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블루발렌타인 - 100%의 사랑과 0%의 이별 [영화]

만남과 이별에 대한 현실
글 입력 2019.08.01 15:4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을 때 그녀는 복수나 보복을 하려 들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일상을 이어나갔고, 그러다, 수 차례의 카운슬링과 대화 끝에 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깨져버렸던 거야, 그녀는 내게 말했다, 이미 깨져버린 걸 어떻게 도로 붙이겠어. 그러나 그녀에게 왜 화를 내지 않았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그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결혼을 깨는 것은 두 사람이야, 허니. 나는 그 두 사람 중 하나였고.”


- 단편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중 <머킨>, 208p


 
[크기변환]블루발렌타인메인.jpg
 

운명적 사랑, 이런 사랑에 대해 믿고 기대하는 사람이 많을까, 적을까. 실제로 그 수가 많고 적고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대답을 하는 이가 사랑에 빠져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아무리 운명론을 비난하고 멍청한 공상주의라고 욕해도 눈 앞의 사랑에 눈이 멀어버리는 것이 사람이다. 그 방식은 각자 다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그 사랑이 영원토록 뜨겁고 행복하리라 믿는다. 고난과 역경이 뒤따르겠지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금 눈 앞의 이 사람을 사랑하니까. 그런데 정말 그럴까. 수 많은 연인들과 부부들의 헤어짐은 그들이 사실은 서로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

영화는 신디와 딘의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며 보여준다. 의대생이던 신디와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던 딘은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던 와중 신디가 전 남자친구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고 혼란스러워하는 신디에게 딘이 청혼을 하며 둘은 가정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보여지는 현재에서 그들은 서로 대화조차 제대로 통하지 않는 하루하루를 버티게 된다.


[크기변환]blue-valentine-hotel.jpg
 

처음 이 영화를 보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져 리뷰를 찾아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신디가 잘못했는지 딘이 잘못했는지에 대해 적어놓았었다. 둘 중에 누가 더 진실되게 사랑하였고 결국 누가 더 나빠서 남은 한 명을 지치게 하였는지 말이다. 아마 둘 중 더 공감되는 쪽을 지지하게 되겠지만 나는 왜인지 신디와 딘 모두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딘은 로맨틱한 남자다. 그는 신디에게 첫눈에 반해 그녀에게 무작정 다가간다. 그녀를 사랑하기에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 그녀까지 모두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그는 어쩌면 사랑만 있다면 결국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는 사랑 그 자체를 믿는다.

반대로 신디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 앞에서 싸우던 부모님을 보며 영원한 사랑이 있는지에 대해 의심한다.


“엄마 아빠처럼 되긴 싫어요. 한때는 서로 사랑했겠죠? 절 낳기 전에 사랑이 식어버린 걸까요? 사랑이 그렇게 사라지는데 감정이란 걸 어떻게 믿죠?”


그러면서 자신의 부모님처럼 변하지 않을 남자, 즉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 그런 그녀에게 자신의 과거까지 감싸 안아주는 딘은 큰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 둘이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딘은 무조건적으로 신디를 사랑했다.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 첫눈에 반하고 적극적이었다. 반면 신디는 처음에는 그에게 어떤 호기심 이상의 감정은 없는 듯 보였지만 그를 만나가고 그의 헌신적이고 다정한 모습에 마음이 끌리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조건 없는 사랑인 딘이 진정한 사랑이고 신디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 조건들 또한 그 사람이기에 신디도 딘을 사랑했다. 다만 그 방식과 시작이 너무나도 달랐고, 조그맣던 간극이 시간이 흐르며 함께 벌어지기 시작했다.


[크기변환]Blue_Valentine_2.jpg
 

영화에 모든 것이 나오진 않지만, 그들의 결혼생활은 상상했던 행복이 아닌 서로의 차이를 체감하게 만드는 결투의 장으로 변질됐을 것이다. 딘은 사랑만 있으면 되는 남자이고 신디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여자다. 딘에게 신디는 사랑이 식어 영원한 사랑의 맹세를 저버린 사람이고 신디에게 딘은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현실성이 부족한 철부지 남편이다.
 


“나한테 맹세했잖아,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함께 하겠다고. 말했잖아, 맹세했잖아. 난 지금이 최악이야, 지금이 최악이라고. 이제 나아질 거야. 나아질 기회를 줘.”



사랑의 시작의 속도가 달랐듯이 이별의 속도 또한 달랐다. 아마 신디는 딘보다 오래 전부터 그에 대한 마음의 변화를 느꼈을 것이다. 그의 어떤 부족한 점에 대한 실망으로부터 안 좋은 점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어쩐지 그가 하는 사소한 모든 행동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음의 균열이 일기 시작하면 되돌리기 힘들다. 이미 겉잡을 수 없어진 이후에 그녀에게 딘이 하는 모든 노력들은 그저 짜증나고 의미 없는 행동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가 만드는 둘만의 시간, 스킨십을 위한 노력, 실 없는 농담들 모두 진절머리 나고 소름 끼치게 싫어진다.

딘은 언젠가부터 신디의 변화를 느꼈을 것이다.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했는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 다툼이 잦아서인지 알 지 못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그는 무엇이든 한다. 때로는 너무 절박한 마음에 그녀가 싫어할지 모른다 생각하면서도 밀어붙인다.

그는 아직 사랑하는 한 노력한다면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신디의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에 울컥하고 시비조로 대꾸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는 절실하다. 신디와 싸우고 홧김에 결혼반지를 던져버리지만 곧바로 그 반지를 찾으러 풀숲을 뒤질 만큼 말이다.


[크기변환]movie_image (1).jpg
 

신디의 마음이 먼저 식기 시작했다 해서 그녀가 딘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의 불꽃이 사그라들었다해서 그 불이 활활 탄 적이 없던 건 아니다. 그저 불이 탈 수 있는 땔감의 크기가 달랐을 뿐이다. 사랑의 크기와 질은 다른 개념이다. 크기가 다르다고 질이 다른 것은 아니다.

신디를 나쁘다고, 딘을 답답하다고 욕하기가 힘들다. 그 둘보다 현실적일 수는 없다. 우리는 신디가 되기도 하고 딘이 되기도 한다. 때때론 그 둘을 섞기도 한다. 이미 마음이 식어버려 더 이상 그 사람과 함께하는 어떠한 노력도 숨막히는 사람과 아직도 상대를 사랑해서 잘못된 방식으로 그 상대를 숨막히게 하는 사람.

누구에게도 잘못이 없지만 둘 다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 아무도 나쁜 짓을 하지 않았지만 모두 나쁜 사람인, 현실은 이렇게나 모순적이다.

사랑을 시작할 때는 이 사람의 모든 것이 100% 나에게 맞춰진 것처럼 운명적으로 느껴지고 이별할 때는 나와 그 사람의 단 하나의 공통점도 겹치지 않는 0%의 사람 같다.

현재진행형이건 이별을 겪었던 사람이건 많은 이들이 이 영화에 공감하고 비슷한 답답함을 느낄 것이다. 잊고 있었던 현실의 무게에 새로운 시작이 무섭기도 하다. 그래도 또 다시 사랑에 도전하고 100%의 사람을 믿어본다. 다른 사람에게는 0%였을지라고 나에게는 100%일지 모르기 때문에.


[크기변환]movie_image (2).jpg
 

볼수록 마음이 먹먹해지는 딘과 신디의 행복한 결혼 전 장면과 딘이 신디에게 둘만의 노래라며 선물한 OST의 비디오를 소개하며 마무리한다.





[김유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4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