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일상을 예리하게 관찰하는 시선 [도서]

한국 문학 평론의 독보적 존재, 김현의 산문집
글 입력 2019.07.27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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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문학은 삶을 긍정시키기 위해

삶을 분석하고 부정하는 문학이다."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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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옥같은 시인선 시리즈로 유명한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간된 새 산문 시리즈 문지 에크리. 이번에 읽어보게 된 도서는 문학평론가 김현의 <사라짐, 맺힘>이었다. 한국 소설을 읽거나 시집을 읽을 때 익히 보았던 이름이었지만 그의 글을 읽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불어 불문을 전공하고 문학평론가 및 교수로 활동하였던 그는 한국의 여러 문학작품을 비평했고, 신인을 발굴하는데 힘쓰기도 했다. 기형도 시인의 시집 <입속의 검은 잎>을 만들고 해설한 이가 바로 김현이다.

그가 남긴 산문을 엮어 새로이 발간한 이 책은 그가 한국에서 살아가는 일상적인 순간부터 낯선 타지에서의 삶까지 고루 담고 있다. 그가 느낀 감정, 생각, 고민은 글 속에 생생히 녹아들어 있다.



일상을 예리하게 관찰하는 시선




"직업이 다르고, 나이가 다르고, 얼굴의 형태가 달라도 거주 공간이 같으면 성격이 비슷해지게 마련인 모양이었다. 나도 내 아내도 옆집 사람들과 갚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고 듣고, 같은 밑반찬을 준비하고, 같은 식의 음식을 만들고, 그래서 결국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가 바라보는 일상의 풍경은 어딘가 다르다. 문을 열고 방에 들어가고, 아파트에서 살아가고, 다듬어지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을 걷는 일은 모두 우리가 익숙하게 마주하는 풍경이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예리하고도 날카롭다. 텅 빈 방 안에서 공허를 발견하고, 아무런 개성 없이 무미건조하게 지어진 아파트의 모습에서 획일화된 현대인의 삶을 본다. 끊임없이 질문과 의문을 던지고 우리를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다. 평소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순간에 그는 의문을 던지고, 우리를 각성시킨다.



프랑스 유학 생활




"모르는 사람들 틈에 있고 싶다. 매일 나무 우거진 공원길을 산보하고 싶다. 오후 7시면 카페에 나가 모르는 사람들 틈에 끼어 맥주를 마신다. 그래 네가 그토록 원하던 모든 것을 이제는 할 수 있다. 그러니 행복한가?"



그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유학하였다. 이 시기 경험했던 일과 느꼈던 감정은 고스란히 글에 녹아져 있다. 요즘은 여름휴가를 해외로 떠날 만큼 외국과의 경계가 희미해졌는데, 그가 떠났던 1970년대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았다. 한국과 사뭇 다른 그곳의 삶은 그를 계속 생각하고 고뇌하게 만들었고, 글을 쓰도록 만들었다. 비록 그것이 자신에겐 부끄러운 글일지라도.


"프랑스의 지적 힘은 사회의 한구석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구석의 일로만 남겨두지 않고, 그것의 사회의 문제로 확대시키는 데 있다."



불문학도인 김현은 역시 예리하게 관찰한 프랑스의 모습을 열심히 기록했다. 또한 프랑스 문인들에 대한 사랑도 엿볼 수 있는데, 그는 자신이 사랑한 작가인 보들레르, 발자크가 잠들어 있는 묘지를 찾아 여행하는 등 그들이 남긴 삶의 발자취를 밟는다. "정말로 나의 절망을 우리의 절망을 너무 오래전에 미리 살아버린 나의 보들레르여" 같은 문장에선 그가 프랑스의 작가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느낄 수 있다.



"그는 그 자신이 고통의 기록이며 동시에 고통인 예술가 중의 하나이다. 자신의 고통을 관찰하면서 자신을 고통 그 자체로 묘사한다는 그 힘든 일을 그는 해낸 것이다. (고흐 中)"



그는 프랑스 외에도 많은 도시를 여행한다. 파리에서는 드가와 로댕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선 고흐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선 가우디를 만난다. 화가들이 남긴 작품을 감상하며 그는 삶이란 무엇인지, 예술이 우리에게 무슨 말을 건네고 싶어 하는지 귀 기울이고 생각한다.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새 눈앞에 거장들의 작품이 생생히 그려지는 듯하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




"결핍을 사랑한다는 것은 세계에 의미를 주려고 애를 쓴다는 것이다."


"꿈을 꾸지 않는 자처럼 불행한 자는 없을 것이다. 삶이 활기를 띠는 것은 그 꿈의 불가능성 때문이다. 불가능성이야말로 건조한 현실에 알맞은 물기를 부여해주는 원료인 것이다."



또한 그는 우리가 쉽게 잊어버리고 마는 중요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바닷속에서 끊임없이 표류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이 되어가는 길이라며, 우리의 고통을 다독인다. 그러니 괜찮다고. 그의 문장들은 심장에 콕 박힌다. 불안과 걱정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만든다.


김현이 자신의 제자에게 남긴 편지에는 "고독하다는 것은 그리 절망적인 것은 아니리라 생각하오. 중요한 것은 산다는 것! 그리고 산다는 것이 작가에게는 말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깨닫는 일이 아닌가 하오” 라는 문장이 있다. 48세의 이른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그이지만, 그가 남긴 글에선 그 누구보다 단단하고 겸허했던 삶에 대한 태도를 느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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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평론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인 김현의 산문집. 그는 일상과 낯섬을 오가며 끊임없이 생각하고 사유했다. 처음엔 그의 문체가 낯설어 쉽게 읽히지 않았지만, 페이지를 넘겨갈수록 그의 문장들은 내게 쿡쿡 박혔다.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문장들이 끝없이 늘어났다.


그가 지닌 특유의 예리하고도 섬세한 시선이 고스란히 담긴 산문집이다. '김현'이라는 한 사람과 가까워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평론가의 시선을 엿보며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가 세상에 남긴 수많은 글이 더욱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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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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