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미디어에 갇힌 메디아 - 메디아 온 미디어(Medea on media)

글 입력 2019.05.30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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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아 온 미디어

(Medea on media)


2019. 05. 14 - 06. 09

한남대로 158


화-금 오후 8시

주말 오후 3시

월 쉼


원작 에우리피데스

창안/연출 김현탁




메디아온미디어_극단성북동비둘기_3.JPG
 

그리스 신화에서 비춰지는 메디아의 모습은 마녀다. 아르고호 원정대를 이끌고 온 이아손에게 첫눈에 반한 메디아는 아버지인 콜키스의 왕 아이에테스를 배신하고 이아손에게 도움을 주며 그와 결혼한다. 그러나 이아손은 메디아를 배신하고 코린토스의 왕 크레온의 딸 글라우케와 결혼하려 한다. 이아손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메디아는 글라우케와 크레온을 독살하고 이아손과 자신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마저 자기 손으로 죽인다.

 

메디아에 대한 보편적인 시선은 ‘복수의 화신’일 것이다. 메디아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려 해도 그녀가 택한 방식은 ‘살인’이기에 메디아는 마녀와 같은 부정의 인물로 간주된다. 그간 메디아의 이야기는 연극, 회화, 문학 등 예술의 전 범위에서 꾸준하게 다뤄져왔다. 그 중 고대 그리스의 비극 시인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가 가장 오랜, 가장 널리 전해오는 ‘메디아’를 다룬 예술로 꼽힌다.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는 고전이다. 더욱이 고전은 ‘시대의 거울’이면서 동시에 ‘보편적 진리’를 가진다. 오늘날 고전을 재해석하는 일은 당시 제기된 문제를 오늘의 상황에 따른 재조명을 통해서 그것이 전하는 가치를 찾는 일로 다가온다. 고전이 던지는 메시지는 대개 비슷하며 시대에 맞춰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로 자리한다.

 

고전이 오늘날에도 유효하다는 명제를 가져와서 메디아를 비춰보자. 그럴 경우 메디아는 아주 오래된 작품 속의 인물이라기보다는, 자유롭게 분노와 복수를 꿈꾼다는 점에서 어딘가 친숙한 소재로 느껴진다.

    


메디아온미디어_극단성북동비둘기_1.jpg




미디어로 들어온 메디아



극단 성북동비둘기는 고전 속 메디아를 미디어로 끌어들인다. 이아손에 대한 사랑이 복수로 변모한 메디아는 분노를 금하지 못하는 인물로 비춰지곤 한다. TV라는 매체로 들어온 메디아는 여러 채널로 분산되어 다양한 층위의 인물로 전파를 탄다. <메디아 온 미디어>의 시작은 기자들의 취재로 시작된다. 이아손과의 결혼생활에 대한 폭로를 하는 메디아의 모습은 연예부 기자들이 연예인과 관련된 추문을 쫓아 자극적인 질문을 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사회에서 뉴스는 언제나 신선하고 빠른 정보전달이 필요하다. 이아손과의 불화라는 주제는 뭇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고, 메디아의 폭로는 대중이 받는 충격과 자극을 고스라이 전한다.

 

특종 소식으로 시작한 ‘메디아 온 미디어’는 원작 속 장면들을 TV 속 수많은 채널에서 재현한다. 이아손과 메디아의 설전 및 격투는 리얼 토크쇼 형식으로 진행되고, 크레온의 메디아 추방 장면은 고전 막장 멜로영화의 한 장면으로 둔갑한다. 유모의 한탄스러운 보고는 시사 다큐멘터리프로그램으로, 아이게우스의 구원 장면은 성인채널의 환락을 통해서 재현된다. 또한, 어린이 채널을 통해서 각 인물이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치환되어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한다.

 

뉴스, 토크쇼, 영화, 애니메이션, 다큐 등 여러 채널에 메디아를 분산시킨 ‘메디아 온 미디어’는 원작에서 나아가 미디어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15분을 채 넘기지 못하는 연극 속 채널은 짧고 굵다. 그렇기에 채널은 계속해서 자극적인 상황에 치닫는다. 설령 그것이 어린이를 위한 채널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극한의 재미, 분노, 슬픔을 야기하는 채널은 그것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 다른 채널로 바뀌고 만다. 미디어의 효과이자 한계를 톡톡히 짚어내고 있다. 시청자들은 채널을 통해서 새롭고 신선한 자극을 원한다. 그러나 그것이 익숙해질 무렵에는 새로운 자극을 찾아 떠나고 싶어 하는 권태를 느낀다. 채널을 보는 시청자들은 언제나 채널을 자유롭게 돌릴 권리가 있고, 채널로부터 무한의 재미를 산출하려는 욕구가 있다.

 

미디어에 의해 재단된 메디아는 여러 채널로 분산된다. 순식간에 흘러가는 장면과 강렬한 소리,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자극적인 이미지의 연속은 메디아가 느낀 분노감과 복수심에 사로잡힌 마음을 가볍게 만든다. 말 그대로 인스턴트를 위한 이야기와 인물로 전락하고 만다. 반성 없는 웃음과 무의식적인 흥미 유발은 관객이 채널 속에서 진행되는 살인, 분노, 폭력 등에 대해 무감각해지게 만든다. 단지 그들이 찾는 것은, 더 재밌고 더 신선하고 더 빠른 반응을 야기하는 대안뿐이다.

 

작품은 메디아의 노래로 끝난다. 마치 방송이 끝난 뒤 뮤직비디오가 흐르는 것처럼 말이다. TV라는 미디어에 갇힌 메디아는 분노와 복수라는 파멸의 아이콘으로 분산되어 비친다. 역시나 미디어는 선한 이미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러 채널을 통해서 쪼개지는 메디아가 많아질수록 더 자극적이고 더 치밀하게 보는 이들의 시선을 파고든다. 더는 방송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걸 암시하듯, 무대 앞에 폴리스 라인이 설치되면서 메디아의 잔상은 저 너머로 사라진다. 전파를 탄 메디아는 가상의 인물이며, 새로운 자극을 통해 언제든 잊힐 수 있는 소비의 산물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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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아방가르드 연극이 보이는 서사의 해체



무대 전환도, 장면을 강조시키는 음향도 전무한 흰 소극장 무대. ‘메디아 온 미디어’는 무대 자체를 하나의 매체로 사용한다. 매체가 된 무대는 현대의 매스미디어의 이면과 정신없이 흘러가는 소비사회에 익숙해진 오늘을 되돌아보게 한다. 지루하면 채널을 돌리고, 재밌으면 집중해서 보지만 저조한 집중력을 가진 현대인의 시청 습성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메디아 온 미디어’다. 2011년 초연 이래 극단 성북동비둘기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동시대를 비추며 시대의 문제를 반추하는 작품으로 다가온다.

 

동시대 한국 연극의 경향은 드라마에 충실한 재현 연극과 개념적인 작업에 초점을 맞춘 퍼포먼스가 있다. 두 경향은 서로 다른 경계에 위치하지만, 극단 성북동비둘기는 두 흐름 사이에 서 있다. 연극과 연극이 아닌 것 사이의 경계 위에 서서, 연극성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을 제기한다. 무대 위를 뛰어 다니고, 갑자기 연기를 중단하는 등 자유로운 신체 활용과 과감한 서사의 해체는 연극성을 거스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도 이들은 일회성과 현장성이라는 가장 연극 고유의 특징에 집중한다. 순수 연극 정신 또한 치열하게 추구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으며, ‘연극’이라는 경계 안에서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실험을 계속해서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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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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