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바닥이 없는 물 속을 살아가는 힘, 아가미 [도서]

구병모 '아가미'를 읽고
글 입력 2019.06.01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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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아가미는 물고기들의 상처라고 생각했다. 칼로 벤 것처럼 갈라져 벌렁거리는 피부 사이의 붉은 속살이 너무 아파 보였기 때문이다. 아가미가 물고기의 호흡 기관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도, 연약한 속살을 훤히 드러내 보이며 숨을 쉬는 행위는 여전히 내게 아찔하고 위험해 보였다. 상처 사이로 물과 산소가 드나든다고 생각하니 숨을 쉴 때마다 상처 부위가 따끔거릴 것만 같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물고기에게 아가미는 상처가 아니다. 물속에 사는 동물들이 숨을 얻는 유일한 수단이자 생명의 기관이다. 하지만 만약 육지에 사는 사람이 아가미를 얻게 된다면 어떨까?


구병모의 장편소설 ‘아가미’는 삶의 끝자락에 내몰려 아가미를 얻게 된 소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상처와 생명 사이 어딘가에 있는 아가미를 안고 살아가는 소년과 간절히 숨 쉬고 싶은 모든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 소설 ‘아가미’를 소개한다.




강하, 그리고 곤



‘아가미’를 읽으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바로 ‘강하’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강하는 곤의 아름다움을 동경하면서도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며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인물이다. 질투, 동경, 열등감, 갈망 그 어느 단어 하나로도 설명하기 힘든 강하의 태도는 해류의 말처럼 ‘불안정한 뗏목’ 같은 상태를 유지한다.



자신에게 결여된 부분을 남이 갖고 있으면 그걸 꼭 빼앗고 싶을 만큼 부럽거나 절실하지 않아도 공연히 질투를 느낄 수 있어요. 그러면서도 그게 자신에게 없다는 이유만으로 도리어 좋아하기도 하는 모순을 보여요. 양쪽의 세계에 걸쳐진 감정은 서로 교환되거나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기껏해야 적정 수준에서의 은폐가 가능할 뿐이에요.



부모에게 버림받고 별 볼 일 없는 삶을 살아나가던 강하의 삶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곤은 그의 삶 속 유일한 희망이자 아름다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삶에 없었던 희망과 아름다움을 동경하면서도 질투하는 강하의 혼란 섞인 시선은 곧 곤을 향한 괴롭힘으로 변질한다.


양 극단의 감정을 혼란스럽게 오가던 강하에게 한 가지 확실했던 것은 바로 ‘곤’이라는 이름뿐이다. ‘북쪽 바다에 살며 그 크기가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는’, ‘한 번 박차고 날아오르면 구만리를 날아가는’ 신화 속 물고기의 이름. 부르는 것만으로도 혈관이 부풀고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곤’이라는 이름은, 소용돌이치는 양극의 감정 속에서도 결국에는 아가미를 가진 아름다운 소년이 강하의 벅찬 희망이자 절실한 사랑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모순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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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물은 곤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삶을 끝낼 수 있는 곳이면서도, 곤이 어두운 현실을 벗어나 자유롭게 유영하고 헤엄칠 수 있는 도피처이기도 하다. 아름다우면서도 잔혹한, 죽음과 희망이 공존하는 신비로운 곳. 곤은 바로 이곳에서 생사의 기로에 섰고 그를 숨 쉬게 해 준 아가미를 얻었다.


캄캄한 물속에서 그를 죽음으로부터 건져 올린 아가미는 삶의 끝자락에서 만난 기적 같은 희망의 발현이다. 아가미는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가던 물속을 생명력이 넘치는 깊고 아름다운 세계로 한순간에 탈바꿈시킨다. ‘바닥 없는 물속’ 같은 세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곤의 아가미에 이끌린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들은 한때 죽음의 세계였던 물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곤에게서, 버림받고 소외되어 숨이 턱턱 막혀가던 그들의 세상을 바꿀 한 줄기의 벅찬 희망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


이제는 아가미가 물고기의 상처가 아님을 안다. 하지만 적어도 곤에게만큼은, 그를 버린 아버지와 세상이 남긴 아픈 상처다. 하지만 그의 상처는 곧 구원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의 아름다움은 이 모순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아름답고, 무언가를 동경하기에 질투하는 것처럼. 모순이 남긴 아름다움을 안고 물속을 유영하며 살아갈 곤의 삶이 외롭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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