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뷰티 인사이드 : '낯섦'을 받아들이는 법 [영화]

<뷰티 인사이드>를 보고
글 입력 2019.05.31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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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같은 몸을 하고,

날마다 다른 마음으로 흔들렸던...

어쩌면 매일 다른 사람이었던 건

네가 아니라 나였던 건 아닐까?


- 뷰티 인사이드 中 -



우리는 사랑을 할 때 무엇을 보고 호감을 느낄까? 아무런 끌림 없이 처음부터 타인을 좋아한다는 건 거짓말에 가깝다. 외모나 성격, 나이, 재력같이 각자만의 기준은 아마 존재할 테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다. 그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같은 방향으로 걷는 모습을 우리는 '연애'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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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는 행복을 담보로 상대방과 타협하는 과정을 필연적으로 거친다. 아무리 좋아하고 닮아도, 애인이 나와 100% 일치하는 사람일 순 없는 까닭이다. 익숙하다는 감정은 그래서 중요하다. 애인이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됐다는 말이니까. 물론 흔히 '익숙함에 젖어 소중함을 잊지 말자'를 쓰곤 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어느 정도의 익숙함 없이는 성립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백종열 감독의 『뷰티 인사이드(2015)』는 '익숙함'이 필요한 연인들의 관계에 '낯섦'이라는 요소를 끊임없이 건넨다. 남자 주인공인 '우진'의 겉모습이 나이, 성별, 국적을 막론하고 자고 일어날 때마다 변한다. 끊임없이 바뀌는 겉모습을 받아들이는 게 노력을 해도 쉬운 일은 아닐 테다. 영화는 연인인 '우진'과 '이수'가 그런 현실에서도 사랑을 이어나갈 수 있는지를 묻는다.

사실 판타지 로맨스에서 등장인물의 속 모습이 바뀌는 설정은 제법 많다. 더 나아가 연인들끼리 서로 몸이 바뀌어 일어나는 해프닝을 소재로 한 로맨스 영화나 애니메이션도 적진 않다. 이때마다 속 모습은 연기를 하는 방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갈 순 있기는 하다. 속 모습을 직접 볼 순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겉모습은 그럴 수 없다. 아무리 꾸며내도 눈에 직관적으로 들어오기에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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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처음에는 현실로 놓인 낯섦을 '이해'하려는 방식을 택한다. 우진의 겉모습이 매일 바뀌는 사실을 받아들이려는 것이다. 그만큼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기에 가능한 일일 테다. 하지만 이해하려는 대상이 '우진'으로만 한정됐기에 문제가 남는다. 우진은 이수가 자신을 행복하게 해 주는 대상으로 생각한다. 그에 반해, 이수는 우진을 행복하기 위해 이해해줘야 하는 대상으로 느낀다.

연애하는 모습을 보면 두 사람의 문제는 분명하게 나타난다. 우진의 특별한 상황 때문에 연애는 모두 우진을 중심으로 맞춰져 있다. 두 사람은 우진의 집에서 만나고, 우진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을 돌아다닌다. 이수는 우진을 따라다닌다. 우진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자신이 느끼는 낯섦을 조용히 안으로 삼킨다. 불안함과 두려움은 약물에 의존하는 방법 외에는 도리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두 사람의 사이가 갈라지는 것은 어쩌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해는 뜻 자체를 보더라도 한계점이 분명하다. 사전에는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임'이라고 되어있다. 즉, 이해는 나의 입장에서 타인을 지레짐작으로 생각하는 과정이다.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바람직할 법한 이해마저도 엄연히 따지면 완벽할 수 없다. 한 사람만 기준이 되는 일 방향적인 이해는 오죽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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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의 어머니나 상백이 두 사람에게 조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들은 우진과 이수에게 연애로 서로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상대방을 '이해'한다고 믿은 게 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 오히려 그 사실이 서로를 힘들게 만든다는 점을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우진이 상진을 좋아하면서도, 그녀에게 고백 같은 이별을 꺼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물론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단지, 이해라는 방법이 서로의 낯섦을 받아들이는 데 적확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두 사람이 체코에서 만나는 두 번째 시도는 이전보다 더 확실한 방향으로 이어진다. 이번에는 서로가 현실로 맞닥뜨려야 할 낯섦을 '동감'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동감은 '어떤 견해나 의견에 같은 생각을 가진'다는 뜻에서 이해와 비슷한 듯 다르다. 각자가 다르더라도, 동일한 생각을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래서 이수는 서로가 같은 생각으로 '동감'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우진을 보러 체코로 향한다. 여전히 우진이 여러 모습으로 변하는 것은 낯설고 두렵다. 우진도 이수를 보자마자 낯선 사람을 대하듯 복잡한 표정을 짓는 건 비슷한 이유에서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 만드는 존재하면서까지 함께 하기에는 싫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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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두 사람이 '동감'하는 방법을 사랑으로 풀어낸다. 낯설고 두렵다는 감정을 고려하더라도 서로를 좋아하는 것. 두 사람을 둘러싼 여러 가지 환경에서 벗어나 서로를 온전히 사랑한다는 사실은 앞서 택한 '이해'와는 다르다. 상대방의 마음이 자신과 똑같다는 점을 확인한다는 데에서 더욱 그렇다. 우진이 반지를 건네며 프러포즈하는 마지막 장면은 서로를 '동감'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물론 '이해'가 '동감'에 이르기까지에 과정에서 비판할 점이 없진 않겠다. 우진이 잘 생긴 모습일 때에만, 두 사람의 관계는 중요한 순간을 맞이한다. 많은 사람들이 '뷰티 인사이드'를 강조하면서, 정작 흐름은 '뷰티 아웃사이드'였다는 아니꼬운 시선을 보네는 이유도 여기에 있겠다. 틀린 말은 아니겠다.

하지만 같은 맥락에서 보면, 그 또한 상대를 '이해'하려고만 했던 잘못된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는 아니었을까. 오히려 '동감'에 이르는 과정이 제대로 낯섦을 받아들이는 법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진 않았나. 두 사람은 서로를 '동감'할 때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우진이 이수에게 고백할 땐 외모와 성별, 나이를 막론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럼없이 입을 맞추고 포옹을 한다. 결국 사랑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 모습을 조금은 극단적인 판타지로 잘 묘사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영화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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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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