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해피엔딩과 동화, 그 힘에 관하여 - 영화 '알라딘' [영화]

해피엔딩을 믿으세요
글 입력 2019.06.17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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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없습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우리는 동화의 결말을 알고 있다. 주인공은 절대 죽지 않고, 나쁜 캐릭터는 언제나 벌을 받으며, 주인공들은 꼭 행복한 엔딩을 맞이한다. 숨 막히는 반전도 없고 꿈에 나올 만큼 강렬한 액션도 없다. 애간장이 녹아내릴 정도의 애상도 느끼기 힘들다. 그러니 동화에서 접할 수 있는 감정은 뿌듯함, 만족감, 밋밋한 행복감, 뭐 이런 소소한 느낌 정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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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물론 아이들은 제외해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백설공주가 독사과를 베어 물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절망을 느낄 수도 있고, 신데렐라가 계모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 눈물을 펑펑 쏟을 수도 있다. 우리가 ‘기생충’을 보면서 느끼는 스산함, ‘매트릭스’를 보면서 펼치는 상상력, ‘러브 액츄얼리’를 보면서 품는 로맨스보다 어쩌면 더 강렬한 감상을 가질 지도 모르겠다. ‘처음’이란 언제나 ‘마지막’보다 인상적인 법이니까.

하지만 참 신기하다. 아이들에게 동화란 생애 첫 이야기, 생애 첫 판타지니 그럴 수 있다 쳐도, 왜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까지 디즈니가 만들어내는 허구에 매료될까. 백설공주가 사과를 먹든 바나나를 먹든 어차피 선이 이기고 악이 패한다는 동화적 진리를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동화 클리셰에 매번 긴장하며 해피엔딩에 미소 지을까. 참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이런 이야기도 필요한 법이지


사실 동화가 가진 매력은 여기서 나온다. 무조건 행복하리라, 무조건 선이 승리하리라, 라는 믿음에서. 성실이 성공을 담보하지 못하고 성공이 행복을 책임지지 못하는 세상에서 동화의 공식은 참으로 비현실적이다. 현실 궤도에서 이탈한 서사가 새롭게 창조한 길은, 비현실적이기에 매력적이다. 가끔은 이런 이야기도 필요한 법이다. 숨 막히는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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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알라딘’이 그려내는 판타지도 이와 별 다르지 않다. 선은 승리하고 악은 패배한다. 하지만 이 단순하고 간단한 공식은 꽤 큰 힘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꿈꿀 수 있는 용기’다. 어린 아이들이 ‘알라딘’을 본 후 가지는 용기는 생애 전반에 대한 용기일 수 있겠지만, 벌써 현실을 꽤나 걸어 온 어른들은 그만큼 커다란 용기를 가지긴 힘들다. 단순하게 말해서 ‘나도 자스민처럼 짱이 돼야지(아이의 언어를 빌렸다).’ 내지는 ‘나도 알라딘처럼 착하게 살아서 램프 가져야지. 소원은 뭐 빌까?’ 같은 용기를 어른들이 가지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

동화가 어른들에게 주는 용기, 즉 어른들에게 건네는 토닥임은 사소하다. 해피엔딩의 힘을 불신했던 사람들에게 행복의 매력을 알려주는 것, 정도가 아닐까 싶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2시간 정도는 마음껏 꿈꿔도 괜찮다는 토닥임. 일곱 살짜리 어린 애나 좋아할 법한 디즈니 영화를 보고 엉엉 운다고 해서 민망할 거 없다는 위로. 뭐 이 정도의 사소함.



해피엔딩을 믿으세요


사실 나도 희극보다는 비극을 좋아한다. 장조보다는 단조를 좋아한다. 비극에서만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 내가 공연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마음껏 폭발하고, 마음껏 울고, 마음껏 속상해한 후에 느끼는 공허함까지 좋아한다. 아마 많은 한국인들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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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해피엔딩의 힘을 간과해선 안 된다. 우리는 너무 쉽게 행복한 결말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비현실적인’ 등의 수식어를 붙이며 아름답게 마무리된 결말을 해체하기도 한다. 물론 앞뒤 가리지 않고 급하게 마무리 짓는 것과는 별개다. 하지만 충분한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는 이유로 현실성을 잃었다고 재단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 않나.

‘모두들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 한 문장의 힘은 참 대단하다. 현실의 모든 갈등과 비극, 슬픔과 비애를 무화시키고 철저한 판타지의 세계로 독자를 인도한 후 행복으로 이를 봉합한다. 행복이 비현실적이다, 는 말은 일부 맞는 말일 수도 있겠다. 봉합된 판타지의 세계에서는 선이 승리를 담보하지만 어지러운 현실에서는 선보다 우선되는 가치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단순한 도덕이기에 간과하기 쉬운 주제가 동화 속에서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복잡한 가치로 둔갑한다. 그렇기에 동화는 비현실적이다. 현실에서는 잊어도 되는 것들을 동화는 잊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동화 속 악당만큼 악했다면 굳이 동화로 현실 도피를 하지 않아도 됐을 걸, 우리는 동화 속 주인공과 악당 사이 그 어딘가에 위치해 있어서 문제다. 세상을 바꿀 정도로 정의롭지는 못하지만 현실이 더럽다고 불평할 정도로 도덕적이기는 해서, 자스민처럼 용기를 내지는 못해도 자스민의 선택에 눈물을 흘리기는 한다. 어린 시절, 용감한 기사 이야기와 현명한 왕 이야기를 읽고 “아, 나도 저렇게 되어야지!” 결심했던 사람들이 자라서 “아, 저런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하는데.”라고 아쉬워하는 어른이 되었다. 우리가 해피엔딩을 보고 비현실적이라 손가락질 하는 이유는 동화 속 주인공이 나의 모습과 너무나 판이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화는 ‘꿈꿀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비현실적인 동화 속 세상이 언젠가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꿈을 마음껏 꿔볼 수 있는 시간을 준다. 나는 자스민처럼 용감하고 리더십 있지도 않지만, 그래도 선이 승리하는 세상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게 해준다. 동화의 뻔한 서사에 대한 갈증은 동화로만 해소할 수 있다. 그렇기에 동화적 해피엔딩은 앞으로도 유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뻔한 서사의 주인공이 여성이 될 수 있다는 것, ‘이제 너도 진정한 여성이 되었구나’라는 대사를 듣고도 찌푸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백설공주’와 ‘신데렐라’에서 찾을 수 없었던 여성주의적 맥락을 ‘알라딘’에서는 찾을 수 있었다는 것. 사족이지만, ‘알라딘’을 봐야 할 수만 가지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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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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