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현실과 공상, 그 사이를 넘나드는 ‘에릭 요한슨 사진展’

글 입력 2019.08.01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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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를 다니다 보면 종종 지루한 전시회를 만나기도 한다. 분명 나올 준비를 다 하고 씩씩하게 전시장 안으로 걸어들어왔는데도 예상보다 재미가 없어 유심히 보는 척만 했던 전시회도 꽤 된다. 그런 내게, ‘에릭 요한슨 사진展’은 오랜만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기분 좋은 느낌을 주었다. 한 작품마다 오래 서서 작품을 곱씹게 되는 전시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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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요한슨은 스웨덴 출신의 사진작가이다. 그러나 그는 엄밀히 말하면 사진작가인 동시에 이야기꾼이기도 하며, 편집자이기도 하다. 그가 카메라를 이용해 사진을 찍는 것은 맞지만, 그사이에 많은 과정이 숨어있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창조해내고,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를 포착해 자신만의 상상 속의 장소로 변화시킨다. 작품의 소스가 되는 사진을 찍어낸 후, 포토샵을 이용하여 2차 가공을 한다.

에릭 요한슨은 자신에게 사진은 셔터만 누르면 끝나는 게 아니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 무언가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때부터 자신의 상상력에서 나온 장면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그다음 장면이 무엇일지, 이후의 이야기는 어떨지 상상하게 된다. 오래도록 그의 작품 앞에서 발걸음을 쉽사리 떼지 못했던 이유다.



어릴 적 상상, 꿈꾸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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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ull Moon Service, 2017>


가장 마음에 들었던 사진은 바로 <Full Moon Service>였다. 평소 달이나 신비로운 밤하늘을 좋아하는 나로선 보자마자 시선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는 그림이었다. 달을 좋아하는 나였어도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생각이었다. 달의 모양이 매일 바뀌는 것은 사실 사람이 직접 달을 바꿔주는 서비스가 있기 때문이라니!

이 사진이 작가 본인이 가장 애정을 가진 사진인지,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자세히 공개해주어서 좋았다. 머릿속 상상을 스케치로 옮기고, 어떻게 찍을지 구상을 하고, 실제 사람들이 달처럼 만든 공을 들게 한 채 사진을 찍고, 진짜 공을 진짜 달처럼 수정하는 작업을 통해 탄생한 작품이었다. 포토샵 작업을 할 땐 무려 150개 이상의 레이어를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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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p of Faith, 2018>


마치 영화 <업(Up)>이 떠오르는 이 사진은 어릴 적 한 번쯤 해본 풍선에 매달려 날아가는 상상을 재현했다. 사실 풍선을 들고 허공을 향해 발을 내딛으려는 저 사람이 떨어질지 말지는 아무도 모른다.

현실이라면 떨어지는 게 맞지만, 우리는 이 사진을 보고 그가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하늘을 향해 날아가지 않을까, 하고 바라게 된다. 어릴 적 상상과 꿈꾸던 미래가 결합한 사진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너만 몰랐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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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ing Asleep, 2018>


내게 전시회를 가는 이유를 꼽아보라면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결과물이 중요한 박물관이나 미술관과는 달리 전시회는 ‘과정’에 더 힘을 주었다는 점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 <Falling Asleep>이란 사진은 개인적으로 이번 사진전 내에서 가장 과정의 힘을 잘 보여준 사진이라고 생각했다.

방 안에서 물건들과 함께 사람이 떠다니고 있는 이 사진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저 사진은 어떻게 찍은 걸까, 궁금했는데 비하인드 영상을 보니 물속에서 인물을 찍고, 배경을 없애고 인물만 따서 합성한 것이었다. 다른 물건들도 사람이 손으로 들고, 비슷한 기법을 사용해 따로 합성했다.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수고가 들어간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조작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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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Your Own Road, 2008>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를 천처럼 들고 앞으로 걸어 나가고 있는 사람의 사진이다. 한 장의 사진이 어떤 말보다 힘이 있게 느껴졌다. 제목도 한몫했다. ‘길을 들고 있는 남자’도 아니고, ‘너의 길을 가라’였기 때문에 더 작품이 와닿았던 것 같다.

에릭 요한슨의 상상 속에서 우리는 무거운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도 들 수 있고, 공중에 떠 있을 수도 있고, 풍선을 타고 하늘을 날 수도 있다. 상상을 정말 현실처럼 그려내는 그의 탁월한 재주가 돋보인다.



어젯밤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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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Time, 2017>


이전 사진들이 어딘가 재치 있고, 긍정적이고 밝은 사진이었다면 이 사진은 조금 다르다. 유쾌한 발상이긴 하지만, 어딘가 씁쓸하기도 하다. 거대한 시곗바늘 위에 서서 조금 후면 바다에 빠질 것만 같은 긴급한 상황이다.

이 사진의 제목은 <Life Time>이다. 인생을 시곗바늘에 비유한 사진이다. 어젯밤 꿨던 꿈, 또는 악몽을 재현한 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테마의 사진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사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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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프라하에 위치한
에릭 요한슨의 작업실 스튜디오를
재현해놓은 공간


현실과 공상의 발칙한 변주에 빠져 허우적대니 전시장 문을 열고 나오면 바깥 세상이 현실이라는 걸 믿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끝으로 갈수록 더 찬찬히 작품을 감상했다.

특히 이번 전시회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두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한 작품마다 섬세한 작업을 하고, 공을 들이는 작가라 1년에 8개 작품 이상을 발표하지 않는다기에 더욱더 반가웠다. 굿즈 샵에서는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 너무 많아 고르고 골라 엽서 6개와 포스터 하나를 샀다.

에릭 요한슨은 자신의 영감의 원천은 ‘만약?’에서 나오며, 우리를 제한시키는 것은 유일한 것은 오직 우리의 상상력이라고 말했다. 오직 상상력만으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그처럼 이 전시를 보는 모든 이들이 감춰왔던 자신의 상상력을 건드리게 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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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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