평생을 기록한 영화 <호크니> 는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그와의 두 시간이 당신에게 소소한 원동력을 넣어 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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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호크니(Hockney)

감독 : 랜달 라이트

출연 : 데이비드 호크니 외 다수

장르 : 다큐멘터리

개봉 : 2019년 8월 8일



[김혜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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