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더 길티(The Guilty) : 우리는 우리의 감각을 믿을 수 있는가? [영화]

편견을 가진 눈은 모든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 놓은 문맥 속에 집어넣는다.
글 입력 2019.06.2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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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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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서사가 하나의 공간에서만 진행된다면 어떠할까? 여기 시각이 아닌 청각으로만 이루어진 영화가 있다. 덴마크의 스릴러 <더 길티>이다.


재판 중인 사건으로 경질된 채 긴급 신고 센터에서 근무 중인 경찰 ‘아스게르’. 다음 날 진행될 최종 재판에 대한 긴장감으로 좀처럼 일에 집중하지 못하던 그는 심상치 않은 신고전화를 받게 된다. 
 
직감적으로 전화를 건 여성이 납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스게르는 피해자를 구출하기 위해 모든 절차를 무시한 채 사건에 뛰어드는데… 
 
지금부터 모든 소리는 이 사건의 단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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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의 맹신


영화의 첫 장면부터 아스게르의 귀에서 줌 아웃으로 시작되는 이미지는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청각적 요소에 집중하게 만든다. 여기에서 시각 이미지들은 서사의 맥락을 파악하는 데 큰 단서가 되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의 시각을 얼마나 믿고 있는가? 보는 것은 상상할 수 없게 만든다. 특히 사진과 영상이야말로 ‘지시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매체가 아니던가. 우리가 소설을 읽으면서는 춘향과 몽룡의 얼굴을 상상할 수 있지만, 극이나 영화에서는 우리 눈으로 보이는 이미지 이외의 얼굴은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보는 것만이 진실일까? 상상이 개입될 수 없는 이미지들은 언제나 진실만을 보여주는 것일까? 영상 예술인 영화는 언제나 지시성이 강한 이미지들만 보여줄 수밖에 없는 걸까? <더 길티>는 이러한 문제들에 의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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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데이빗 린치의 <블루벨벳>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블루벨벳>은 사건의 일부만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나머지 사건은 청각으로만 들려준다.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을, 관객들은 맹신할 수밖에 없다. 보이는 그대로 믿고, 그로 인해 어떠한 편견으로 청각적 신호들을 해석한다.

<블루벨벳>에서는 본인의 아이를 납치당한 여성의 모습을 – 물론 이 사실 또한 시각적 기호로 섣불리 판단된 것일 수 있다. – 볼 수 있다. 후에 이미지는 보이지 않고, 여성과 납치된 아이가 만나는 목소리만 들리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당연히 여성이 아이와 만났을 것이라 확신한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관객들은 그 장면을 본 적이 없다. 오로지 여성의 목소리만 들렸을 뿐. 아이의 목소리 비슷한 것도 듣지 못했다. 편견을 가진 눈은 모든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 놓은 문맥 속에 집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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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센터에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주인공 아스게르는 전화를 건 여성이 납치되었다는 것을 알아낸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판단한다. 아스게르의 말과 행동을 따라가던 관객의 선입견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크게 충격을 먹는다. 선입견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던 시각과 청각이 인지부조화를 겪은 것이다.

여성의 상황은 납치당한 것이라고 믿었던 나의 믿음과는 어긋났고, 영화가 끝난 후에도 충격의 여운은 가시지 않았다. 맹신하던 감각이 불신으로 전환되는 것에서 오는 충격이라고 설명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감각들을 믿을 수 있을까? 물론 정보를 얻는 데에 우리의 감각만 한 것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쯤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감각을 너무 맹신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의 눈과 귀를 왜곡시키는 것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과연 우리는 눈과 귀를 맹신해야 할 것인가? 한 번쯤 질문을 던져봐야 할 것이다.


[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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