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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이런 나라도 즐거울 수 있는 한 뼘 만큼의 여유 - 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 [도서]

by 권묘정 에디터
2019.07.31 23:27

 


나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쭉 소심했다. 소심하다는 말에는 많은 의미가 있겠지만, 내가 말하는 ‘소심’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잘 못 즐긴다.’는 것이다. 초중고등학교를 통틀어 축제, 체육대회, 수련회 레크리에이션 시간이 재미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성인이 되었어도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가수의 무대를 보러 페스티벌에 가도 나는 항상 온몸의 피부가 딱딱하게 굳어버린 사람처럼 어색하게 굴곤 한다. 축제나 페스티벌, 공연 같은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일상에서도 나의 이 ‘소심’은 빛을 발한다.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자리는 물론 친해지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과의 술자리, 카페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순간까지. 즐겨야 하는 상황마다 자주 내 목덜미는 빳빳해지고, 손발은 차가워지고, 입속은 까끌까끌해지고, 눈은 뻑뻑해진다. 즐겁게 몸을 흔들고 싶어도 그런 내 모습이 남들에게 이상하게 보일까 봐, 말을 하려고 입을 열면 목소리가 내 생각보다 클까 봐, 웃음소리가 어색할까 봐 주저하게 되는 탓이다. 어쩌다 분위기를 타 즐기고 온 날이어도 ‘혹시 내가 실수했으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이 내 몸에 찰싹 달라붙어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는다.


그래서 늘 그런 사람들이 부러웠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몸을 흔드는 사람,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도 유연하게 말을 이어가는 사람. 나와는 다른 질료로 만들어진 것처럼 부드럽고 따뜻하고 유연한 사람들. 그중에서도 제일 부러운 건 여행을 제대로 ‘즐길 줄’아는 사람들이었다. 한때는 여행 관련 SNS에 올라온 예쁜 영상과 사진을 보면서, 여행기의 멋들어진 문장을 읽으면서 나도 그런 여행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즐거울 땐 크게 웃고, 탁 트인 경치를 보면 소리를 지르고, 각국의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쉽게 친구가 되는 그런 여행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떠난 여행에서 나는 여행 내내 온통 예약이 잘못되지 않았을까, 교통 편의 시간을 놓치면 어떡할까, 이상한 사람이 말을 걸으면 어떡할까 전전긍긍하기 일쑤였으며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유명한 곳에서 더 유명한 곳으로, 블로그에 적힌 맛집에서 맛집으로 이동하기에만 바빴다. 여행을 떠나면 하게 된다는 ‘자아의 각성’은 고사하고, 현지인들의 불친절함이나 인종차별에 쉽게 움츠러들어 하루를 망치기 일쑤였다. 친구의 여행 사진들만 봐도 마냥 행복하고 즐거운 것 같은데, 나만 이렇게 불안하고 초조한 여행을 하는 걸까, 고민하는 하는 내게 ‘아니야, 나도 그래’하고 말해준 책이 있다. 오지은의 ‘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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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기는 매끄러운 문장으로 외국의 이국적인 건축물이나 아름다운 풍경을 소개하는 여행기가 아니다, 낯선 풍경 속에서 새롭게 발견한 일상의 가치나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을 말해주는 여행기도 아니다. 작가의 표현을 조금 빌리자면,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화면처럼 완벽하고 평온한 여행기보다는 ‘속세의 냄새를 풍기’는 여행기다. 그리고 이 속세 속에서 작가는 끊임없이 실수하고 실패한다. 5년 전에 반타 공항에서 먹은 연어 수프의 맛을 잊지 못해 헬싱키를 경유하는 비행기를 타지만, 각종 불안과 불면,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반타 공항의 라운지에 놓여있는 수프는 채소 수프뿐이다.


사지도 않을 물건들을 구경하다 아름다운 것을 볼 순간을 놓치고, 기분 내서 시킨 음식은 입에 맞지 않는다. 세부사항은 다르지만 같은 맥락에서 나도 겪었던 일들이라 읽으면서 계속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떠오르는 민망한 기억에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읽다 보니 책이 끝났다. 책을 덮으면서 최종적으로는 느낀 감정은 잔잔한 위안이었다.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과 오래오래 이야기한 기분. 나만 이렇게 긴장과 실수가 점철된 여행을 하는 건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 

 


동북아의 성장 집약적 나라에서 태어난 우리의 여행은, 특히나 유럽 같은 곳을 돌아볼 땐 마치 출장처럼 바쁘다. 미술관, 박물관에 가서 견문도 넓혀야 하고 블로그의 맛집에도 가야 하고, 몽주 약국에서 면세 쇼핑도 해야 하고, 가끔은 현지인처럼 골목도 거닐어야 하고, 그리고 나는 누군지, 어디로 가는지 성찰도 해야 한다. 7박 8일 동안. - p. 10 

 

그런 사람이지만 여행을 좋아한다. 구석에 파묻혀 있는 걸 좋아하면서 또한 여행을 좋아하다니. 인생. 아이러니와의 계속되는 싸움이다. 아름다운 것이 보고 싶다. 가능하면 구석자리에 앉아서. - p 6

    

아마 나는 여행 내내 구석을 찾아다니고 네모난 방 안에 누워 천장만 보고 싶어하고 혼자 울적하다는 이유로 맛있는 것도 먹지 않고 낯선 곳에서 긴장하고 불안해하다 좋은 순간을 놓치겠지만 알면서도 또 짐을 싸고 여행을 떠나니 괴이한 일이다. 하지만 여행. 그래도 여행. 대체할 것이 없다. - p. 7

 

여행자에게는 단편적인 인상 몇으로 결론을 내릴 특권이 있다. 그리고 동시에 그 편견이 깨지길 바라는 모순적인 마음도 있다. 역시 가보지 않으면 몰라.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하고 깨닫고 싶은 욕심. - p.73

 

     

그러니까 나는 이 책을 읽고 한 뼘 만큼의 여유가 생겼다고 할 수 있겠다. 불안하고 우왕좌왕했어도 그게 즐기지 않았던 건 아니구나. 나도 즐길 수 있구나.라는 마음 조금. SNS에 올라오는 예쁜 사진이나 영상들을 찍기 위해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우여곡절을 겪었겠구나. 하는 이해심 조금. 이 한 뼘 만큼의 변화가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겠다.


어쩌면 내 마음의 360도를 도는 동안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입을 삐쭉거리며 난 정말 여행을 못 즐겨!라는 마음가짐으로 돌아올지도 모르겠고, 이 한 뼘이 큰 나비효과를 일으켜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분명한 건 지금 나에게는 한 뼘이라도 여유가 생겼다는 것, 그리고 이 여유를 이번엔 정말 기꺼이 ‘즐겨’보고 싶다는 것.

 

*

 

사실 나에게 오지은이라는 사람은 늘 그랬다. 내게 한 뼘의 여유를 주는 노래와 이야기를 주는 사람. 오지은을 만난 건 한창 감정의 격정을 겪고 있던 사춘기 시절, 뮤지션으로서 오지은을 처음 만났다. 그때 내가 노래를 듣는 기준은 뚜렷했다. ‘내 마음을 울리는지!’ 지금 돌이켜 보면 너무 거창하다.


그 노래들의 주제 역시 거창했다. 운명, 운명적인 사랑, 신, 알 수 없는 초현실적인 존재. 알아들을 수 없는 가사들이 오히려 더 멋있다고 느끼던 때였다. 그런 나에게 오지은의 노래는 사실 맥 빠질 정도로 평범했다. 그런데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자꾸 듣게 됐다. 긴 머리를 풀어 헤치고, 기타를 치며, 정돈되지 않은(그때는 그렇게 느껴졌다)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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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어떻게든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요절한 천재들의 망령이 내 몸에 들러붙어 있을 때였다. 어린 나이에 뛰어난 성과를 내고 죽는 것, 그래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느껴지던 어리석은 사춘기 소녀였다.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자신만의 일상을 영위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접하기 힘든 때이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 으레 시집을 가거나 그러기 싫으면 죽어야만 하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런 내 안으로 오지은의 노래는 쥐도 새도 모르게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샤워를 하고 좋아하는 향기의 로션을 천천히 바르고 요즘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듣’지만 어딘가 모르게 허전한 일상의 시간, 이를 태면 참 ‘익숙한 새벽 세시’가 노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시간들을 노래로 불러도 괜찮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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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서는 작가로서의 오지은과 음악가로서의 오지은을 혼동해서 쓰는 것이 조금은 불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오지은은 단순히 작가로서의 오지은, 음악가로서의 오지은 보다 창작가로서의 오지은이라는 하나의 큰 존재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 창작자가 만들어낸 앨범들과 여행기, 수필집에서 읽히는 것은 ‘속세의 냄새’다시 말하자면 ‘일상의 감각’ 또다시 말하자면 ‘일생을 영위해 나가는 한 존재’다. 그리고 이것이 늘 나에게 한 뼘만큼의 여유를 열어주었다.

 

오지은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많은 시간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주기적으로 그녀에게 한 뼘 만큼씩의 여유를 빚지며, 그때와는 아주 다른 사람으로 변해왔다. 그녀도 많이 변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녀의 창작물을 주기적으로 누릴 수 있다는 것. 지칠 때마다 그것들을 찾아보며 한 뼘만큼의 여유를 빚질 수 있다는 것이 내게 큰 위안을 준다. 지금까지 그녀의 행보는 물론, 앞으로의 일들도 모두 응원하고 싶다. 때때로 빚진 한 뼘 씩만큼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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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EBS 라디오 오디오 천국에서는 오지은이 책 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를 바탕으로 <오지은의 이런 나라도 떠나고 싶다>라는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다. 진행된 회차는 팟방에서도 쉽게 다시 들어볼 수 있으니, 책을 즐겁게 읽은 독자라거나 책에 관심이 가는 독자라면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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