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공연만이 줄 수 있는 것,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 [음악]

분명한 건 세상에서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은 하나다
글 입력 2019.06.1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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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공연을 관람했을 뿐인데 다른 세상으로 이동한 것만 같은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나와 함께 관객석에 있는 수많은 사람이 자취를 감추고 이 세상에 나와 아티스트만 존재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나는 그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다. 2017년 7월, 홍대 상상마당 속 공연장에서 나는 잠시 그들이 공연을 통해 만들어낸 몽환적인 세상에 빠져들었다. 그들은 바로 밴드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이다.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끝잔향)은 김하람(기타), 박성훈(드럼), 이건석(베이스), 안다영(보컬, 신시사이저)으로 이루어진 4인조 포스트 록 밴드다. (2017년 10월 기타리스트 강원우가 탈퇴한 이후 4인조 밴드가 되었다) 2017년 [우연의 연속에 의한 필연]이라는 EP 앨범으로 시작을 알린 그들은 인디 밴드가 살아남기 힘든 한국 음악 시장에서 꾸준히 ‘끝잔향’만의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다.

 

내가 그들을 처음 만난 2017년 여름, 상상마당에서의 그 공연은 많은 경연을 거치고 거쳐 최종 결선에 진출한 6팀이 공연하고 그 현장에서 심사위원과 관객의 투표로 인천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에서 공연할 3팀을 결정짓는 자리였다. 나는 끝잔향에 대해서 전혀 몰랐고 앞의 5팀의 공연으로 이미 신이 난 상태였다. 그러나 그 자리의 끝에서 끝잔향을 만난 순간, 나에게 그날은 내가 끝잔향의 세계에 발을 들인 날이 되었다.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이라는 길고 독특한 이름부터 내 흥미를 자극한 그들은 활기차고 강렬한 록 음악의 향연에 익숙해진 내게 적막을 선사함으로써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그 적막 속 보컬 안다영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나는 내가 이 밴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음을 확신했다.

 

록 밴드 공연에서는 관객도 로커가 되어야 한다. 같이 소리 지르고 흥분해야 한다. 하지만 끝잔향의 공연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최대한 숨죽이고 집중해야 했다. 나는 이전까지 공연이 주는 짜릿함을, 음악을 음원으로 듣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의 차이를 알지 못했었다. 그런 나에게 끝잔향은 아티스트가 관객과 교감하는 것이 무언인지를, 공연이 줄 수 있는 신비한 체험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려주었다.

 

경연의 결과를 말하자면 끝잔향은 인천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에 공연할 3팀으로 선정되지 못했다. 대한민국에서 인디 록밴드가 살아남기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그래서 그런 기회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에, 겨우 그 자리에서 처음 알았으면서 그들의 팬이 되어버린 나는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경연이 모두 끝나고 퇴근길에서 만난 밴드 멤버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씁쓸해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갈 수 있었던 건, 그들의 씁쓸함에서 절망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두 달 뒤, 나는 혼자 끝잔향의 단독 공연장을 찾았다. 두 달 동안 공연을 쉬며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것을 재정비했다는 그들은 자신들을 찾아준 관객들을 위해 열성적으로 공연했다. 몇 시간을 쉬지 않고 열심히 연주하고 노래하는 그들을 보며 내가 왜 이들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는지 알게 되었다.

 

끝잔향의 공연을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단연 보컬 안다영이다. 신시사이저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은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만이 가지는 독특한 색깔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리고 곧이어 묵묵히 자신의 악기를 연주하는 다른 멤버들이 보이고 그들의 연주가 빚어내는 환상적인 멜로디가 귀에 꽂히기 시작한다. 아티스트와의 교감, 환상적인 세계를 체험한 기분, 음악적 감동…. 나는 두달만에 끝잔향을 통해 공연만이 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시 경험했다.

 

두 번째 공연에서는 첫 번째 공연을 봤을 때 보이지 않았던 게 보이기도 했다. 그건 그들의 노래에 가사가 굉장히 적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노래의 길이가 짧은 건 아니다. 같은 가사가 계속해서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나는 노래를 들을 때 가사를 굉장히 중요시하는 편인데 그런데도 같은 소절을 반복하는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되풀이되는 가사가 그만큼 선명하게 인식되기 때문이다. <#>의 ‘우리 다 같이 춤을 추자’와 <5:41>의 ‘the pain grows inside me/ the pain kills me completely’와 같은 가사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안다영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목소리가 주는 몽환에 빠져드는 한편 그 한 소절의 의미를 곱씹게 된다.

 

솔직히 말하면, 시간이 지나 그들에 대한 관심도 조금은 시들해졌었다. 세상엔 자극적인 것들이 넘쳐났고 나는 그것들에 현혹되느라 느리고 반복되는 끝잔향의 음악을 잠시 잊었었다. 그러다 다시 그들의 음악에 귀 기울이게 된 건 영국 밴드 아이어 루(Eyre Llew)와 함께 작업해 올해 발표한 앨범 [Carrier]의 타이틀곡 Hero의 뮤직비디오 덕분이었다.


 

 


내가 잠시 관심을 갖지 않는 동안에도 그들은 쉬지 않고 자신들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음악 세계는 더욱더 견고해져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인디 록밴드로서 설 자리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밴드가 처한 현실에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뚝심 있게 완성해 낸 음악을 들으면, 그들이 필사적인 자세로 임하는 공연을 보게 되면 그것이 주는 황홀함에 잠시 걱정을 내려놓게 된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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