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겪는 고통이 내가 자초한 것이라면? [시각예술]

우리가 파괴한 자연 환경과 맞서 싸워야 하는 현실, '인류세'
글 입력 2019.08.02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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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청소기 위에 놓인 화분이 전시실을 바쁘게 돌아다닌다. 전시를 보던 관람객들은 화분을 피하기도 하고 따라가기도 한다. 다음 전시실로 이동하려고 탄 엘리베이터 안에는 각종 식물들이 꽉꽉 들어차 있어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 사이에 끼어 있어야 한다.

이는 바로 일민미술관의 <Dear Amazon: 인류세 2019>전에 대한 이야기다. 이렇듯 이곳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 그리고 이를 넘어서서 자연 속으로 우리가 들어선 것처럼 느껴진다.

지난 7월, 브라질 국립우주연구소는 6월 아마존 열대우림 파괴 면적이 769.1㎢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인간의 환경 파괴로 인해 급변한 지구의 자연환경과 맞서 싸우게 된 새로운 지질시대, ‘인류세’가 도래했음을 명확히 알려주는 지표다. 그래서 일민미술관은 더 이상 소홀히 지나쳐서는 안 될 전 지구적인 환경 문제에 대해 다각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11명의 브라질 작가들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전시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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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주앙 제제의 <원석>은 브라질 수출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원석들을 3D 모델링을 통해 스티로폼으로 구현한 작품이다. 뒤편으로는 현란한 미디어 기술로 제작된 원석 영상이 재생된다.

그리고 이 작품은 설치 작품이 세계 곳곳으로 운송될 때 소요되는 과도한 운송비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방식을 선보인다. 브라질에서 스캔된 원석의 3D 모델링 파일은 한국으로 전달되어 원본과 똑같은 모습으로 복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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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브란다오의 <흙과 물>은 진흙으로 만든 비누로 손을 씻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류가 만들어낸 문화에 비해 부수적인 것이라고 생각해 왔던 자연이 반대로 우리 문화에 개입하고 있다. 우리들은 자연을 입맛에 맞게 이용하다가도 눈앞의 이익을 위해서는 내버린다.

그러나 작가는 항상 묵묵히 우리의 요구에 응했던 자연을 의식적으로 능동적인 입장에 세우면서 지금까지 우리들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자연의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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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러한 자연에 대한 대상화는 전시 후반부의 <물고기>에서도 드러난다. 조나타스 지 안드라지는 이 작품을 통해 어부들이 갓 잡은 물고기를 안고 쓰다듬는 장면을 담았다. 물고기는 죽기 직전의 상황에서 고통스럽게 펄떡대지만 어부는 물고기를 마치 반려견을 대하듯이 소중히 어루만진다. 이 장면은 자연의 우위에 서 있는 인간의 모습을 국소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이 전시 속 ‘인류세’란 단순히 인간이 자연환경에게 가한 폭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전시가 진행되면서, 인류가 행했던 과격했던 변화의 몸짓은 자연뿐만 아니라 같은 인간에게도 고통을 안겼음을 점차 드러난다. 그 예시로 급격한 근대화와 도시화의 어두운 이면을 보여주는 등 인류세의 파장을 인간의 영역까지 확장하며 우리에게 더 큰 경각심을 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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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타스 지 안드라지는 브라질 동북부의 항구도시 헤시페의 근대화에 대해 다룬다. 헤시페는 농사를 짓기에 적절했던 환경과 교통적으로 유리한 지리적 이점 때문에 포르투갈의 식민지 시절 브라질의 주요 도시로 성장한 곳이다. 이곳은 옛 건축물들과 근대의 건축물들이 공존하고 있어, 작가는 이곳의 현주소에서 브라질 근대화의 실패를 찾는다.

그의 작품 <노스탈지아>에서 헤시페 지역의 근대적 건축물에서 나온 타일들은 ‘근대적 삶에 관한 선언서’의 텍스트를 방해하고 있다. 타일들은 문장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중요한 단어들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면서 글의 의도와 뜻을 흐린다. 명확히 입 밖으로 내뱉은 근대적 삶에 관한 선언을 불명확하게 만든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인간이 만들어낸 근대적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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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루카스 밤보지는 거대도시화의 과정에서 내몰려진 계층에 주목한다. 그의 작품 <작은 집>은 허가받았을 리 없는 초라한 건축물이다. 이 집은 설치 공간 주변에서 발견되었거나 전시 공사에서 남은 자재로 만들어져 그 자체로 수동적이고 객체화된 것임을 뜻한다.

집 안에서는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문에 달린 디스플레이 화면은 누군가가 계속 나오려고 하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집 안의 누군가가 벗어나기를 원하는 것은 단순히 좁고 허술한 집이라기보다는 현재의 전체적인 상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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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인류세 속의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갈등은 신시아 마르셀과 티아고 마타 마샤두의 <세기>에서 극한점에 도달한다. 이 작품은 이유 모를 시위 현장 속에서 던져지는 헬멧, 타이어, 돌 등의 쓰레기들의 영상을 통해 무질서의 현장을 드러낸다.

*

우리는 보통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인간과 환경으로 확장해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환경적 문제들은 한 발짝 더 나아가 생각하게 되는 것으로 여겨지곤 했다. 그러나 <Dear Amazon: 인류세 2019>전은 자연 파괴 문제로 시작해 인간 사이의 문제까지 끌어들인다. 이를 통해 인류세로 인해 고통 받는 것은 자연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까지 던진다.

이는 그제야 실질적인 위기를 느끼는 나 자신의 이기심을 발견하게 만들기도 했다. 또한 이번 전시는 이러한 환경적, 사회적 문제로 점철된 지구의 현실은 결국 우리가 자초한 것임을 인정하면서 스스로 변화를 이끌어낼 때임을 시사한다.


[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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