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마르셀 뒤샹展>

진정으로 자유로웠던, 예술가 아닌 예술가
글 입력 2019.06.22 23:1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여러분 모두 6월 한 달 잘 마무리하셨나요? 2019년 한 해도 벌써 반이나 지나가고 점점 더워지고 있는 요즈음입니다! 그리고 대학생 분들은 방학을 맞이하며 학교 밖 세상을 즐기고 계실 텐데요, 제가 오늘 소개드릴 전시회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마르셀 뒤샹展>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문화가 있는 날과 협력하는 기관으로, 본래 통합관람권을 4000원에 판매 중이지만 매주 마지막 주 수요일에는 무료로 입장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생 분들의 경우, 학생증을 지참하시면 언제나 무료로 관람이 가능합니다.


뒤샹은 피카소와 더불어 20세기의 가장 혁신적인 작가로 손꼽히는 인물입니다. 우리 모두들 어릴 적 미술 교과서에서 <샘>이라는 작품을 접한 적이 있으실 거예요. <샘>은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기성품 변기에 가명으로 서명해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으로, 오늘날에도 우리들에게 충격과 신선함을 안겨 주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반면, ‘뒤샹’이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이 작품만 떠오르는 게 현실이기도 해요. ‘저게 무슨 예술이야?’ ‘저건 나도 하겠다.’라는 생각을 항상 해 오셨다면, 이번 전시회가 적격일 것 같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이번 전시에는 <샘>을 비롯해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독신자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혹은 <자전거 바퀴> 등의 대작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쉽게 접할 수 없었던 그의 초기작까지도 전시하고 있어 뒤샹의 작품세계를 훑기에 좋은 전시입니다!



141.jpg



마르셀 뒤샹은 1887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당시 격변하던 미술계의 흐름 속에서 영향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뒤샹이 청년기를 보냈던 시기는 사실주의, 인상주의, 입체주의 등 수많은 미술사조들이 탄생하고 이전까지 굳건히 자리하고 있었던 회화의 틀에는 서서히 금이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뒤샹의 청소년 시절의 작품을 보면 이때의 영향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지요. 그가 어릴 적 그린 가족들의 초상은 강렬하면서도 다채로우며 생동감 넘치는 붓터치가 우리의 눈길을 붙잡고 있는데, 이는 후기인상파의 대표적인 특징이지요. 캡션에서도 ‘세잔 스타일’이라고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뒤샹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죠?



161.jpg



그런데 뒤샹은 파리의 입체파 그룹과 교류하며 새로운 양식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입체파와 미래파의 특징은 한 작품 안에 여러 가지의 시점, 즉 다시점이 존재한다는 점인데요, 뒤샹 역시 이 방식을 차용해 대상의 움직임을 하나의 캔버스에 조각조각 분할해 그리는 스타일을 시도하게 됩니다. 그 대표작이 뒤샹의 기념비적인 작품,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o.2)입니다! 개인적으로 작년 전공 수업 때 비중 있게 다루었던 작품이라 기억에 남는 그림인데 실제로 눈앞에 마주하니 그 위용이 남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스크린으로 볼 때에는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모습을 읽어내기보다는 교수님의 수업 내용을 필기하기에 바빴는데, 눈앞에서 작품을 지켜보다 보니 한 여인이 계단을 걸어내려오는 모습을 생생히 그려낼 수 있었습니다.

   

이후 뒤샹은 미국으로 떠나 뉴욕 다다의 초기 멤버가 됩니다. 다다(Dada)란 현재까지도 유래를 분명히 알 수 없는 단어인데, 그만큼 다다이즘이 추구하는 방향은 기존 예술을 도발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죠? 그렇다면 다다는 왜 탄생했을까요? 20세기 초반,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비이성적이고 잔인한 인간들의 모습에 유럽의 예술가들은 일종의 슬럼프에 빠지게 됩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추구했던 예술의 방향성은 지금의 현실에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이지요. 그리고 몇몇 예술가들은 이전까지의 예술의 개념을 파괴하고 미술사상 최초의 반예술 운동을 벌이게 됩니다. 그들은 전통적인 예술의 규칙과 논리, 질서와 조화, 미의 개념 등을 비판하며 부조리, 허무, 모순 등을 통한 생산 활동을 시작합니다. 다다 운동은 뉴욕뿐만 아니라 취리히, 쾰른, 하노버 등 유럽 각지에서 일어났지요.



151.jpg



그 과정에서 등장한 작품이 <샘>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서명한 변기로 보기에는 많은 의미와 의도를 지니고 있어요. 이전까지 예술작품에서 요구되던 ‘작가만의 손길’, ‘작품의 유일성’, ‘이성과 아름다움’ 등을 전부 타파한 작품이지요. 이때부터 작가의 손길보다 작품을 만들기까지 필요한 작가의 ‘아이디어’를 중시하는 태도가 생겨납니다. 또한 <샘>은 전 세계에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에요. 뒤샹의 승인을 받아 세계 곳곳에 같은 작품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원조의 <샘>은 존재하지 않아요. 지금 존재하는 <샘>들은 오리지널 작품의 사진을 참고해 하나하나 정교하게 재현된 것들이랍니다. 원래 뒤샹은 수작업이 아닌 기성품 구입을 통해 작품을 제작해 기존 작품들의 오리지널리티를 부정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이렇듯 누구나 창조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레디메이드’ 작품들을 보다 보니, 최근 화두에 오르고 있는 예술계에서의 저작권법에 대한 논의가 떠오릅니다. 과거와 달리 현대미술 작품들은 그 속에 숨겨진 의미에 따라 작품의 목소리가 달라집니다. 하지만 그 의미와 관련 없이 작품의 형태, 주제, 묘사 방법까지도 겹치는 경우가 왕왕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이와 관련해서 작품 표절의 기준은 무엇인지, 작품 하나하나에도 저작권을 부여하는 것은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개념미술에도 그 기준이 천편일률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가 뜨겁게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작품의 외형만 보고 그 모방 여부를 판단할 수 있었던 과거와는 다르게, 한층 더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한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31.jpg



전시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서, 뒤샹은 독특하게도 ‘에로즈 셀라비’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여성의 자아를 만들어 작품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작품 세계에도 영향을 미친 체스 게임에 빠져 체스 챔피언 자리에 오르기도 했지요. 전시의 마지막에서 영상으로 소개되는 <에탕 도네>는 현재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영상과 다른 자료들로만 접할 수 있는데요, 이 작품은 대형 디오라마 작품으로 작은 구멍에 눈을 가져다 대면 그 안의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안의 풍경을 말하자면, 천장에서 비치는 자연광과 같은 조명 아래 폭포와 자연 풍경이 펼쳐져 있으며 바닥에는 여성 마네킹이 발가벗겨진 채 쓰러져 가스 램프를 들고 있습니다. 구멍에 눈을 바짝 들이대는 순간 마주하게 되는 이 장면은 외설적이고 충격적이지만 계속 지켜보게 만들지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관음증적인 시각으로 작품을 훔쳐보게 됩니다. 오늘날 현대미술계에서도 이러한 충격요법은 빈번히 사용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뒤샹이 예술계를 상대로 얼마나 도전적인 시도를 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가요? 저는 미술사 공부를 하면서도 뒤샹의 이름을 들으면 <샘>과 같은 레디메이드 작품만을 주로 떠올렸는데요, 이번 전시회에서는 오히려 <샘>보다도 다른 작품들이 더욱 인상에 남았던 것 같아요. 이번 전시를 관람하신 다른 분들도 뒤샹의 대표작을 생각하며 방문하셨다가 예상 밖으로 광범위했던 그의 작품세계를 접한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이번 전시는 4월 7일까지 진행되니 아직 방문하지 못하신 분들은 서둘러 다녀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전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전시들과는 달리 이번 전시는 촬영이 아쉽게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 점 덕분에 카메라를 손에서 내려놓고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일에 방문하시면 그렇게 붐비지 않으니 집중해서 즐기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껏 우리가 지니고 있었던 현대미술, 개념미술과의 거리감을 줄여 준 <마르셀 뒤샹展>. 국립현대미술관 본 전시장의 다음 전시가 기대될 정도로 흥미로운 전시회였습니다.



[유수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