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곱씹을수록 찝찝한

내가 <기생충>이 찝찝한 이유
글 입력 2019.06.22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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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봉준호 감독이 표현한 한국의 그림자를 좋아한다. 플란더스의개, 살인의추억,괴물, 마더.. 내가 본 그의 작품에는 항상 눈물이 날 정도로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의 단편적인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특히 괴물에서 그가 표현한 합동 분향소 씬은 영화가 개봉한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지금의 대한민국과 비교해봐도 달라진 점을 찾기 힘들 정도로 닮아있다.

 

그의 작품은 다소 블랙코미디적 요소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블랙코미디의 장르는 아니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 작품을 기대했다. <기생충>이 블랙코미디 서스펜스의 장르를 내건 만큼, 그의 능력이자 주특기를 십분 발산하겠구나 하고. 또한 황금 종려상 수상 전 공개된 포스터만으로도 심상치 않은 작품일 것이라 짐작했다.

 

극장에서 <기생충>을 보고 나온 나의 기분은 어땠던가. 마치 자려고 불을 끄면서 방구석에 나타난 바퀴벌레를 스치듯 발견한 상황 같다. 다시 불을 켜보니 바퀴벌레는 온데간데없어 내가 잘 못 본 건가 싶은 마음으로 불을 끄고 잠을 청하려 하지만 오지 않는… 그런 기분이었다.

 

사실 나도 왜 이렇게 그 기분을 묘사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구구절절 쓴 저 표현을 요약하자면 ‘찝찝했다’ 는 것이다. 찝찝하다 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개운하지 않고 무엇인가 마음에 걸리는 데가 있다’ 고 나온다.내가 왜 <기생충> 을 관람하며 찝찝한 감정을 느꼈는지 정리해보고자 한다.


 

*

이 글에는 줄거리를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들끼리 싸운다.



연이은 사업실패와 사채로 인해 전 집주인이 외국으로 떠난 사이에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남편 근세를 방공호에 숨기고 박사장의 집에서 가사 도우미로 일한 문광과 피자박스 접기로 하루하루 연명하던 기택의 가족은 박사장의 집을 차지하기 위해 싸운다.

 

반지하 집에 사는 기택의 가족들과 지하 방공호에 사는 문광 부부는 수직적 구조로만 본다면 같은 계층의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돈만 있으면 연교보다 본인이 더 착할 거라고 말했던 충숙은 취직 후 전보다 더 가지게 되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남편에게 식사를 넣어달라는 문광의 애원을 외면한다. 또한 계단 밑으로 굴러 떨어진 기우가 기택에게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목격하면서 그들의 영상을 찍은 문광은 말로 하자는 기우의 말을 무시한다. 몸싸움을 벌어지고 문광은 방공호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뇌진탕으로 죽고 만다. 근세가 기택의 가족에 대한 분노를 가지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두 가족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기우는 문광부부를 죽이기 위해 방공호로 내려갔다가 근세에게 수석으로 머리를 찍힌다. 기정은 정원으로 올라온 근세에게 칼을 맞아 죽고, 근세는 충숙에게 쇠꼬챙이로 공격당해 죽는다. 박사장을 칼로 찌른 기택은 살인자가 되어 감옥보다 못한 방공호로 숨어들어간다.

 

그들은 공존 할 수 없었을까? 문광은 기택의 가족과 협상하여 공존하려 한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기택의 가족의 약점을 잡은 순간 문광은 바로 그들을 위협하였다. 사실 공존이라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모순이다. 전원 백수였던 기택의 가족들은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 원래 있던 사람을 쫓아내고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박사장의 집에 들어왔다. 박사장네 가족들이 캠핑을 떠난 날, 거실에 둘러앉아 양주를 마시던 중 기택이 해고당한 윤 기사를 걱정하지만 기정은 내 걱정이나 해달라고 술주정을 한다.

 

그들은 더 이상 도망갈 ‘방공호’가 없다. 연이은 사업 실패로 휘청거리는 형편은 충숙과 기택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녀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4수생인 기우는 연세대에 실제로 입학 할 것이기 때문에 학력을 위조한 것이 범죄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와 관련된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기정은 미대 진학을 희망하고 있지만 미술 학원에 다니지 못하고 있다. 이는 문광부부도 마찬가지다. 박사장의 집에서 쫓겨난 문광은 그 사이에 빚쟁이들에게 시달렸는지 얼굴에 멍을 달고 나타난다. 그들은 이미 절벽 끝까지 내몰렸기 때문에 공존을 생각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뿐인 숙주를 두고 싸운다. 그리고 나란히 파멸한다.

 

 

 

그들에겐 아무 상관 없는 일.



거센 폭우로 인한 홍수가 기택의 동네를 휩쓴다. 문광부부와 한바탕 소동 후 집으로 돌아온 기택의 가족들은 이미 침수된 반지하 집에 들어간다. 필요한 물건들을 꺼내 나온 가족들은 체육관에 마련된 긴급 대피소로 폭우를 피한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한다. 인생은 어차피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 무계획이 가장 좋은 계획이라고.


다음 날 아침 연교가 비가 갠 맑은 하늘을 보며 미세먼지가 씻겨 내려가 날씨가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송이 마당에 펼쳐놓은 미국산 장난감 텐트는 쏟아지는 폭우에도 멀쩡했다. 비 한 방울 안 새는 텐트 속에서 잠든 다송과 날씨가 좋아 기분이 좋은 연교의 모습이 너무나 극명하게 기택네 가족들과 대비된다.


다송의 번개 모임 생일파티에 불려온 기우가 2층 다혜의 방에서 창밖을 쳐다본다.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며 여유로워 보이는 파티의 모습에 기우는 다혜에게 갑자기 모여도 다들 세련되다고, 자신이 이곳과 어울리냐고 묻는다.


폭우와 생일파티 모두 갑작스러운 사건이지만 이재민이 된 기택네 가족과 평화로운 상류층 사람들의 모습이 상당히 대조적이다. 기택이 박사장을 죽인 일도, 뉴스에는 그저 부잣집 파티에 난입한 노숙자가 묻지마 살인을 하다가 죽고 운전기사가 난데없이 고용주를 죽이고 사라진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방공호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노숙자가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문광의 죽음 또한 마찬가지다.

 

윤기사가 왜 그런 짓을 한 건지, 오래 일하던 입주 도우미가 왜 결핵을 숨겼는지 그들은 궁금하지 않다. 박사장의 말대로 그들을 대신할 대체재는 많기 때문이다. 연교는 기택에게 나는 지하철 비슷한 냄새를 맡지 못한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나는 냄새가 뭔지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현관 계단의 전등이 깜빡이지만 센서의 오작동이라고만 생각한다.


 

 

그들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결말 부에서 대학도 좋고 결혼도 좋지만, 돈을 많이 버는 계획을 세웠다는 기우의 나래이션이 들린다. 성공한 듯한 모습의 기우가 저택을 사고, 아버지는 그저 올라오시기만 하면 된다는 나레이션 이후 마당에서 충숙과 기택이 지하에서 올라오는 것을 기다린다. 기택이 천천히 기우에게 다가가서 말없이 껴안으며 암전. 충숙과 기우가 여전히 반지하 집에서 살고 있는 화면이 나오며 다시 나래이션이 흘러나온다. 그날이 올 때까지 건강하세요. 그럼 이만. 그리고 영화는 끝난다.

 

그들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봉준호 감독은 실제로 계산해보니 기우가 그 저택을 사려면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으더라도547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기우가 저택을 사는 것은 갑자기 하늘에서 기우 앞에 억만금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기택이 지하실에서 올라와 기우와 포옹하는 장면이야말로 러닝타임131분 중 가장 잔인하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상황이 좋을 리 없는데'좋을 것'이라고 단정 짓는 태도는 무책임하다.” 는 감독의 설명은 물론 맞는 말이지만,그 좋은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보여주지 않고 연출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관객 저마다 기우의 희망을 꿈꿀 수 있는 법이지만, 마치 다 주었다가 다시 빼앗아가는 그런 기분을 느꼈다.


 

 

선을 넘는 냄새를 어찌할 수 없는 것처럼.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고, 쿠키 영상이 없기 때문에 관객들은 서둘러 하나둘 극장을 떠난다. 올라가는 엔딩 크래딧을 바라보며 자리에 앉아있으면, 처량한 전주를 지나 기우 역할의 배우 최우식이 부르는 담백한 발성의 노래가 들린다. 유쾌한 멜로디, 하지만 가사는 그렇지 않다.

 

길은 희뿌연 안개속에
힘껏 마시는 미세먼지
눈은 오지않고 
비도 오지않네
바싹 메마른 내 발바닥

매일 하얗게 붙태우네
없는 근육이 다 타도록
쓸고 밀고 닦고
다시 움켜쥐네
이젠 딱딱한 내 손바닥

아, 아, 아...

 

가사가 마치 영화 이후 기우가 살아갈 인생을 표현한 것 같아 영화가 개봉한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는 요즘도 가사를 되씹어 보고자 다시 듣곤 한다.



[김혜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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