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의 힘 - 연극 "달랑 한 줄" [공연]
글 입력 2019.07.22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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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조신해야 한다, 세상이 위험하니 여자가 일찍 다녀야지, 여자가 기가 세서 어디에 써 먹느냐… 세상에는 듣기 괴로울 정도로 불편한 달랑 한 줄이 너무나도 많다. 고작 한 문장이라고 치부해 넘기기에는 말의 힘이란 게 참 무섭다.혹은 무섭도록 진부해져 힘을 가졌기에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한 줄이 되었을 거다. 그런 견고한 한 문장에 맞서 더 나은 세상으로의 변화를 소리치는 네 여자의 이야기. 연극 <달랑 한 줄>이다.
남편의 미운 말 한 마디가 싫은 여자, 불평등한 교칙 한 줄에 반기를 드는 여자, 상사의 불쾌한 농담 한마디를 꾹꾹 참는 여자, 책 속의 문장 한 줄을 바꾸려는 여자. 네 여자가 바꾸고 싶었던 ‘달랑’ 한 줄.
제 2회 페미니즘 연극제의 주제는 ‘연대’다. 연극 <달랑 한 줄>을 한 단어로 정의 해야 한대도 역시 ‘연대’라는 단어를 들 수 있겠다.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가 세상을 바꾸지는 문장에서 방점이 찍히는 것은 어쩌면 변화보다도 우리다.여기서 우리는 누구일까? 우리라는 단어는 때로는 사람들을 한데 묶어주기도 하지만 한편 너희와 우리를 가르는 선이 되기도 한다. 연극 <달랑 한 줄>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때때로 우리가 상상하는 변화의 주체인 ‘우리’에 누군가는 배제되고는 한다. 바로 우리보다 앞서 세상을 살아온 기성세대들이 아닐까.연습사진연실은 종종 우리가 우리 속에서 잊어버리곤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가끔은 페미니즘 운동이라는 단어에서 2,30대의 젊은 여성이나,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만을 떠올리게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극 중의 두 딸인 현주와 은주의 엄마인 연실은 얼핏 그 단어와 매치가 잘 되지 않는다.결혼을 하였고, 가부장제의 산물을 그대로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나이 든 여성.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고, 여자가, 로 시작하는 수많은 혐오의 문장들을 재생산하는 그런 사람. 하지만 딸을 향해 엄마가 몰라서 그런 말을 했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모습이나, 그 오랜 시간 살아온 세상을 낯설게 느끼며 답답해하는 그 모습에서 나의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불과 5년 전, 10년 전과 비교해 생각해 보면 정말 세상이 참 낯설다. 그리고 나도 낯설다. 알지 못하였던 수년 전의 시절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각없이 잘못된 제도의 흐름대로 살아왔고, 나 역시 그랬으니까. 명희의 말대로, 제도가 사람을 가해자나 피해자로, 또는 둘 다로 만든다.(마찬가지로 명희의 말대로, 그렇다고 해서 가해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연습사진알게 된 후 어색하게나마, 조심스럽게나마 변화를 위해 행동하는 연실처럼, 모두가 알게 된 후 움직인다. 연실과 같은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그 사실이 지워진 채 종종 가해자의 일면만이 그려지고는 한다.그런 그들이 우리가 잊고 있었던 또 다른 우리여서였을까? 비록 처음에는 생각처럼 당당하지는 못했지만, 가장 먼저 불편한 말 한마디를 바꾸기 위해 시위를 시작한 인물들이 기성세대로 칭해지는 명희와 연실인 점이 나는 좋았다.도대체 왜 시위와 같은 위험한 해동을 하느냐며, 그저 가진 것에 만족하고 조용히 살자는 은주의 말에, 우리가 바뀌어야 너희도 바뀌지 않겠느냐 말하는 연실의 모습이, 더 이상 가정주부라는 말없이 자신의 이름 세글자를 이야기하는 연실의 모습이, 그리고 스스로 변화했을 뿐 아니라 변화를 이끌어가는 사람이 된 연실의 모습이 가장 감동적이고 희망적이었다.*결혼 후 가정주부로 살며 가부장제를 답습하던 연실, 번역가로 일하며 가부장제의 문제를 인식하고는 있었으나 마지막에는 늘 도망치기만 하던 연실의 친구 명희, 이제 막 사회로 뛰어들어 자신 개인이 겪을 불이익을 두려워하는 은주, 그리고 남학생과 여학생을 차별하는 학교의 방침에 거리낌 없이 분노하고 반항하는 고등학생 현주까지. 연극 <달랑 한 줄>에는 서로 다른 환경 속의 서로 다른 네 인물 간의 있을 법한 갈등을 그려낸다.지금 현실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와 비슷한 갈등을 겪고 있을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어느 정도씩은 전부 그 네 사람의 모습을 닮았다. 그리고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그토록 달라 보였던 그 네 사람이 더 이상 바꾸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자는, 지금의 불평등한 세상을 바꾸자는 표어 아래 우리라는 이름으로 모인다는 점이다.우리가 연대하면 불편한 그 한 문장을 바꿀 수 있고, 나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연극 <달랑 한 줄>은 부모님과 함께 보았으면 더욱 좋았을 그런 작품이었다.[김민혜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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