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썰썰] 누군가에게 절대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은

강아지의 세상
글 입력 2019.06.23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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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절대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지금 내 옆에 잠들어 있는 우리집 막내 녀석을 보며 그런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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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11살이 된 우리집 막내, 이름은 애니. 강아지다. 사람 나이로는 60대이지만 여전히 우리집에선 막내이다. 이 녀석은 내가 없인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출근 전 채워 놓은 밥그릇과 간식 담요 또한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러다 내가 집에 들어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대소변을 본다. 집을 비우는 시간 동안 생리현상마저 참는 것이다. 그럼 애니는 그 시간 동안 무얼 하냐고? 잠만 잔다. 쭉. 나와 동생이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그러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어슬렁어슬렁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빼꼼 내민다. 실시간으로 집안을 볼 수 있는 홈캠을 달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은 낯설지 않은 광경일 수도 있다. 분리불안이 심한 강아지가 보호자와 떨어지면 애니처럼 아무것도 먹지 않거나 대소변을 참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분리불안장애는 애착 대상으로부터 분리될 때 혹은 분리될 것으로 예상할 때 느끼는 불안의 정도가 심하고 지속적인 경우를 말한다. 지나치게 밀착된 주인으로부터 과하게 보호를 받거나 주인을 너무 의존하면 흔히 나타난다. 분리불안이 심한 강아지는 주인이 없는 집안에서 울거나 하울링을 하는 등 이웃에게 피해를 끼치기도 한다. 나 또한 홈캠을 설치하기 전엔 이 부분을 걱정했는데 그게 아녀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종일 굶거나 생리현상을 참는 것도 만만치 않은 분리불안 증세라고 한다.

혼자 남겨지는 기분이 어떻기에 입맛도 사라지는 걸까. 게다가 장장 열시간이 넘게 배변 욕구를 참는 것은 어떤 심정이기에. 한 번도 비슷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어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아주 갓난아기일 때 엄마에게 그런 감정을 느꼈겠지만 그건 기억이 나지 않으니 패스.

수명이 짧고 체감 시간이 긴 강아지의 1일은 인간으로 따지면 4~5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반나절은 이틀 정도 되겠다. 주인이 집을 비운 반나절 동안 강아지는 이틀이라는 긴 체감시간을 홀로 보내게 된다. 마음 같아서는 일이고 뭐고 때려치우고 종일 강아지와 함께 있고 싶은데 생계를 위해선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내가 죄책감을 느끼고 자책한다 해도 애니는 언제나 내게 맹목적이다. 내 탓을 하지 않는다. 그저 언제든 집에만 오기만 하면 좋다고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며 현관 앞으로 달려 나올 뿐.

누군가에게 절대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은 참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무서운 일이다. 그 애정만큼 내가 짊어져야 할 무게가 만만치 않다. 내 시간이 없어지는 순간도 자주 찾아온다. 그에게 내가 절대적일수록 나도 그에게 헌신해야 이 관계가 순탄히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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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은 종종 내게 '육견 우울증'이 아니냐 묻는다. 엄마가 갓난아이를 돌볼 때 느끼는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까지 겪는 ‘육아 우울증’에 빗댄 말이다. 그들이 보기엔 내가 애니를 돌보면서 힘들어하고 피곤해하는 게 그렇게 해석되었나 보다. 아무리 그래도 육견 우울증이라니. 처음엔 웃고 넘겼지만, 근래 들어 그 말이 자꾸 생각난다.

애니의 자궁축농증 수술이 있던 얼마 전, 나는 부쩍 힘든 티를 숨기지 못했다. 일까지 바빠진 터라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랐다. 퇴근 후 곧바로 집으로 향하는 나에게 친구들은 '애니 때문에' 힘들겠다는 말을 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남들처럼 퇴근 후에 약속을 잡거나 영화를 보거나 쇼핑을 하거나 하다못해 맥주 한 캔과 밤공기를 마시는 일은 꿈도 꿀 수 없다. 집에는 온종일 주인만 기다리는 강아지가 언제쯤 올까, 현관문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집에 가면 편히 쉬느냐, 그것도 아니다. 산책을 해야 한다. 그것도 하루에 두 번. 출근 전 아침에, 퇴근 후 저녁에. 너무 피곤한 날은 아침 산책을 거른다. 그러면 오늘은 안 나가냐는 애니의 절절한 눈빛이 근무 중 자꾸만 떠올라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애니의 뒤치다꺼리를 끝낸 자정이 되어서야 내 일을 하는데, 그마저도 너무 피곤해서 잠들어 버리기 일쑤다. 심야 영화나 외박은 야근에 시달리는 동생이 어쩌다 한번 나보다 일찍 집에 들어가면 그제야 생각할 일이다. 숨이 막혀서 어떻게 사냐고? 그런데 나는 오히려 애니에게 미안하다.

나의 피로는 애니 때문이 아니라 '애니가 힘들까 봐’라는 걱정에서 온다. 나는 어찌 됐든 밖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돈을 벌기 위해 활동을 하지만 집안에 홀로 남겨진 강아지는 할 게 없다. 그 시간은 여간 지루한 게 아니다. 가끔 홈캠에 접속해 아이의 행동을 관찰할 때면 마음이 더 짠해진다. 애니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어떤 것도 관심 가지지 않는다. 그저 주인이 언제 오는지만 기다리는 잠만보처럼 잠만 잔다. 그 모습을 보면 밖에서 피곤하더라도 집에 돌아가서는 산책을 하게 되고 남은 힘까지 짜내어 놀아주게 된다. 그게 누군가를 책임지는 보호자의 의무이고 종일 혼자 있을 아이에게 표현하는 미안함이다. 아무리 내가 지치고 힘들어도 온종일 집에서 나만 기다릴 애니보다야 덜 지루하고 덜 슬프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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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최애를 만남. (애니의 최애는 아빠다)


애니의 자궁 축농증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애니를 입원시킨 다음날 면회를 갔는데, 내 얼굴을 보자마자 난리가 날 거란 예상이 정확히 빗나갔다. 반가워하기는커녕 제대로 삐진 것이다. 왜 날 두고 갔냐는 눈빛이었다. 다시금 아이를 떼어 수의사님에게 맡기고 뒤도는데 순간 감정이 복받쳤다. 영문도 모른 채 남겨질 또 하나의 밤이 얼마나 무섭고 슬플까. 차마 뒤돌아보지 못하고 병원을 나섰다. 왜 나를 데려가지 않냐는 그 눈빛을 마주하기가 두려웠던 것 같다. 그때 처음으로 애니와 나의 차이를 느꼈다. 나는 애니를 병원에 맡기고 돌아서서 친구를 만나면 그만이지만, 애니는 밤새도록 제가 버려진 것이 아닌지 끊임없이 두려워했을 테다. 그런 생각이 이어지니 나의 애정이 애니가 내게 가지는 감정에 비하면 초라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세상은 너무 크고 다양한데 그 아이의 세상은 오직 나일 뿐이니.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엄마는 내가 강아지에게 쏟는 정성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따금 네가 애니를 생각하는 만큼 엄마도 좀 생각해보라며 서운함을 표한다. 그럴 때마다 내게도 일말의 변명은 있다. 어느 한구석에 숨 쉴 구멍이라도 있는 인간과 다르게 강아지에게는 주인이 전부라는, 이보다 더 사실일 수 없는 사실. 나는 그런 존재가 되었음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그래서 이 아이의 짧은 삶, 모든 순간을 함께 있어 주고 눈에 담아야 함을 그에게 설명한다. 물론 씨알도 안 먹히는 것 같지만.

내 삶이 없을 만큼 애니에게 헌신하는 것 같지만, 바꿔 말하면 내 삶이 곧 애니이다. 애니를 돌보고 애니를 예뻐하는 모든 순간도 내 것의 연속이고 나는 그것이 보람차다. 자유롭지 못해 힘들지 않느냐 묻는다면 왜 그렇지 않겠나. 나도 사람이기에 산책이 귀찮고 퇴근 후에 친구들과 놀고 싶다. 하지만 내가 이 아이에게 차지하는 의미는 심야영화나 맥주 한캔에 비교할 수 없다. 어느 순간 나는 애니의 세상이 되었다.



절대적 絕對的

1. 아무런 조건이나 제약이 붙지 아니하는. 또는 그런 것.

2. 비교하거나 상대될 만한 것이 없는. 또는 그런 것.


강아지와 함께 사는 것은 평생 3~4살 아기를 키우는 것과 같다고들 한다. 그러나 언젠가 자립하는 사람과는 달리 강아지에게 자립이란 없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주인의 손길이 더 필요하다. 그 정성에 감응하듯 강아지는 명을 달리하는 순간에도 오로지 주인만 바라본다. 이렇게까지 좋아할 일인가 싶을 정도로 헌신적이다. 어쩌면 강아지에게 주인은 법이자 종교, 신처럼 어길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이지 않을까. 나는 그 사랑이 너무 신기하고 벅차다. 그래서 내 존재의 무게를 잊지 않고자 더 열렬히 사랑하겠노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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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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