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 글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나인 것을 [기타]

내가 글을 쓰는 이유
글 입력 2019.06.09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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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는 글이라고 하면 고작 메모장이나 블로그에 끄적이는 일기에 전부이긴 하지만 내 나름대로 꾸준히 글을 쓰던 때가 있었다. 특히 에세이는 소설 같은 창작력이나, 시 같은 예쁜 표현법도 요구하지 않아서 더 편하게 쓸 수 있었다. 덕분에 나에게 글을 쓰는 일이란 그저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그대로 옮겨 적는 단순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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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 글과 기록을 사랑했던 이유는 그것들을 하나의 전유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의 글들을 살펴보면 내가 이렇게 장기적이고 또는 구체적인 생각들을 해냈다는 게 조금 놀랍기도 하다. 성격상 누군가와 한 주제로 깊게 이야기하는 걸 꺼려 하고, 내 생각을 남에게 이해시키려거나 자세히 설명하는 걸 겁내기도 한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글을 쓰거나 개인 sns 를 하는 걸 보면 자기표현 욕구도 조금은 있는 듯하다. 그래서 가끔씩 내 글을 읽을 때면, 스스로가 기이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무튼 두서 없이 이야기를 했는데, 결론적으로 내가 글을 계속 쓰게 되는 이유는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매력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의 감정을 눈이 아닌 마음으로 읽을 수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글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


몇 년 전 글을 봐도 그 당시의 기억은 대부분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냥 뭔가가 생각날 때, 기분이 우울할 때, 비가 올 때, 좋은 일이 있었을 때, 술 마셨을 때(?) 등등 감정의 변화가 있을 때 그 순간의 느낌을 메모장에 옮겨 적었다. 그래서 하나같이 감성적이고 오그라들긴 하지만,  괜히 더 스스로가 애틋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 과거를 조금 엿볼 수 있는 글을 소개하려고 한다. 나름의 성찰하는 의미에서 글에 대한 소개와 당시 상황 등을 덧붙이면서 과거를 회상해보고자 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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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취미활동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중이었다. 그러던 도중 혼자 화장실을 간다고 해놓고 밖으로 나와 계단에 걸터 앉았다. 지금이 너무 즐겁지만, 해야 할 일들이 마구마구 떠올라서 머리가 아파졌다. 생각할수록 복잡해져서 최대한 머리를 비우고 글을 쓰기로 했다. 핸드폰을 꺼내들어 조금 글을 쓰다가, 사람들과 헤어지고 집에 오는 길에 마저 완성했던 그날의 기록이다.



2017.07.19 넋두리1


요즘 속상한 일이 많아요. 나쁜 사건들이 일어났다는 건 아니에요. 평범한 일상이지만 왠지 이상한 평범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근들어 성과를 내야하는 순간들이 많이 찾아와요. 꽤 오랫동안 달려왔고 그것들이 코 앞에 닥쳤을 때의 그 심정이란. 정말 속상해요. 더이상의 진전도 없고 의욕 마저 잃어서 자존심은 바닥을 기어다니고 몸은 지쳐서 집에만 오면 침대에 대자로 뻗어서 기절해 자고. 그러면 또 그 다음날이 찾아 오겠지요? 해는 뜨고 나는 매일마다 울려대는 알람 소리를 꿈결에 듣겠고 그 꿈 속에서도 '오늘 하루도 정말 싫다...' 라는 말을 허공에 던지면서 눈을 뜨겠죠.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감고 밥을 먹고 날씨를 체크하면서 옷을 고르고... 그러고 난 또 하루를 살겠죠?


나는 무엇 때문에 인생에서의 작은 성공들을 맛보려고 하는 걸까요. 왜 결과로만 나타낼려고 애를 쓰는 걸까요. 내가 진정 바라는 건 단순한 행복 그리고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 이 둘 뿐 이었는데 말이죠. 등줄기에 땀이 흐르네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고 있지만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내 몸은 감춰진 더러운 물을 내뿜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네요.


어제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쏟을뻔 했어요. 허벅지를 콱 꼬집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눈알에서 스며나온 눈물들을 땀인척 닦아내느라 어찌나 심장이 쫄리던지. 하려던 일이 되지 않자 마음 속으로 악을 질렀어요. 그리고는 화풀이할 대상들도 별 의미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어깨에 힘이 풀리고 감정에 북 받쳐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고 싶은게 꼭 나무판자를 격파하지 못해서 펑펑 울던 태권도 소년이 된 기분이었어요. 이럴 때보면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것 같아요. 사실 아이의 상태로 계속 머물고 싶은 것도 있구요.


일의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일을 벌리지 않을 거예요. 아니 일을 또 벌리려나요? 잘 모르겠네요. 뭐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하는지. 어쩌면 지금까지 해온 게 아까워서일지도 몰라요. 사람들은 만족에서 또 다른 불만족들을 끊임없이 찾아내잖아요. 그냥 적당히 설렁설렁 평타치고 무난하게 하면 될 것을 본인 욕심에 못 이겨서 결국 일을 저지르고 해결하고 저지르고 해결하고. 우리는 참 피곤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쵸?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네요. 머릿속이 복잡해서 정리가 안 되는게 그냥 한숨 푹 자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오랜만에 실없는 넋두리 늘어놔서 재밌었구요. 갑자기 끝내서 굉장히 당황스럽겠지만 더이상 쓰고 싶지 않아요 하하 내일 일찍 일어나야되서요. 그럼 다들 안녕히 주무세요 :-)



2년 전에 지금보다 더 열심히살고 있었구나 싶다. 새로움과 즐거움 사이의 걱정거리들. 왠지 기억날듯 말듯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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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커뮤니티에서 쓰게 된 글이다. 주제가 "달, 손톱, 신발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글을 쓰시오."였는데, 그 주제를 보자마자 바로 생각난 경험담이었다. 어두운 밤 약 2시간 동안 지하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면서 틈틈이 썼던 글이다.



2017. 10. 28 손톱




달, 손톱, 신발


이 세가지가 한꺼번에 공존했던 때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00년도 초반의 추운 겨울, 장난기 가득했던 어린 아이의 자그마한 손가락이 문틈에 끼였던 그 때를 기억합니다. 기분이 참 좋았던 날이었는데...아이의 새끼 손톱이 바닥에 툭 떨어지고, 몸의 작은 일부분이 떨어져 나갔다는 충격과 고통에 아이는 그동안 묵혀놨던 서러움을 분출했습니다. 신발장에 주저 앉아서 최선을 다해 울며 도움을 부르짖는 아이에게로 어머니가 급히 뛰어왔습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진정 시키는 동안 신발장에 떨어진 손톱은 처참히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차가 있는 아버지는 직장에 나가있던 터라, 이웃 아주머니 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했습니다. 이동하는 차안에도 아이의 울음은 쉴새없이 오르락 내리락 거렸습니다. 목이 아프면 잠시 울음을 쉬고 난 다음 또 다시 크고 힘차게 울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눈물은 아픔에 반응하는 신체반응이 아니라, 울고 싶다는 욕망에서 기인된 눈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뾰족한 바늘에도 눈 한번 깜빡 안했던 아이였는데... 어쩌면 무섭고 겁이 났던 순간에도 꾹 참았던 것이었겠죠. 어른인 척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습니다만, 아마 보통 아이들과 다르게 행동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영락없는 어린아이였던 나는, 눈물을 그리워 했나 봅니다. 누가 이 아이를 냉랭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열심히 울고 있는데 말이지요.


그날 밤 아이는 새끼 손가락에 붕대를 둘둘 감고 병원 밖으로 나왔습니다. 흉터가 남을 거라는 말에 걱정하는 어머니와는 달리, 아이는 별 근심없이 퀭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아마 그 날 떠있던 달은 반달도,보름달도 아닌... 손톱모양을 달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어른이 되가고 있는 그 아이는 삐뚤어진 새끼 손톱을 바라보며 오묘한 웃음을 짓습니다. 마침 창밖의 달도 손톱모양을 하고 있네요.


참, 마음껏 울고 싶은 순간입니다.



하루종일 울어서 킁킁 거리던 밤이 생각났다. 솔직히 그때 진짜 아프긴 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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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연애하고 있을 때 쓴 글이다. 적당히 오글거리는 걸로 골라왔지만, 그래도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 글의 비하인드스토리를 이야기하자면, 이 글을 쓰기 몇 달 전부터 '시곗바늘'에 대한 시를 써보고 싶어서 여러 번 시도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시곗바늘로 저울질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제목으로 '시간이 정말 모든 걸 해결해 줄 수 있을까?'라는 메시지를 담으려고 했지만, 곧 나의 한계를 깨닫고 묻어뒀던 단어(?)이다. 그러다가 새삼스럽게 애인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기 위한 글을 쓰다가 이 "시곗바늘"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2018. 04. 24 ​시곗바늘은 심장을 가리키고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흐른 것도 아닌데

하도 자주 보고 듣고 하다보니 까마득- 하다.

시작점이 언제였더라. 얼마나 된 걸까?

이미 너무 멀리 온 것 같은데.


어떻게 시계바늘이 고장이라도 났나, 달력 몇 장이 찢어지기라도 했나.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산 기간이 20년이 넘었는데, 그 기간보다 너와의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진다. 아마 머릿속에 콕콕 박힌 네 모습들만 모아도 백과사전 두께의 사진첩은 거뜬히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백과사전만큼의 추억을 모았다 생각했는데, 1년이 지난 지금 거의 절반이 소멸된 듯하다.


역시 시간 지나면 희미해지긴 하나보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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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리네 민박(예능 프로그램)에서 이효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누군가에게 받았던 호의를 그대로 그 사람에게 되돌려 주는 것보단 시간이 지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고 싶다."


이 글은 나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졌지만, 어떻게 보면 많이 닮은 친구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쉽게 끊어버리지 못하는 솔직한 고백 글이기도 하다 :-)



2018. 12. 30 솔직하지 못해 미안


요즘 귀찮게 하는 친구가 있다. 유치원에서 쥐꼬리만한 월급 받으면서 애기들한테 시달리고, 공부까지 병행해서 힘들어 죽겠다 징징대는 친구이다. 입술 다 터지고 아토피에 피딱지가 터져 양말 한쪽이 빨갛게 물드는 데, 웃긴 건 또 안좋은 인스턴트는 엄청 먹고 양말도 짜리몽땅한 것에, 신발끈 묶기도 귀찮아서 대충 안으로 꾸겨 넣고 질질 끌고 다니는 그런 애다. 심심할 때나 할일이 딱히 없을 때 전화해서 푸념만 늘어놓는데, 귀찮아서 몇번 씹은 적도 있다. 하루에 3번정도 전화가 오는데, 두번은 이상은 안 받는다. 얘가 싫은 건 아니고 그냥 신세한탄 듣는 게 정신적으로 힘들어서다. 사실 가끔 싫어질 때도 있는데, 그때마다 - 나도 참 인간미 없지 힘들다는 데 그걸 밀어내려고 하냐 이 인성 파탄자야- 하고 자책하면서 받아주고 있다.


알고 지낸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참 소중한 친구다. 뭐랄까 좀 짜증나는 건 맞는데, 나를 많이 챙겨주는 친구이긴 하다. 친언니 같은 느낌도 들고, 제일 좋은건 같이 치킨먹으면 닭 껍떼기를 양보해준다. (근데 생각해보니 난 얘한테 닭다리 양보했던 것 같은데, 갑자기 배신감 오진다.) 지 말로는 이정도면 심장 준거라고, 킬킬 웃는 모습이 떠올라 같이 웃음이 난다.


이 친구를 보면 내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남들에게 나는 이런 존재였을 수도 있겠다. 귀찮은데, 차마 손은 못 놓겠는 그런 사람. 나 또한 여러사람 귀찮게 하는데 재주 있는지라, 푸념 늘어놓으면 하루 온종일 부정적인 얘기만 하는 인간이기에. 참, 그런 사람들에게 해줄 말은 항상 정해져 있는데 말이다. 예를들어 난 틀렸으니깐 그냥 좋은 얘기만 해줘- 라던지...


자기 인생이 쓰레기 같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럼 쓰레기통에 들어가라고 하면 역효과로 충분한 동기를 줄 순 있겠지만, 대부분은 아니야 그렇지 않아. 너의 인생은 소중해, 라는 말을 수십번 반복해서 의미없는 말로 만든다. 결국에는 지금 하고 싶은말은 뭐냐면 난 의미없는 말을 자주 늘어놓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믿는다. 역시 누군가를 솔직히 대하기에는 많은 정신소모가 필요하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늘 어려운 것이라고 하는걸까. 화가 치밀어 오르는 상황에서도 웃음을 유지하는 게, 귀찮아하면서 상대방 연민에, 그리고 시험받는 나의 도덕성에 고개를 숙여야하는 일. 거짓말이 일상이 되어버린 현실에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관계 고민은 여전한 것 같다. 앞으로 더 얼마나 많은 푸념 글을 쓰게 될지 궁금하다.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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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블로그에 쓴 글을 보면, 글을 계속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한 흔적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2017. 06. 17


나는 말하는 걸 좋아하고 그만큼 잘하려고, 노력하지만 그게 안될 때가 많다.


왜 그럴 때 있지 않나? 말로는 다 표현하기 힘든 그런 것들. 물론 생각 정리가 안 되서 말을 잘 못하는 것 일 수도 있겠지만... 말로써 삭히기 어려운 표현들을 글로 녹여낼 때 전해지는 진심이란 정말 다르게 다가온다. 그날의 내 기분과 감정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간직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으로 글쓰기(메모)만큼 좋은 것이 있을까.

 


기록은 나 자신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무리 두서없고 빈약한 글이라도 두고두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내 글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나인 것을, 최근에는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다시 되돌아와야 하는데, 잘 다듬어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앞서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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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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