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1791년,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다시 쓰다 [사람]

글 입력 2019.06.22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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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억압받던 여성의 권리에 대한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아주 오랫동안 세상은 남성들을 중심으로 움직여 왔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남성은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수많은 부분을 주도해 왔으며, 여성들은 세계를 구성함에 있어 남성과 동일한 권리를 갖지 못했다.


그들이 내세운 이유는 다양했지만, 그것들은 이유라기보다는 핑계에 가까워 보이는 말들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누군가의 인권을 제한하는 것은 마치 자연을 거스르는 것과 같은 일인데, 이러한 일에 논리적인 근거와 체계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논리적인 근거 없이 여성의 권리를 제한하는 일은 아주 흔한 일이었으며,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널리 통용되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의 정치 참여 권리가 보장된 것은 여성이 가정이라는 공간을 벗어나 남성 중심의 사회에 발을 딛으며 마주하게 되는 첫 번째 장벽을 부순 것과 다름없었다.


이 결과는 여성이 더 넓은 세계에서 보다 자유롭게 그들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고, 여성인권 신장으로의 첫 번째 디딤돌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 지금까지 세계의 수많은 여성들은 여성이 삶을 살아가며 마주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성평등을 위하여 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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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랭프 드 구즈

 


올랭프 드 구즈도 그런 인물이었다. 그는 1791년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을 통해 프랑스 혁명의 결과로 발표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이 남성 중심적으로 작성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했으며, ‘인간’의 범주에 여성이 포함된다는 당연한—그러나 많은 사람이 잊은 듯한—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는 기계적으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에서 사용된 ‘인간’ 혹은 ‘시민’이란 단어를 ‘여성과 남성’으로 바꾸기만 하지는 않았다. 인간이라는 개념 안에 여성이 포함되기 때문에 여성 역시 남성과 동등하게 인권을 누려야 한다는 입장에서 기존 프랑스 사회에서 통용되던 인권 개념의 재정의 필요성까지 논했다. 그의 이름을 걸고, 남성 중심의 사회와 정면으로 마주한 채 그 공고한 벽에 돌을 던진 것이다.


부당한 상황을 목도하고, 그가 하나하나 바꾸어 새로이 쓴 문장에서는 당대 여성들의 삶에 대한 통찰이 드러난다. 이것은 남성들이 여성들의 권리를 제한하기 위해 주장해 온 당시의 여성혐오 논리에 정면으로 대응할 수 있는 증거가 되었을 것이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의 제 1조은 ‘인간은 권리에 있어 자유로우며 평등하게 태어나고 생존한다. 사회적 차별은 오직 일반적인 선에 기초하여 마련된다.’라는 내용인데, 올랭프 드 구즈는 이것을 ‘여성은 출생과 더불어 그리고 그 이후 계속해서 평등한 권리를 누린다. 공공의 효용에 입각한 경우에만 사회적 구분이 허용될 수 있다.’라고 새롭게 바꾸어 작성하였다. 이 부분에서 그는 여성이 가정과 사회 어떤 곳에서도 차별받지 않아야 함을 강조한다.


이것은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여 그가 맡은 것을 수행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이러한 부분에 있어 여성과 남성이 전혀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권리 선언 제 1조는 여성의 권리를 제한하기 위해 남성들이 주장했던 사회적 역할 수행에 대한 논리의 대부분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언젠가 있을 여성의 사회 진출에도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가 인권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에 대해 압축해 보여주는 조항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제 3조에서는 모든 주권의 원칙이 국민에게서 나오고, 국민은 여성과 남성의 결합이라고 이야기하며 국민이라는 범주 안에 여성을 포함시킬 것을 주장한다. 이 조항 역시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가 이 조항에서 여성을 인간으로, 시민으로, 그리고 국민으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여성을 시민의 일원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당시 사회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공적인 일들에 참여할 수 있지만 존재 자체를 부정당했던 여성들에게 힘을 실어 주는 조항이기 때문이다.


이것에 관한 그의 주장은 제 6조에서 이어지는데, 여기에서는 일반의지의 형성과 입법과정에 여성도 참여 가능하며 능력에 따라 평등하게 기용될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 조항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남성들이 그토록 여성들의 사회 참여를 막고자 했던 이유에 대하여 깊은 의문을 갖게 하며, 그렇기에 의미가 있다. 필자는 성 차별 없이 평등한 기용을 요구하는 부분에서 그 이유가 기존 사회의 균열을 두려워하는 남성들의 심리에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여성과 남성이 같은 출발선에서 평등하게 서게 되었을 때의 상황과, 혹여나 있을지도 모르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뛰어난 모습을 보이는 상황을 두려워한 것이다. 혁명 당시 인권을 위해 싸웠던 여성들의 모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인정받지 못한 여성들의 처지가 그 근거가 될 듯하다. 올랭프 드 구즈 역시 이러한 상황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이것을 그의 논리를 발전시키는 근거로 사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권리 선언 조항 뒤에 있는 글 역시 그가 당시 상황을 통찰력 있게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데, 그는 이 글을 통해 프랑스 혁명 이후임에도 여성이 누리는 권리와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해내며 문제 해결을 위해 여성 간의 지속적인 연대가 필요함을 촉구한다. 더 나아가 ‘여성과 남성이 다른 것이 무엇인가?’ 라는 문장을 통해 공고한 남성 중심 세계의 모순을 폭로한다. 그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그가 희망하는 세계는 어떠한 모습인지, 당시 세계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어떤지… 열 일곱 개의 조항을 통해 그가 계속해서 이야기했던 것들이 정리되어 호소하는 목소리로 쓰여져 있는 부분이 바로 이 글이다.

 

혁명으로 인해 인권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인권은 여전히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왔다. 올랭프 드 구즈가 여성 인권에 대한 글을 저술하고 난 뒤 처형당했다는 사실은 그가 여성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까지 얼마나 큰 사회적 압력이 있었을지 추측 가능하게 한다. 특정 성별의 인권에 대해 논하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합의에 의해 정당화되었던 사회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여성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던 그의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



[김보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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