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천재 음악가가 아닌 망나니 루드윅 베토벤 [공연]

루드비히 판 베토벤의 타이틀에서 벗어나서 보는 루드윅 베토벤
글 입력 2019.06.05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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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루드비히가 아니라 루드윅인가?



베토벤의 풀네임, 루드비히 판 베토벤의 이름은 상식적으로 잘 알고 있는 이름이다. 베토벤은 귀족 가문에게 붙이는 호칭이며, 베토벤 가의 루드비히라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는 이름이다.


뜻을 알기 전에는 아무 의미를 갖지 않다가도, 뜻을 알게 되면 머릿속에 와 닿는 감각이 있으며, 그게 여러 번 반복되고 익숙해지면 하나의 고유 명사가 된다. 베토벤의 이름이 후세에 오르내리고, 그의 교향곡이 유명해지다 못해 마치 원래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것처럼 여겨질 때쯤 루드비히 판 베토벤의 이름은 그저 한 단어가 된다. 베토벤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지고, 그의 존재의 신비감은 사라지지만, 그저 청각장애를 앓았던 고독하고 예민했던 한 작곡가, 음악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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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윅 : 베토벤 더 피아노> 공연에서 베토벤의 조카 카를이 명랑하게 등장해, 자기 삼촌에게 총을 쏘며 “루드윅, 빵”이라고 외친다. 낯선 사람에게도 고함을 지르곤 했던 베토벤이지만 조카랑은 아주 잘 놀아준다. 피아노 주변에서 조카와 빙글빙글 돌면서, 카를이 총을 쏘면 죽는 연기를 하고 카를은 정말 좋아한다. 카를은 커서도 베토벤을 루드윅 삼촌이라고 부른다.


모두가 자신을 ‘베토벤 선생’이라고 부를 만큼 직업적으로 큰 성공을 이룬 사람에게 정식 이름도 아닌 루드윅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다니 정말 이상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베토벤은 카를에게 ‘루드윅이 아니라 루드비히’라고 가르쳐주지만, 카를은 삼촌의 말을 듣지 않고 그렇게 부른다. 아마 그것은 조카나 가족만이 부를 수 있는 애칭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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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연은 평소에 알지 못했던 베토벤의 인간적인 모습이 담겨있었다. 그의 생애가 너무나 쉽게 판매되어 베토벤의 일생을 이렇게 쉽게 판단된다는 것이 유감스럽지만, 아버지로부터의 폭력이 너무나 식상한 일이 되어버렸고, 그에게서 더 뽑아낼 만한 인생의 이야기를 찾아내는 공연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로부터의 폭력은 그가 천재로 기억 남는데 희생자, 피해자 이미지를 남겨주었고, 청각장애를 앓았던 것은 그런데도 이겨내어 성공했다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었지만, <루드윅 : 베토벤 더 피아노>가 남겨준 인간적인 베토벤은 절대 개인적으로 알고 싶지도 않았으며, 더는 그를 위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근거를 주었다.



(여기서부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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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제자, 루드윅의 뉘우침과 후회



베토벤에게는 세 명의 제자가 있었다. 사실 그에게 제자가 한 자릿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로 그는 음악에 천재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가 천재인 것도 천재지만, 폭군 아버지로부터 모차르트를 넘어설 것을 강요하는 폭력과 압박, 그리고 매일 다락방에서 해야 했던 피아노 연습이 있었다. 그토록 강제로 해야 하는 일이면 싫어할 법도 한데 베토벤은 그 피아노를 너무나 사랑했다 그는 아버지의 강요대로 천재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고, 승승장구하던 중 청력을 서서히 잃어간다. 그 과정에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집에 틀어박혀서 소리를 지르고 울고 총으로 자살을 기도하려고 하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마리와 발터 때문에 실패한다.


발터는 베토벤의 첫 번째 제자다. 베토벤이 그를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는 키워줄 부모가 없어 배를 타고 외국으로 떠나야 했다. 그 시대에 여자인데도 건축을 하고 싶어 했던 마리는 무턱대고 베토벤의 집에 찾아와서 발터를 제자로 받아들여 달라고 부탁한다. 발터가 음악을 한번 듣고 바로 피아노로 치는 훌륭한 재능이 있음을 발견했지만, 자신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는 베토벤에게는 그 놀라운 재능을 키워줄 능력이 없었다. 그는 발터를 돌려보내고, 발터는 외국으로 가는 배가 침몰해서 결국 죽고 만다. 베토벤은 그 소식을 듣고 엄청난 죄책감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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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윅 역 김주호



두 번째 제자는 조카 카를이다. 카를의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만 남았는데 베토벤은 카를의 모습에서 발터를 발견하고, 그의 어머니에게 법정 소송을 걸어 카를을 집으로 데려온다. 군인이 되고 싶어 하고 음악에 재능이 없는 카를에게, 베토벤은 최선을 다해 피아노와 음악을 가르친다. 자기가 가장 먼저 작곡한 교향곡을 카를에게 처음 보여준다. 카를은 늘 반항하지만, 베토벤은 조카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다.


이때 마리가 또 찾아와서, 남자 옷을 입고 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리는 베토벤에게 어린 카를의 말을 들을 것과 카를에게 자신의 의지를 당당하게 말하라고 하고 떠난다. 카를은 그런데도 들어주지 않는 자신의 삼촌 앞에서 결국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한다. 다행히 자살은 실패했지만, 카를은 베토벤의 곁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세 번째 제자는 마지막으로 찾아온 슈베르트다. 베토벤은 슈베르트의 음악을 보면서, 후대에 물려줄 재능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는다. 재능은 그가 가르치려고 해서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었고, 천재성은 같은 핏줄이라고 해서 물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카를에게 그냥 루드윅 삼촌이었다면 어땠을지를 상상해보며, 지난 삶을 후회한다. 그리고 마리에게 죽기 전 가장 큰 선물로, 미래의 음악인 슈베르트의 음악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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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윅 역 서범석, 청년 역 이용규



모든 것이 한 차례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그의 모습은 정말 학습되지 않은 본능 그 자체였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폭력에 노출되어 제대로 아이를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는 오직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물려주겠다는 뻔뻔함 하나로, 어머니에게서 아이를 뺏어오고, 심지어 그 아이마저 자살을 시도하게 할 정도로 괴롭혔던 사람이다. 베토벤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포장했지만,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하였더라도 방법이 잘못된다면 그것은 사랑이라고 부를 수가 없다.


처음에는 자신의 한계를 알기에 거절했고, 그렇게 부정적인 일이 생겨나 죄책감에 어린 조카를 맡고, 그 조카의 인생을 망치고, 다시 느끼는 죄책감과 후회. 그가 아무리 음악적으로는 재능이 넘쳤더라고 해도 그의 삶이 과연 ‘인간적이다’라는 말로 포장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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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윅 역 테이, 김주호, 서범석, 이주광




나는 싸울 준비가 되었는데, 나와 싸울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극 중에서 가장 공감을 하면서 봤던 것은 발터를 데리고 왔던 마리였다. 마리는 늘 베토벤의 다락방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를 동경했고, 베토벤을 그저 그런 음악을 내는 사람이라서 존경했던 사람이었다. 베토벤의 옆에서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고집 센 베토벤은 마리를 존경하면서도, 조언을 듣지 않았다.


마리는 남자 옷을 입고 건축 일을 했다. 옷만 바꿔입었는데도 자기가 할 수 없는 게 오히려 없어졌다고 말했다. 자신의 오빠 이름으로 건축 공모전을 제출했다고 하는 마리에게, 베토벤은 거짓말을 하면서 살지 말라고 했고, 마리는 그 길로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밝혀 결국 참가하지도 못하고 떨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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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역 김지유, 김려원



베토벤과 마리의 차이점은 성별이었다. 남자는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시대였고, 마리는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공부를 할 수 있는 곳도 없었다. 마리는 “세상과 싸울 준비가 되었는데 세상이 자기와 싸울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외쳤다. 마리가 살던 세상으로부터 조금은 달라졌겠지만, 요즘도 세상은 여성을 동등한 입장에서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이번에 <걸캅스>가 개봉되기 전만 해도, 사람들은 대본이 유출되었다며 이미 뻔한 영화를 왜 보느냐고 그랬다. 하지만 그렇게 본다면 <극한 직업>도 뻔한 영화였고, <베테랑>도 뻔한 영화였다. 수없이 뻔한 형사물이 개봉되는데, 그에 대한 수요는 존재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걸캅스를 뻔하다고 욕하는 이유는 남자들이 나와야 할 영화에 여자가 나와 같은 내용만을 보여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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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캅스 무대인사, 이성경, 라미란
 


내가 <걸캅스>를 재밌게 봤던 이유는 여자가 주인공이라서가 아니라, 시동생과 새언니의 기 싸움을 너무 재밌게 보여주었고, 사무실에서 상사 몰래 셋이서 범인을 추적하며 상사에게 걸리면 아닌 척하는 모습이 웃겨서였다. 대등한 하나의 영화로 보지 않고, 이미 남자들이 주력한 영화의 부속물 정도로 보기 때문에 <걸캅스>를 ‘뻔한 영화’ 취급하고, ‘페미니스트 영화’로 아예 분류 자체를 다르게 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의 시대가 마리의 시대와 뭐가 다를 게 있나 싶다. 달라진 것은 여성들이 변하는 모습이고, 달라지지 않은 것은 많은 기득권의 의식일 것이다.


베토벤과 마리의 차이는 타인의 말을 주의 깊게 듣는가, 즉 발전 가능성의 차이도 있었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라고 하는 베토벤의 말을 머리는 들었고, 결국 수녀원에 들어가서 여자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친다. 자기가 그 시대에 정당하게 할 방법을 하면서 살기를 선택한 것이다.


그렇지만 베토벤은 발터를 제자로 받아들여 달라고 하는 마리의 애원을 거절했고, 조카 카를이 하고 싶은 것을 들으라고 하는 마리의 조언도 거절했다. 결국 삶은 자기 자신의 음악으로 가득 찬 고독함이 되었고, 후회와 절망, 죄책감의 범벅이었다. 베토벤은 입으로는 마리를 존경한다고 했지만, 마리의 말은 하나도 자신의 삶으로 적용하지 않았다. 마리를 ‘자네’라고 부르며 동등한 위치로 취급하는 척했지만, ‘여자가 남자 옷을 입고 있으니’라며 마리를 어색해했고, 결국 그것은 마리를 존경하는 마음이 진심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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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역 김려원




황홀한 시각적, 청각적 경험, 뮤지컬 <루드윅 : 베토벤 더 피아노>



베토벤의 삶 자체는 그야말로 최악이었지만, <루드윅 : 베토벤 더 피아노> 공연은 정말로 훌륭했다. 나는 소극장에서도 좋은 공연을 많이 봤기에 딱히 편견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쳐도 이 정도의 퀄리티를 볼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예상을 뒤엎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볼 정도의 좋은 공연이었다. 여태 공연을 꽤 봐왔지만, 기립박수를 치는 광경은 처음 봤다.


이 뮤지컬의 특이한 점은 나이 든 루드윅이 한 번도 무대에서 사라지지 않고 사람들의 곁을 맴도는 모습이었다. 어린 베토벤에게는 호통치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젊은 베토벤의 옆에서는 서술자의 역할로, 그에게 독한 술을 주고, 총을 주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원래 시간의 흐름으로 진행되는 연극의 경우, 어린 시절의 모습은 더는 사용하지 못하는데, <루드윅 : 베토벤 더 피아노>는 어린 베토벤의 역할을 맡았던 아이에게, 발터, 어린 카를의 역할을 모두 주어, 공연이 진행되면서도 계속해서 아이를 등장시켰다. 그리고 카를에게서 발터를 발견하는 모습에 그럴듯한 정당성을 부여했다. 또, 아이 역할을 한 배우가 안내 방송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서, 그런 아이가 뮤지컬에 직접 참여해서 노래도 불러서 더 재밌게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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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역 이용구



마찬가지로, 청년도 젊고 절망하는 베토벤의 역할과 청년 카를의 역할을 맡아서 울분에 가득 찬 방황하는 청년의 모습을 두 가지의 모습으로 다르게 보여주었던 점도 무척 좋았다.


특히나, 피아니스트 강수영 씨가 배우인 줄 알았는데 피아노 전공자라서 더욱 놀랐다. 중간에 베토벤이 교향곡을 떠올릴 때는 녹음된 곡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거의 모든 곡을 강수영 씨가 연주하면서 공연이 진행되어서 뮤지컬 자체가 더욱 풍부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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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강수영



인터넷에 올라온 후기를 살펴보면 대체로 사람들이 젊은 베토벤이 청력을 잃은 뒤 고뇌에 가득 차서 폐인이 되어가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는 글이 많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베토벤이 카를을 희생시켜, 카를이 권총으로 자살하려고 했던 장면이 가장 머릿속에 깊이 남아있다. 베토벤은 죽고, 카를에게 유산을 모두 남겼다고 한다. 공연을 보고 나서 카를이 그 후로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그냥 군인이 되어 평범하게 살았다고 한다. 폭력이 대물림된다는 말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폭력을 저지를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폭력을 한다.


또, 마리의 등장이 너무 어색하고 끼워 넣은 것 같다는 평도 꽤 보였는데 나는 오히려 마리가 있어서 극이 지루하지 않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단지 여성운동가로서의 모습만 보여준 게 아니라 베토벤과 삶을 받아들이는 방식에서부터 많은 차이가 나서 정말 인간적이라는 말이 잘 어울렸다.


나는 욕심이 정말 많은 사람이라, 베토벤 같은 천재가 옆에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그의 재능을 나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했을 것 같다. 마리가 그의 다락방에서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소리에 감탄하듯, 그렇다고 마리처럼 그를 존경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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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윅 : 베토벤 더 피아노
- 열정의 베토벤을 만나다 -


일자 : 2019.04.09 ~ 06.30

시간
화, 수, 목, 금 20시
토요일 15, 19시
일요일 및 공휴일 14, 18시

장소 : 드림아트센터 1관

티켓가격
R석 66,000원
S석 44,000원

기획/제작
과수원뮤지컬컴퍼니

관람연령
만 10세이상

공연시간
1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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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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