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에릭 요한슨 전시를 바라보는 두가지 시선 [전시]

호평과 혹평 그 사이.
글 입력 2019.06.1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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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8일 토요일, 에릭 요한슨 전이 열리는 예술의전당은 인산인해였다. 길게 늘어선 줄과 순서대로 배부되는 번호표, 자신의 번호가 불릴 때까지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는 입장 대기자들. 그 모습은 마치 은행의 피크타임 같았다. 꽤 많은 전시회를 다녀봤지만, 이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려 번호표를 받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것은 에릭 요한슨의 인지도일까, 전시의 개요만으로 흥미를 돋운 작품의 저력일까. 그게 어떤 의미든 전시를 보기 전부터 에릭 요한슨의 인기는 엄청났다.



두 시선


작품 자체를 바라보는 의견은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작품에 지대한 흥미를 느낀 사람의 관점과 그와 반대로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한 사람의 관점. 전자는 나였고 후자는 내 친구였다. 나는 그의 작품이 흥미로웠다. 하나의 이미지 안에 스토리가 들어있어서 그것을 추측하고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같이 간 내 친구는 어떤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이것은 미술 작품을 대하는 ‘취향’ 때문이다. 한 작품을 바라보며 그 안에 서사를 상상하고 작가의 의도를 추측하는 ‘스토리텔링’ 작업을 좋아하는 나와 달리, 친구는 직관적이고 연출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좋아했다. 특히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이라는 매체에서는 더욱. 이런 취향 차이가 정반대의 감상을 하게 했다.

하지만 혹평에는 취향이 아닌 객관적인 시선이 들어있기도 하다. 친구는 본인이 좋아하지 않는 작업 스타일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비슷한 류의 이미지들이 인터넷상에 너무 많아서 그의 작품이 전혀 신선하지 않다고 했다. 듣고 보니 그 의견에도 일리가 있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익숙한 느낌이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익숙함은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 방해가 되기도 한다. 신선함, 색다름, 낯섦이 주는 쾌감은 현대미술에선 주요하다. 우리는 어떤 것을 볼 때 그 의도보다는 직관적인 모양새가 먼저 눈에 들어오고 그것이 전체적인 감상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 의미가 얼마나 좋고 나쁘냐는 감상자에게는 두 번째 감각이다. 기존의 것과 전혀 다른 색다른 이미지, 혹은 작업 방식은 관람자의 감상을 지배한다.

전혀 보지 못한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없으니 기존의 것을 작가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익숙한 것을 익숙하지 않게 만드는 게 바로 현대 미술이다. 그러나 에릭 요한슨의 작업은 이미 너무 흔한 방식이다. 각종 이미지를 모아 놓은 사이트 '핀터레스트'에 갖다 놓아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것 같다. 물론 퀄리티의 차이나 그 의미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겠지만, 보이는 방식은 별 다를 게 없었다.

그의 방식이 새롭지 않은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그의 작품은 초현실주의 회화 같기 때문이다. 한눈에 봐도 그가 초현실주의 회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을 추측할 수 있는데, 역시 그는 마그리트나 달리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상상을 물질로 만들어 낸 것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이 작업 방식이 전혀 기발하지 않다고 느낄 만 하다. 다만 에릭 요한슨이 그들과 다른 점이라면 물감이 아닌 필름을 사용하고 추가적인 보정을 한다는 것, 다량 복제가 가능하단 점일 것이다.



하나의 시선


전혀 다른 시선을 가진 친구와 나는 의견을 주고받으며 공통 지점을 발견했다. 에릭 요한슨은 사진작가라기보다 회화 작가, 내지는 영화감독 같다는 것이다. 사진이라는 매체를 사용하는 방식이 전형적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순간 포착이 아닌 철저히 연출된 상상의 세계. 보는 이로 하여금 함께 상상하도록 만드는 몰입감. 비현실적인 합성이나 보정이 어색하지 않은 화려한 후보정 기술. 몽환적인 분위기. 이 모든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에릭 요한슨 사진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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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요한슨이 작업을 진행하는 방식 또한 독특하다. 그는 이따금 몇개월간 작업을 방치한다. 방치한 작업을 잊어버릴 때쯤 다시 보면 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제 작업을 볼 수 있다는 이유이다. 하나를 붙들고 애쓰는 게 아니라 많은 작업에 체력을 나눠야 한다. 정말 정성스러운 작업 방식이다.



전시 공간


이 전시가 총 4부로 나누어진 만큼 전시 공간은 널찍한 홀이 아니라 계속 이동해야 하는 작은 공간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이 공간들은 많은 관람객을 모두 수용하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그 때문에 사진치고 큰 편인 작품들을 사람에 쫓기듯 볼 수밖에 없어서 더욱 아쉬웠다. 이런 공간의 제약은 아쉬움을 불렀다. 특히 아래 작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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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깨진 유리들이 전시장 바닥까지 이어지는 연출은 너무 엉성했다. 깨진 유리 조각이 사진과 연결되어 더욱 몰입되도록 하려면 그만한 공간이 필요한데 전시장이 너무 좁고 작품들이 빼곡히 걸려 있어 어떤 여유가 없었다. 공간의 여유는 곧 관람의 여유. 그 여유의 부족으로 충분히 흥미로웠을 연출이 이도 저도 아닌 느낌으로 지나갔다. 이 연출이 작품의 매력을 높이지 못해서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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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작품 속 세트장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연출은 만족스러웠다. 처음엔 이게 뭐지? 싶다가 작품을 보고 '아, 세트장이구나!' 하게 됐다. 그리고 순식간에 전시에 몰입했다. 다른 관객들도 이 공간에서 사진을 찍으며 화기애애했으니 포토존 역할도 톡톡히 했다.

그 밖에도 에릭 요한슨의 작업실을 재현한 공간이나 그의 작품 속 구름을 본떠 전시장 천장에 걸어 놓은 구름 모형 등이 전시의 매력을 증가시켰다. 마치 이곳이 트릭 아트 체험장인 듯한 착각까지 불러일으킬 만큼 신이 나기도 했다. 눈으로 보고 상상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직접 체험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주최 측의 센스에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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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전시장 곳곳에 난 작은 구멍들이 전시 분위기에 일조했다. 이 작은 구멍은 관객이 그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상상하게 되는 장치가 된다. 이 작은 틈 사이로 비치는 사람들과 다른 작품들 덕분에 다음 공간이 기다려지고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든다. 에릭 요한슨의 '상상'은 액자에서부터 전시 공간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찬 전시장에서 작품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감탄하거나 즐거워했다. 신기하고 재밌다! 이것이 주된 반응이었다. 아마도 전시를 받아들이는 열린 태도에 따른 반응일 테다. 하지만 나는 전시를 볼 때 그들처럼 단순히 즐기지 못했다. 항상 작품이 지닌 의도와 표현방식이 부합하는지를 따지느라 그렇다. 이것은 취향이나 객관적인 시선과 별개로 발생한 문제인데, 바로 전공 탓이다.

마치 직업병처럼 작품 앞에서 서는 순간 작품을 둘러싼 모든 사항을 따지는 비평 모드에 돌입하는 게 버릇이 됐다. 특히나 이번 전시는 그 정도가 더 심했다. 처음에야 단순히 좋았으나 나와 정반대되는 친구의 시선을 듣고 나서는 그 느낌을 거슬러 자꾸만 비평하려 들었다. 전공자의 시선에 갇힌 것 같아 씁쓸하다. 이럴 때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되어 작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상상을 멈추지 말라는 것에는 동심과 희망을 잃지 말라는 뜻이 숨겨져 있다. 순수한 상태로 돌아가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그 순수함을 방해하는 것은 지나친 이성과 비판에 있다는 생각을 한다. 가능, 불가능을 따지는 것처럼 현실의 잣대에 맞춰 모든 걸 재단하는 것은 피곤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취향까지 뒤흔든다. 이 전시는 내게 취향과 비판, 그 경계에서 방황하게 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느낌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느낌은 솔직하기 때문이다. 그 솔직한 느낌에 의하자면, 나는 그의 팬이 된 것 같다.




[장재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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