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책을 읽고 괜히 한 번 고양이를 약올렸다 - 멍청한 인간들과 공존하는 몇 가지 방법

글 입력 2019.06.06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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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간 오전 1시 54분. 모두가 잠든 새벽. 깨어있는 건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일을 해야 하는 나와 그런 내 옆에서 울고 있는 고양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 정확하게 나를 쳐다보고 울고 있다. 간식을 줬다. 간식을 맛있게 먹고 또 운다. 이거는 놀아달라는 것이다. 이미 1시간 넘게 놀아줬는데 또 놀아주기엔 내가 너무 힘들었다.


애써 외면했더니 곧이어 들려오는 소리. 모래 파는 소리. 그리고 이어서 모래를 덮는 소리.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러오자 조심스럽게 거실로 나가보았다. 눈앞에 바로 보인 건 냥이가 똥스키를 타고 있는 장면이었다. 서둘러 잡으려고 하니, 냅다 뛰어가 손이 닫지 않는 곳으로 숨어버리기까지... 어떤 방법을 써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묵묵하게 바닥에 묻은 것들을 닦고 모래를 파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어느새 옆에 와서 능청스럽게 그루밍을 하고 있다.


조심스럽게 들어서 엉덩이를 보니 아주 가관이다. 자연스럽게 욕실로 들어가 사투를 벌였다. 엉덩이만 목욕을 시키고 말리고 하니 어느새 2시 반. 부들거리는 손으로 조금이라도 일을 하고자 의자에 앉았다. 그렇게 계속 감기는 눈을 힘겹게 뜬 상태로 일을 하다 이제 자볼까 고개를 돌렸더니 내 침대는 이미 고양이 차지가 되어버렸다. 배를 발라당 까고 코까지 골아가며 자는 모습에 도저히 깨울 수가 없어 베게만 가지고 거실에 나왔다. 결국 거실 소파에 쭈그려 누워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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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고양이 자는 모습


이게 바로 집사의 삶이다. 이것이 거의 매일 반복된다. 다른 식구들 멀쩡히 TV보고 있을 때는 잠만 자더니 다들 자러 들어가고 나만 깨어있을 때 왜 놀아달라고 징징거리고 그러다 화장실을 가서 볼일을 보고 꼭 묻히는 걸까? 고양이를 키운 지 2년이 되었는데, 이쯤 되니 전략적으로 날 괴롭히는 건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이 생각은 <멍청한 인간들과 공존하는 몇 가지 방법>을 읽으면서 더 확신하게 되었다. 이 책은 얄밉다. 책의 저자인 고양이가 묘사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딱 나를 비롯하여 우리가족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멍청한 인간들과 공존하는 몇 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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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저자가 다름 아닌 고양이라는 점에서 시작은 매우 독특했다. 독자는 다름 아닌 다른 고양이. 고양이가 인간을 어떻게 하면 잘 접수할 수 있는지를 소개하는 고양이들의 지침서이다.


먼저, 저자인 고양이는 길냥이다. 길냥이로써 직접 자신이 들어갈 집을 고른다. 그 집에는 부부가 살고 있었고, 남자는 고양이를 집에 들이는 것을 완강히 반대한다. 그러나 고양이는 자신만만하게 자신에게 간택 당한 이상 자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과정들을 보여준다. 그 후 좀 더 구체적으로 집의 어떤 영역들을 차지할 것인지, 어떻게 좋아하는 음식을 사수할 수 있는지 등 인간과 공존하면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처하는 방법들을 알려준다.




못 먹는게 아니라 안 먹는 거였네 _ 인간에게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는 법




이 싸움의 목적을 잊으면 안 된다. 인간이 준비한 음식을 거절하는 단순한 실랑이에 그치면 안 된다. 인간의 기를 완전히 꺾어서 인간으로 하여금 맛있는 통조림을 따게 만들어야 한다.


- 72P



고양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기 위해서 인간과 싸움을 벌이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는 대목이다. 즉, 편식을 제대로 하는 방법이다. 좋아하는 음식을 얻기 위해서 굶고, 심하면 토하기까지! 사실 이 부분을 보고 헛웃음을 많이 터트렸다. 우리 집 고양이가 딱 이랬기 때문이다.


처음 데려왔을 때부터 현재까지 우리 집 고양이는 ‘습식’만 먹는다. 습식 중에서도 ‘로얄캐닌 습식 파우치’만 먹는다. 습식이 건식보다 좋다는 건 알지만, 건사료보다 비용이 만만치 않다. 고양이 관리에 드는 모든 비용은 나와 내 동생이 내고 있다. 냄새도 심하다. 처음 파우치를 개봉했을 때 냄새 때문에 헛구역질을 했다.


이러한 이유에다가 가족이 집을 비우게 될 경우를 생각해서 건사료를 한번 먹여보려고 온갖 종류의 건사료 샘플을 주문했다. 그 중 유일하게 먹는 사료가 있어서 신나서 멋도 모르고 6KG을 주문했다. 하지만 고양이가 건사료를 먹은 건 샘플로 주었을 때.. 그 때밖에 없었다. 그 후로는 하나도 먹지 않았다. 100그람도 줄어들지 않고 방치된 6KG사료를 보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건사료만 두고 굶겨도 봤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편식습관을 고치기 위해서 쓰는 방법이라고 한다.


그 과정에서 고양이는 몇 번이나 애교를 부리며 우리 가족을 흔들었다. 책에서처럼 ‘애를 굶겨 죽일 셈이야?!’라고 외치는 아빠와 싸우기까지 했다. 결국 고양이는 공복토를 할 때까지 먹지 않았고, 우리 가족은 공복토를 보자마자 습식사료를 대령했다. 건사료는 학교 유기견 동아리에 기부하고, 길냥이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음식에 있어서는 완전한 승리를 거둬야 한다. 절대로 대충 넘어가면 안된다.


- 75P




완전한 승리를 거둔 우리 집 고양이는 오늘도 습식 사료를 먹고 하루에 응가를 3번이나 쌌다.



이제는 다른 가족 몰래 아주 조용히 식탁 밑에서 나와 남자의 의자 옆에 앉는다. 그리고 남자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그리고 남자가 다정하게 내려다볼 때 소리 없이 운다. 서두르면 안 된다. 기다려야 한다. 인간 남자를 닦달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다. 남자와 눈길이 다시 마주쳤을 때, 한 번 더 간절하게 애원하듯 소리 없이 운다.


- 79P



식탁에서 음식을 얻기 위한 방법을 묘사하는 이 대목도 굉장히 웃겼다. 진짜로 우리 집 고양이는 우리 아빠에게 이러기 때문이다. 아빠는 우리 가족 중에서 고양이에게 가장 엄하면서도 가장 식탁에서 음식을 많이 준다.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겠는 표정을 지으면서 음식을 준다. 물론 고양이가 먹어도 되는 음식들만 준다. 예를 들면 간이 안 된 연어구이나 삶은 오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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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뚫어지게 쳐다보는 것’과 ‘소리 없이 우는 것’은 온 가족이 많이 당해봤다. 평소에는 식구들에게 별 관심을 두지 않다가, 자신이 원하는 게 생기면 정말로 뚫어지게 쳐다보고, 소리 없이 운다. 아니면 아주 가냘프게 울거나. 그러면 웬만한 거는 다 들어주게 된다. 엄청 귀엽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양이를 사랑하는 이유




인간은 어리석고 하잘것없고 심술궂고 무심하다. 하지만 이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는 사랑이라는 강렬하고 멋진 것이 있다. 인간이 고양이를 사랑하고 고양이가 인간을 살아하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물론 여기에도 조심할 것이 있다. 사랑에 완전히 빠지면 안 된다. 아무리 사랑이 좋아도 내가 이 책에 적은 수단과 방법에 따라서 스스로를 지킬 줄 알아야 한다.


- 140P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 꽤 심해서 처음에는 만지면 바로 두드러기가 일어났었다. 지금은 비염, 결막염으로만 고생하는 중이다. 두 달에 한번 병원을 다니고 있고, 렌즈를 낀 눈은 틈만 나면 보이지 않는다. 목소리는 항상 코맹맹이 소리다. 그 와중에 고양이는 건방지다. 말도 안 듣는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감수하는 것은 내가 고양이를 사랑한다는 것과 고양이도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비록 한달여행하고 온 나를 못 알아봤지만)



Photo by Veronika Homchis on Unsplash.jpg
 


아마 고양이의 사랑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조심해야 할 것은 저자인 고양이의 말처럼, 인간인 내가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정말 어리석고 하찮고 심술궂고 무심하기 때문이다. 시험기간만 되더라도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확 줄어든다.


고양이를 위해 해야 하는 일들도 미루게 된다. 내가 잘못한 일인데도 고양이에게 신경질을 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차려 주위를 둘러보면 항상 고양이가 옆을 지키고 있었다. 내가 관심을 주지 않아도 한결같이 옆에서 조용하게 기다려준다.


‘사랑’편에 ‘인간의 사랑이 막대로 맞는 것보다 더 아플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인간 역시도 가슴에 두어야 하는 구절이다. 얄밉지만 그런 모습조차도 사랑스러운 고양이와 함께, 영원히 공존하기 위해서.





[김량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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