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린 아이의 시선을 함축하다 -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극장

이곳은 전시회인가 놀이터인가
글 입력 2019.08.03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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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맞다. 매우 당황했다.

의자가 많았다.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수두룩 했다.



 

동화라는 말을 들을 때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키워드는 ‘어린이’다. 전형적인 선입견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동화를 제일 많이 접하는 연령대는 유아기다. 저 나이대의 사람들이 동화를 가장 ‘동화답게’ 감상할 수 있다.


동화답게 읽는다는 것이 어떤 건지는 나도 확실히 모르겠다. 지극히 내 기준에서 생각해봤을 때, 그건 아마 당연한 이야기를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 아닐까.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들을 재료로 삼아, 천진난만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능력도.

 

어렸을 때 읽었던 수많은 동화들 중에, 지금까지도 줄거리 하나하나가 자세히 기억나는 작품은 단 하나도 없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동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는 건 기억한다. 온갖 시련을 겪고도 결국에 마지막에 가서는 착한 사람이 잘 먹고 잘 살고, 나쁜 사람이 벌을 받게 된다는 결말. (인어공주는 제외.) 권선징악은 정말 당연하고 평면적인 이야기이다. 착한 사람은 칭찬 받아 마땅하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아 마땅하다.


이렇게 당연한 이야기를 담은 창작물 가운데 상당수는 진부하고 단순하다고 혹평 받는다. 그런데 동화만은 예외다. ‘아동용’ 동화는 오히려 입체적인 플롯과 주제의식을 전면에 내세울수록 이단아로 취급받는다. 성인이 되어서까지 유효한 교훈일지라도, 핵심만 요약해서 가장 단순하게 전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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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존!

일전의 칼럼에서도 쓴 이미지이다.

하트 모양이다.

네온 사인이 모티브인 듯하다.


  

이를테면 착하게 살아야 복이 오고, 나쁘게 살면 처벌이 기다린다는 교훈을 보자. 굳이 성인이 아니더라도 웬만큼 머리가 큰 후엔 저 말이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온갖 부정부패를 저질러도 자신의 명성을 유지하며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거나, 부유한 삶을 유지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청렴하게 살아도 겨우 제 목숨을 부지할 수준으로만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집단생활에서 독박이나 누명을 써 자신의 신변에 부정적인 평만 따르게 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바른생활 길잡이와 같이 저학년 교과서에 등장할 정도로 자명한 교훈들. 이들은 역설적으로 너무나도 단순하기 때문에 현실의 사정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다. 그 말들이 다 거짓이라면 사회는 이미 무법지대로 변해버렸을 것이니 말이다. 다만 그렇게 당연한 사실들에 복잡한 사정들이 살을 붙이면서, 다소 왜곡된 형태로 우리에게 받아들여진다. 예시로 ‘어린 아이라서’ 세상 물정을 모른다, 순진하다, 천진난만하니 부럽다는 말을 쓰는 것. 동화를 아이들의 것으로 치부하는 보통의 경향성. 동화 속 이야기는 현실이 아니라고 냉담하게 결론 내리는 성인들.


나도 이런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전시장에 도착했을 때, 어린 아이가 아닌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로 시끌벅적 했던 입장 부스를 보면서. 딱 저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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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인류애가 흘러넘치는 ‘놀이터’


 

입구를 지나 본격적으로 전시를 감상하는 코너에 도달했을 때, 여기가 대체 전시장인지 놀이터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다년 간 수많은 작품 전시회를 방문했지만 이런 구성은 처음이었다. 한창 이곳저곳 뛰놀 나이인 아이들을 배려했다고 생각했다.


난 굉장히 수동적인 인간인지라, 전시장의 구성을 보고는 그대로 사고 회로가 멈췄다. 대체 어디서부터 봐야 하는 걸까. 사방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멘붕이 왔다. 활발하게 이곳저곳을 탐방하는 아이들을 향해, 인자한 미소를 보내주시는 여러 부모님들과 다른 관람객들을 보며 인류애란 이런 것인지 고민했다. 익숙하지 않았다. 호흡을 가다듬고 가장 눈길이 가는 곳들부터 차례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동화 작가답게 자신이 지금껏 출간한 동화책들을 개별의 전시 코너들로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각 코너마다 해당 동화책에 들어간 삽화들을 작품으로 전시해 놓았다. 전시된 작품들은 대체로 따뜻하고 친근한 분위기를 풍겼다. 작품에 쓰인 밝고 화사한 계열의 색들로부터, 또는 인물과 배경을 그리는 드로잉 기법들로부터 그런 느낌을 받았다. 또한 작품마다 다양한 이야기와 인물들이 등장해서 전시의 구성이 다채로웠다.


각 작품에서 작가 본인이 중점적으로 사용한 드로잉, 채색 기법도 미묘하게 달랐다. 그만큼 표현의 스펙트럼이 넓다고 생각했다. 그런 와중에,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모든 작품마다 묻어나 있어서 인류애가 넘치는 작가라고 느꼈다. 나는 어린 아이가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많이 해보지 않아서, 앤서니 브라운 같은 사람을 볼 때마다 어떻게 저런 애정을 발휘할 수 있는지 마냥 신기하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작품은 <미술관에 간 월리(2000)>였다. 이 작품은 박물관이라는 테마로 전시되어 있었다. 왜 박물관 구역이 재미있었냐면, 저명한 조각상과 명화들을 작가의 입맛에 맞게 제멋대로 변형해놓았기 때문이다. 굉장히 해학적이었다. 미켈란젤로의 <비너스> 조각상, 장 프랑수아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등. 미술 교과서에서 많이 보았을 법한 유명한 작품들을 여기에서 만날 수 있었다. 다만 좀 우스꽝스러운 형태로.


인물들의 얼굴이 사람의 얼굴이 아닌,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고릴라의 얼굴로 바뀌어 있거나 사람 자체가 고릴라로 바뀌어 있다든지. 혹은 명화 속 인물이 쓴 모자가 고양이로 바뀌어 있기도 하는 등, 작가만의 개성을 담아 변형시켰다. 이렇게 변형된 작품들은 ‘박물관(MUSEUM)’이라는 하나의 테마로 묶여, 재미있는 놀이의 일종으로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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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왜 거기 계세요?


  

이 구역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변형이 가해지기 전 원래의 작품들이 지니고 있었던 권위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전시장 안에서는. 언급한 작품들과 그것을 그린 작가들은 미술사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발휘한다. 이 과정에서 그들과 그들의 작품은 성역화 된다. 당장 미켈란젤로만 해도 보통의 사람은 범접하기 힘든,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이런 예술가가 만든 작품은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어찌 생각해보면 영광스럽다. 그만큼 예술가도, 예술가의 작품도 일정 수준 이상의 벽을 형성한다. 그래서 양자를 공부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최소한 어느 정도의 교양을, 지식을 갖춘 사람이라 평가한다. 이때 이 사람이 어린아이이긴 어렵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이렇듯 수준 넘치는 예술가와 예술 작품을 어떻게 이해하겠냐는 생각이 작용한 결과다.

 

그런데 이 박물관 구역, <미술관에 간 월리(2000)>라는 제목의 작품은 그러한 선입견과, 저명한 예술가나 예술 작품이 만들어 온 성벽을 정면으로 강타한다. 그리고 하릴없이 작품의 권위를 무너뜨린다. 아이들의 손에 닿는 범주까지 작품 해석의 스펙트럼을 넓혀, 박물관이라는 테마를 통해 놀이터의 일부로 편입시켰다. 독창적인 시도다.


어떤 비평가들은 감히 위대한 예술 작품에 무슨 짓을 해 놓은 거냐며, 작품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며 혹평할지 모른다. 아마 원작자가 보면 기절초풍 할 수도 있다. 나는 그 점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감히’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위대한 예술 작품이, 우리가 그렇게 가치와 의미를 부여한 것들이, 과연 어린 아이들의 시선들을 통해서도 똑같이 느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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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은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 이다.



그 나이대의 아이가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이나, 작품을 보고 떠올릴 수 있는 아이디어는 어른의 그것과는 다를 수 있다. 예술 작품의 절대성을 운운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가장 단순하고 직설적으로 세상의 교훈을 담아 놓은 동화책처럼, 때로는 위대한 예술 작품도 그런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


만약 이를 위해서 원작을 일부 변형하거나, 큰 틀만 남겨 놓고 완전히 재창작하는 시도가 필요하다면 기꺼이 실행해볼 수도 있다. 그게 원작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원작이 형성했던 벽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원작으로의 접근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앤서니 브라운이 <미술관에 간 월리>를 창작한 이유도, 더 나아가 놀이터를 연상시키는 전시장을 기획한 것도 이와 비슷할 것이라 과감히 추측해본다.



“<미술관에 간 월리>는 월리의 스케치북처럼 보이지만 페이지마다 명화의 모티브를 차용하거나 고전 걸작에 대한 오마주를 담고 있다. …… 월리는 우스꽝스럽고 재치 있는 모습으로 명화 속에 나타나 웃음을 자아낸다. 또한 어린이들은 월리의 그림과 원래의 명화를 비교해봄으로써 걸작 회화작품들을 더욱 재미있고 창의적으로 읽어 냄으로써 자신의 감정과 시각이 반영하여 보다 주체적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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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은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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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브라운의 행복극장展
- 동화 속 세상으로의 초대 -


일자 : 2019.06.08 ~ 2019.09.08

시간
11:00 ~ 20:00
(입장 및 매표 마감: 19:00)

*
매월 마지막 월요일 휴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티켓가격
성인(만19세이상) : 15,000원
청소년/어린이/유아(24개월~만18세) : 10,000원

주최/주관
예술의전당
아트센터 이다
마이아트예술기획연구소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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