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색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도서]

올리버 색스의 미크로네시아 여행기
글 입력 2019.07.2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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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맹의 섬』은 정신의학자인 올리버 색슨이 색맹 환자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한 미크로네시아 여행의 기록이다. 정신의학자, 색맹, 미크로네시아 여행기라는 다소 묘한 조합이 이야기를 진전시키고 서사적 긴장감과 역동성을 부여하여 독자들이 낯선 세계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색맹의 섬』은 사실 두 편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1부는 전색맹 환자의 사회를 탐구하기 위해 핀지랩과 폰페이를 방문한 이야기이고, 2부는 괌과 로타에서 신경퇴행성 질환을 관찰한 기록이다. 미크로네시아를 찾은 독립적인 두 차례의 경험을 한 책으로 엮은 것인데, 본 오피니언에서는 논의의 대상을 구체화하기 위해 1부의 이야기, 즉 색맹의 섬들을 탐험한 이야기만을 다루기로 한다. 

저자 올리버 색스는 저명한 정신과 의사이자 교수이다. 그의 대표저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국내에서도 유명하며, 다양한 신경질환을 소개하고 그 환자들의 고충, 사회적 역할과 위치, 일상생활에 대해 탁월한 통찰을 제시하였다. 이렇듯 그는 정신의학계의 전문적인 지식을 대중에게 쉽게 풀어내 설명하기도 하며 정신질환과 관련된 일반적인 오해와 편견을 해소하며 대중의학자로서 훌륭한 면모를 보인다. 한편 해외에서는 문학적인 묘사를 바탕으로 하는 그의 수려한 문장력이 크게 주목받았으며 그의 글들은 인문학적인 에세이로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의 아름다운 문장들은 『색맹의 섬』에서도 빛이 나며 독자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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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색맹의 섬』은 색맹과 색맹 사회에 대한 이야기라서, 일단은 ‘색’과  ‘색을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인간이 눈으로 빛을 볼 때, 망막에서 빛을 수용하는 시각세포는 두 가지이다. 밝기를 인식하는 막대세포와 색을 인식하는 원뿔세포. 정상적인 시각의 사람이라면 어떤 장면을 포착했을 때 망막에 맺힌 상(像)을 막대세포와 원뿔세포로 인식하고, 시각세포들이 파악한 밝기와 색을 바탕으로 뇌에서 이미지를 재조합하여 우리가 비로소 하나의 장면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미술용어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막대세포가 인식한 명도와 원뿔세포가 인식한 채도를 뇌에서 조합해 하나의 완성된 장면을 그려낸다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전색맹환자는 두 가지 시각세포 중에서 원뿔세포가 전혀 기능을 하지 못해 색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 세계의 모든 장면을 흑백으로만, 즉 명도로만 구분할 수 있다. 명도-채도 구조에서 같은 명도인 색들은 그들에 눈에 모두 똑같이 보인다. 말하자면, 파랑, 노랑, 빨강이 모두 같은 명도라면 그들의 눈에는 구분이 안되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명도가 같은 색깔의 옷들로만 코디를 해서 입는다면 – 패션 쪽에서 말하는 소위 ‘톤인톤(tone-in-tone)’ 코디를 한다면 – 이들에게는 전신을 같은 색으로 입은 것처럼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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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도와 채도를 도식화한 그림이다.
중심축을 기준으로 같은 높이에 있는 색은
모두 명도가 같은 색들이다.
이 도식에서 같은 수평면에 있는 색은
전색맹환자에게 모두 같은 색으로 보일 것이다.


올리버 색스가 방문한 미크로네시아의 섬들, 핀지랩과 폰페이는 이런 전색맹환자가 전체 인구의 약 10%를 차지하는 사회이다. 올리버 색스 일행(올리버 색스와 안과의사 봅, 그리고 노르웨이의 생리학자이자 본인 역시 전색맹인 크누트)은 섬의 색맹들이 있는 공간인 가정이나 학교 등을 방문하며 그들의 일상을 관찰하고 그들과 대화하며 그들의 삶에 대해 알아간다. 이들 섬에서는 색맹환자들을 마스쿤(이들의 토착 언어로 ‘안 보인다’는 뜻이다)이라고 부른다. 마스쿤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적인 문제를 겪는다. 칠판의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 글을 깨치지 못하기도 하며, 자식에게 마스쿤이 유전될 가능성 때문에 짝을 만나 결혼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이들의 증언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사실은 일반적인 편견과는 다르게 그들도 나름의 다채로운 세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비색맹이 느끼는 시각적인 아름다움과는 영역이 다르지만, 그들 역시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인식하고 있다.


크누트는 돼지만이 아니라 풍요로운 식물군에도 매료되었는데, 식물종들은 우리 일행 가운데 누구보다도 그의 눈에 선명하게 보였을 것이다. 우리 비색맹들의 눈에는 그저 얼룩덜룩한 녹색일 뿐이었지만, 크누트에게는 쉽사리 식별하고 알아볼 수 있는 다채로운 밝기와 색조, 모양, 질감의 혼성물이었다. 크누트가 제임스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제임스는 자기한테도 그렇다고, 이 섬의 색맹 주민 모두가 그렇다고 말했다. - p.59


여인은 깜깜한 오두막 안에서 섬세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환한 바깥에 있다가 그 안에 들어갔더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반면에 크누트는 이중 색안경을 벗었고, 이 섬에서 여기보다 눈이 편안한 곳은 없다고 그랬다. 우리는 점차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독특한 빛을 지닌 여인의 작품을 볼 수 있었고, 그 정교한 무늬들이 서로 다른 밝기로 구성돼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깔개 한 장을 환한 밖으로 갖고 나오자 그 아름다운 무늬들이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 p.77



길가에 놓인 흔한 잡초가 이들에게는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고, 이들은 빛이 없는 곳에서만 아름다울 수 있는 독특한 무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심지어 비색맹이 색으로 바나나가 익었는지 판단하듯이 연두색 바나나와 노란색 바나나를 구분하기 어려운 이들도 나름의 판별법으로 바나나가 익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결국 그들의 눈에는 오히려 명과 암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는 것이며, 색을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 질감이나 움직임에 대한 지각력이 강화된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본인 고유의 생활을 만족스럽게 영위한다. 심지어 일행 중 한명인 안과의사 봅이 섬의 색맹환자들을 돕기 위해 색맹 선글라스를 나눠주었을 때, 팔십대 할머니 한명은 그것을 사용하길 거부했다. 한 평생 본인이 구축한 세상의 아름다움이 선글라스 하나로 부정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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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색스의 묘사는 낯설고 이질적인 장면들에 대해 독자가 거리감을 느끼지 않고 더욱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여행 과정에서 이국적인 장면에 대한 풍경을 묘사하거나 인물들의 대화에서 나타나는 감정을 묘사할 때 색스의 문장이 진가를 드러낸다.


아침 여섯 시, 바람 한 점 없이 멈춰 있는 공기는 우리의 기운을 다 빨아들일 듯이 뜨겁지만 섬사람들의 일상은 벌써 시작되었다. 돼지들은 비명을 질러대며 덤불 속으로 달려들고, 토란과 생선 요리 익는 냄새, 끝이 갈라지는 야자와 바나나 이파리로 지붕을 수리하는 사람들, 핀지랩 주민들은 이렇게 새날을 맞이한다. - p.70


우리 일행에는 십 대 소년 둘이 있고, 한 아이는 색맹이다. 이제 둘이 잠수 장비를 입고 마스크를 쓰고 작살과 손전등을 들고 뱃전에서 물로 뛰어들었다. 배에서 200미터 넘게 멀어졌는데도 아이들이 보였다. 파랗게 빛나는 물속에 비치는 두 소년의 몸놀림의 윤곽은 마치 반짝이는 물고기 같았다. 두 소년은 10분 뒤에 물고기가 꽂힌 작살을 들고 배에 올라탔다. 물에 젖은 잠수 장비가 달빛을 받아 검게 반짝였다. - p.93



이 외에도 그의 일행 중에서 색맹인 크누트가 미크로네시아 색맹환자들과 나누는 인간적인 교류 역시 색스의 문장에서 실감나게 묘사된다. 이중 선글라스의 크누트와 검은 두건의 핀지랩 소년이 서로가 색맹인 걸 한눈에 알아차리는 그 찰나의 장면이라든가, 크누트가 색맹인 어부 조합장에게 자신의 외알 망원경을 즉석에서 선물로 줄 때의 표정 같은 것들이 굉장히 아름답게 나타나 독자의 심금을 울린다.

이러한 부분에서 저자가 타인의 감성을 포착하는 감각이 잘 드러나는데, 일반적인 인문학서적에서 – 특히 과학적인 설명을 동반해야하는 글의 경우 – 명확하지 않은 감정을 구체화시키는 것은 반드시 위험이 따른다. 글의 소재가 가지는 장르의 무거움을 무릅쓰고 올리버 색스는 자신의 문학적 감각을 바탕으로 생동감 넘치는 글로 독자에게 다가간다. 이러한 부분에서 『색맹의 섬』이 가진 진가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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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차적으로 삽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문학적인 성격이 있는 글에 그림이 삽입돼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문학적으로 훌륭한 서술은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머릿속에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다. 흰 종이에 검은 활자로만 이뤄져 있어도 다른 시각 예술 장르들 못지 않게 생생한 장면을 불러일으켜 예술적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문학의 매력이다. 그래서 『색맹의 섬』의 훌륭한 문장들에는 그림이 없는 편이 나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알마 출판사에서 2015년도에 출간한 『색맹의 섬』에서 등장하는 삽화는 독자의 상상을 최소한으로 침범해 꽤 적절하게 느껴졌다. 본 책에서 삽화는 굉장히 투박한 선들로 이루어져 있어 낙서 같은 느낌을 준다. 미크로네시아의 이국적인 풍경과 문화는 한국의 독자가 경험해 보기 힘든 것들이고 본문에서 사용되는 “마상이”, “빵나무”와 같은 것들을 독자들이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데, 다양한 삽화들 모두 하나같이 추상적인 느낌을 전달하고 상상을 구체화하는 몫은 독자들에게 남겨두었다.

『색맹의 섬』의 삽화는 일러스트레이터 박선영이 맡았는데,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지상아와 새튼이』(문국진 著) 등에서도 왼손으로 그린 일러스트를 선보인 것으로 유명하다. 온른손잡이가 왼손으로 그린 그림은 더욱 거칠고 투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심한 표현을 포기한 대신, 훈련되지 않은 탓에 자유로운 선의 느낌을 최대한 살린 일러스트가 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추상적이고 자유분방한 선들이 『색맹의 섬』에 나타나는 미지의 세계를 더욱 신비롭게 전달해 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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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적으로 전색맹 인구가 많은 섬들에 대한 올리버 색스의 탐험기는 미처 알지 못한 세계와 대상을 독자가 보다 깊게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나의 오피니언에는 미처 담지 못한 색맹들의 신화와 역사, 토착 문화 등, ‘색맹의 인문학’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즐거움이 『색맹의 섬』에 담겨 있다. 한 인간으로서의 운명과 고통을 감수하며, 주류 사회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마스쿤의 모습을 통해,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독자들이 스스로의 생활과 고통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 역시 누리기를 바란다.

한편 올리버 색스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신의 인문학적 고찰을 책으로 펴내었다. 본인의 본래 직업을 살려 신경장애 환자들을 관찰하며 집필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평소 식물을 관찰하는 데 흥미가 많은 작가가 멕시코에서 양치식물을 탐사하며 쓴 『올리버 색스의 오악사카 저널』 등 흥미로운 저서가 많다. 낯선 대상, 낯선 세계에 대한 관찰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풀어낸 올리버 색스의 다양한 기록들 역시 경험해보기를 추천한다.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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