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초현실을 현실로 끌어오는 방법 '에릭요한슨 사진전' [전시]

에릭 요한슨 사진展:Impossible is Possible
글 입력 2019.08.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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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요한슨 (Erik Johansson)
 [1985. 04. 01, 스웨덴 출생]


에릭 요한슨은 스웨덴을 대표하는 사진작가로서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중에서는 가히 가장 정점에 있는 작가이다. 국내에는 아직까지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지만 와디즈(Wadiz) 크라우드 펀딩에서 오픈 10분만에 1000%금액을 달성하는 초유의 사태를 만들었다.



1. 셔터, 끝이 아니라 시작


에릭 요한슨, 내게는 낯선 이름이었다. 상상을 현실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다길래 그것이 어떤 상상일지 궁금했다. 그는 15살 때 부모님으로부터 처음 카메라를 선물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좋아하던 그는 사진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러나 셔터를 눌러서 단순히 세상을 캡처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 그가 생각한 세상이 시작될 수 있도록 했다. 그에게는 사진을 캡처하는 것보다 아이디어를 캡처하는 것이 중요했다.


아이디어.jpg
 


2. 합성이 아닌 결합


그의 초현실적인 상상을 현실 세계로 끌어오는 중요한 도구는 포토샵이다. 한 작품당 무려 150개의 레이어를 사용한다. 다른 여타 초현실주의 작가들처럼 단순히 디지털 기반의 합성사진이 아니라 작품에 들어가는 모든 요소(장소, 소품, 인물 등) 는 모두 실존하는 것이며 직접 촬영하여 결합한다. 전시장 내에 시계, 집게, 포클레인 등의 소품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들이 사진 속에 있는 것과 동일한 것이라는 거에 놀랐다.



3. 비하인드씬


작품 외에 비하인드씬 영상을 보는 것이 정말이지 신기하고 놀랍고 재밌었다. 그는 작품 몇 개를 선별해 그 작품을 만드는 전 과정을 영상에 담았다. 머릿속 아이디어를 빈 종이에 스케치하는 것부터 시작해 장소를 선별하고, 필요한 소품을 만들고, 포토샵 하는 과정까지 볼 수 있었다.

현실에 존재하는 소품들로 비현실적인 사진을 만들어내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의 과정들(밀가루를 반죽해서 초록색 색소를 입혀 언덕을 만들고 골판지가 번듯한 집이 되는 과정)을 내 눈으로 보고 있자니 입에서 우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사실 더 쉽게 작품을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사진들 중 그가 생각한 이미지를 골라 합성을 해도 그의 포토샵 실력이라면 충분히 자연스러운 느낌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다. 쉬운 방법을 뒤로하고, 굳이 어려운 길을 돌아 걸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사진기를 들고, 알맞은 장소를 찾고 소품을 만들고 컴퓨터 앞에 하루 종일 앉아서 시곗바늘의 흐름에 억압받지 않고 그만의 세상을 만들어 나갔다.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것은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멋있었다.


<Landfall Behind the scenes>



3. 나도 한 번쯤 해본 상상

예를 들면 사실 구름은 양의 털을 잘라 올려 보낸 것이라는 <Cumulus&Thunder>와 같은 작품은 어릴 때 했을 법한 상상이다. 실제로 나는 어렸을 적 가족들과 여름휴가로 강원도에 놀러 갔을 때 태백산맥에 올라가면 구름을 만질 수 있을 줄 알고 엄마 아빠를 무지막지하게 졸라 올라가 놓고서는 구름을 못 만지는 것에 크게 실망했다. 실망한 나를 위해 대관령 양떼목장에 가서 구름 대신 양을 만지게 해줬던 추억이 생각난다.

지금도 하얗고 보송보송하게 생긴 구름이 잔뜩 있는 하늘을 보면 마치 섬유 유연제 향기가 날 것 같고, 만지면 뭉실뭉실하고 푹신푹신 할 것 같다. 그렇지만 이제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이란 것을 알기에, 그런 터무니없는생각들은 떠올려놓고 피식 한번 웃고 만다. 그러나 그는 상상에 그치지 않고 현실로 꺼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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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k johansson, Cumulus&Thunder , 2017



4. 직관적인 제목

전시는 나름의 이유를 갖고 네 가지 섹션으로 구성되어있었으나, 섹션보다는 제목과 연관 지어보는 게 재밌었다. 요한슨은 작품을 잘 정의할 수 있는 직관적인 제목을 붙였다.

그리고 작품에 대한 의도, 배경 등의 설명 따로 없이 관객에게 직관적인 제목 하나만 던져준다. 그 이유는 관객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 다양한 것들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데, 그 때문에 그가 만든 초현실주의 작품에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을 연결하여 여러 가지 의미를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시의 주 타깃층이 다양한 연령대인 것에 비해 제목이 번역 없이 영어로만 되어 있어 그 점이 조금 의아했다.



5. 나만의 작품 해석


나는 이것이 에릭 요한슨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하는데,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에릭 요한슨이 어떤 생각을 하고 이 작품을 만들었을지 그 생각의 흐름을 유추해보게 된다. 내 마음대로 생각할 수 있도록 멋진 작품과 직관적인 제목만 달랑 던져 준 그에게 감사하며 열심히 생각해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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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k johansson, Soundscape, 2015
LP를 올려놓은 전축기에서는
음악이 파동을 일으키며 숲을 그린다.
그리고 오른쪽 하단에는 또 다른 LP를 들고
전축기로 향하는 사람 두 명이있다.


음악은 각기 고유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헬스장에서는 쿵쿵 거리는 신나는 음악을, 기분이 울적할 땐 마음을 잔잔하게 울리는 음악을 듣는 것처럼 장소나 기분에 따라 어울리는 음악이 있다. 또한 어떤 노래를 듣고 있으면 어쩐지 내 눈앞에 그림이 그려지는 느낌을 받곤 한다. 이런 느낌을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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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k johansson, Self-Actualization, 2011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는 사람마저 그림 속에 있다.


세상이 의심스러워질 때가 있다. 내가 선택한 것이 과연 진짜 내가 선택한 것인지 어떤 절대적인 운명이라는 것이 있어 나를 이런 상황으로 이끌어 그 선택을 하게 된 건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마음을 다해 열심히 했던 모든 것들이 다 수포로 돌아갈 때 모든 게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림을 그렸는데 사실은 나도 그림이 아닐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 아닐까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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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k johansson, Arms break, vases don't, 2008
팔은 깨졌다. 꽃병은 깨지지 않았다.


소중한 것들을 지키느라 몸이 부서진다. 우리 엄마가 그랬다. 세상 물정 모르는 20대 초반의 아가씨는 아이 둘을 키우느라 30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넘게 되었고 배에는 튼 살이 가득하고 허리 디스크에 걸렸다. 그 덕에 나는 꽃병 속의 꽃처럼 건강히, 안전히 잘 살아있다. 모든 꽃에는 꽃말이 있는 것처럼, 엄마가 팔을 부숴 지킨 화병의 꽃이 그만큼의 의미가 담길 수 있도록 반드시 잘 살아야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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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k johansson, Expectations, 2018
책상 속에는 빈 종이와 펜을 들고 있는 남자가
인상을 쓴 채로 먼 곳을 응시하고 있고 뒤에는
그와 똑같이 생긴 남자들이 모두 그를 지켜보고 있다.


이는 창작의 고통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내가 과제를 할 때 내 몸이 백 개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처럼 그도 같은 생각을 하는 걸까 했는데 제목이 Expactaion(기대)인 걸 보니, 잘 해내야 된다는 압박감이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자신 100명이 지켜보고 있어 마음이 무겁다는 뜻인가 싶었다. 에릭 요한슨의 고뇌와 불안이 가깝게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사실은 나를 열심히 움직이게 하지만, 또 어깨 위에 무거운 돌 같은 걸 잔뜩 얹어놓은 느낌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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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k johansson, Lifetime, 2017
Lifetime이라고 적힌 시계의 절반은
바닷속에 잠겨있고,
시곗바늘은 시계의 원리에 따라
점점 바닷속으로 향해간다.
그리고 그 시곗바늘 위에는 사람이 서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바닷속이 얼마나 깊을지, 혹시 날카롭고 무시무시한 이빨을 가진 상어가 있진 않을지 사진 속 캄캄한 바다처럼 나에게 미래는 언제나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러나 시곗바늘에 잘 매달려있다 보면, 결국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떤 시간을 맞이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영원히 물에 잠길 수도 태양과 손을 잡고 수면 위로 나란히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6. 작업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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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요한슨의 스케치>


전시 끝자락에서 에릭 요한슨이 작품을 구상할 때 그렸던 스케치를 볼 수 있었다. 작품에 비해 스케치는 훨씬 간단해서 의외였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던 그였지만, 그림은 시간이 많이 걸릴 뿐만 아니라 그의 생각을 정확히 표현해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내가 글을 쓰기 전에 단어들을 나열해 놓는 것처럼, 그 단어들로 문장을 만드는 것처럼 그에게 스케치는 메모였다.


KakaoTalk_20190729_202428506_15 - 복사본.jpg
<실제 작업실과 비슷하게 재현해놓은 스튜디오>


그가 만드는 작품만큼이나 그의 공간은 정갈하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책상 위에는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그 배경이 되는 지구본이, 벽에는 작품을 구상하는 데 도움이 되는 스케치들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벽의 한쪽에는 폴라로이드 사진기로 찍은 예술의 전당 직원들 사진이 잔뜩 붙어있었는데, 에릭 요한슨은 자신의 스튜디오를 방문한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애정을 잔뜩 담아 사진을 남긴다고 했다. 잔뜩 붙어 있는 폴라로이드 사진들은 그의 마음이 따뜻하고 순수함을 보여주었다.



평일 오전이었는데도 사람이 정말 많았다. 그래서 걱정스러웠다. '전시를 관람하고 리뷰를 쓰려면, 꼼꼼히 보고 많이 느껴야 할 텐데...' 특히나 초현실주의 사진작가라고 하기에 작품이 많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전시장에 들어가니, 그런 무거운 마음 필요 없이 편한 마음으로 관람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 이유는 초현실적인 그의 작품들이 어딘가 모르게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를 제한시키는 모든 것은

우리의 상상력입니다"



그의 말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 말인지에 대해 느끼게 된 전시였다. 초현실을 현실로 끌어오는 방법은 결국엔 상상력이었다. 무언가를 실현시키는 것은 그것에 대해서 얼마나 내 머릿속에 철저히 계획하고 구상하고 있는지에 따라 달려있었다.





에릭 요한슨 사진展

Impossible is Possible


 

전시기간
2019년 6월 5일(수) ~ 2019년 9월 15일(일)

시간: 11:00 ~ 20:00 

(입장마감: 오후 7시 20분)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 휴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 7전시실

(지하1층 로비)


관람료

성인(만 19세~64세) 12,000원

청소년 (만 13세~18세) 10,000원

어린이(36개월 이상~만 12세) 8,000원

 

주최/주관: 주식회사 씨씨오씨


*
tip
오디오북(3,000원)을 대여하면
전시를 더 풍부하게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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