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오페라 "나비부인" 리뷰 [공연]

나비부인은 여전히 순수의 시대를 사는가?
글 입력 2019.06.10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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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 속 인물들은 훨씬 더 좋은 시설을 갖췄음에도 신식 오페라 극장 대신 구식 오페라 극장에 가기를 고집한다. 신식 오페라 극장은 '신흥 부자'들이나 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틈날 때마다 오페라 극장을 방문하지만 정작 오페라를 제대로 즐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저 다른 가문의 동태를 살피거나 사교의 장으로 이용할 뿐이다. 순수의 시대는 당시 뉴욕 사회를 정확히 반영한 리얼리즘 소설로, 실제로도 오페라 극장 박스석을 두고 유력 가문끼리 알력다툼이 왕왕 일어났다. 이 알력다툼에서 밀려난 신흥 부자들이 돈을 모아 짓게 된 것이 바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다. 문제는 이곳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아 밴더빌트 가문이 122개의 박스석을 확보하는 등 박스석의 독점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박스석의 이러한 가치와는 별개로, 박스석은 공연을 관람하기에는 매우 불편하다. 일반 좌석보다 무대와의 거리도 멀고, 측면에 자리하고 있어 시야도 제한되기 때문이다. 정작 공연에는 관심 없는 사람들을 위한 VIP석은 귀족사회의 잔재로 남아 오페라의 발전을 저해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계급에 의한 구분이 점차 옅어지면서 박스석을 독점하는 기이한 악습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유럽에서 오페라 극장은 각각의 국가의 문화력(力)을 과시하는 상징인 경우가 많다. 심지어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 앞에는 이탈리아 정부가 다른 사회문제 대신 문화 예술 지원에만 관심을 쏟는다며 시위를 펼치는 반정부주의자들까지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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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PIS(공연 예술 통합전산망) 2018년 통계자료



비싼 티켓값과 그들만의 오페라라는 딱지는 오페라가 발전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공연예술 통합전산망 KOPIS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오페라는 공연 건수와 개막 편수, 상연 횟수, 관객 수 등에서 하위 2등을 면치 못했다. 꼴찌인 '복합'이 고정적인 하나의 장르가 아니라는 것을 고려하면, 거의 꼴찌나 다름없는 결과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탈리아어와 생소한 창법까지 곁들이니, 오페라가 여전히 20세기 순수의 시대를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벌써 10회를 맞이하는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은 오페라에 대한 부정적 거리감을 해소하고자 기획되었다. 국립오페라단을 제외한 6개의 민간 오페라단이 참여하는 이 성대한 축제에는 창작 오페라 해외 진출에도 많은 힘을 쏟고 있는 <글로리아 오페라단>, 지역문화의 세계화를 목표로 하는 <호남오페라단>과 오페라의 대중화에 힘을 쏟고 있는 <더뮤즈 오페라단>, 젊은 감각으로 클래식 콘서트와 오페라를 선보이는 <선이 오페라 앙상블>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신선한 발상과 새로운 도전으로 나비부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노블아트오페라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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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 박스석



오페라 극장에 처음 들어섰을 때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역시나 엠보싱 휴지처럼 봉긋하게 튀어나온 박스석이었다. 그러나 이 박스석들은 더는 VIP석이 아니다. 1층에 있는 박스석은 R석과 S석 다음인 A석으로 분류되며 그 외의 박스석들은 시야 제한석으로 분류되어 판매가 유보된다. 박스석은 이제 오페라 극장의 기본적인 구조를 지키기 위해서만 존재할 뿐, 불평등한 오페라의 계급 문화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이제 드디어 오페라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위대한 걸작은 시대상이라는 거대한 암초에 또다시 부딪히고 만다. 당면한 비판 중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은 바로 오리엔탈리즘인데, 생전 일본에 가본 적도 없는 푸치니가 게이샤의 이야기를 작곡한 것이 동양에 대한 몰이해이며, 이것이 새로운 고정관념을 재생산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나비부인에 대한 단편적인 사실에서 비롯된 오해다. 나비부인의 각본을 맡은 일리카는 작품의 리얼리즘을 위해 직접 나가사키에 다녀오는 열정을 보였고, 푸치니는 직접 일본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이탈리아 주재 일본 영사관의 아내와 교류하며 일본 민속 음악을 연구했다. 실제로 나비부인에는 그가 실제로 보고 들은 일본 민속 음악들이 상당 부분 반영되어 있다.


이탈리아인이었던 푸치니는 미 해군인 핑커톤을 묘사하기 위해서도 굉장한 노력을 들였다. 미국인 특유의 과장된 표현을 사용하거나, 미국 국가(國歌)인 'The Star-Spangled Banner'를 작곡에 이용하기도 했으며, 미군의 이야기임을 강조하기 위해 제목 또한 이탈리아어가 아닌 영어 'Butterfly'를 사용했다. 무엇보다, 원폭 투하 이후 나가사키에는 미군과 어린 게이샤 사이의 계약 결혼이 실제로 성행했기 때문에 나비부인이 일본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드러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환상적인 성격이 강하던 오페라에 리얼리즘을 도입함으로써 오페라의 수준을 한층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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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초상이 15살 어린 나이에 나이 많은 남성에게 시집 가 결국 버림을 당한다는 설정 또한 강하게 비판받는 지점 중 하나다. 필자 또한 관람 전 나비부인의 이러한 설정에 거북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그러나 관람 후 이러한 걱정이 지나친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미영사인 샤플레스는 이국적인 사랑에 들떠 있는 핑커톤의 행동을 끊임없이 지적한다. 그는 이르는 항구마다 새로운 사랑을 좇는 핑커톤에게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말을 무려 3번이나 하며 진실하지 않은 마음으로 어린 소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저주받을 일이라고 말한다. 오페라 <나비부인>은 샤플레스의 눈을 통해 핑커톤의 행동이 옳지 못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핑커톤은 마지막까지 끔찍이도 이기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초초상이 홀로 아이를 기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핑커톤은 자신의 선택을 괴로워하지만, 그것은 곤란한 상황에 대한 난처함일 뿐 초초상을 위한 배려심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그는 또 다른 피해자인 케이트와 샤플레스에게 마땅히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전가한다. 그의 비겁한 행위는 마지막까지 동정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 그의 추악함은 초초상의 순정과 대비되어 더욱 극명하게 명성을 떨친다.


초초상을 가련히 여긴 샤플레스는 그녀에게 재혼을 권유하지만, 초초상은 끝끝내 사무치도록 순정적인 고집을 피운다. 핑커톤을 향한 그녀의 사랑이 너무 맹목적인 나머지, 나중에는 그 모습이 어리숙하고 심지어는 멍청하게까지 보인다. 차마 케이트를 소개하지 못하는 스즈키를 보고 그녀는 애써 외면해 왔던 진실을 마주한다. 그러나 자신의 아이를 지키려는 그녀의 처절한 발악은 전혀 어리숙하지 않다. 온갖 분노와 울분에 사로잡혀 욕을 쏟아내고 소리를 질러도 모자랄 판에, 그녀는 침착하게 아이에게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 가늠한다. 울고 불고 매달려 봐야 핑커톤은 돌아오지 않고, 이미 가족과도 연이 끊겨버린 마당에 아이를 키울 여유는 없다. 쓰라린 마음을 뒤로하고 초초상은 핑커톤에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악의 복수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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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검을 들고 자살을 준비하는 초초상.
핑커톤을 위해 흩뿌린 꽃잎이 애처롭다.



21세기의 관점에서 비련의 여주인공이 결국 자살을 선택하는 결말은 수동적인 여성상을 부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초초상은 20세기 초반, 가족과 남편 모두에게 버림받은 18살의 게이샤다. 어쩌면 자살은 그녀가 할 수 있는 가장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그 짧은 순간 치밀한 계획을 마치고, 핑커톤이 직접 자신과 함께 묵었던 처소에 와줬으면 한다고 말한다. 마지막 순간에 그녀는 더는 핑커톤을 생각하지 않는다. 핑커톤은 끝내 다시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그는 결국 보게 될 것이다. 자신이 죽인 여자의 혐오스러운 인생을.



[김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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